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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용수 사단에는 김건모, 이은미, 박진영, 송일국도 있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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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배우였던 하용수씨.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배우였던 하용수씨.

패션 디자이너이자 영화배우였던 하용수씨가 5일 별세했다. 고인은 수많은 스타를 배출해낸 것으로 유명하다. 1990년대에는 매니지먼트 기업 ‘블루 오페라’를 직접 운영하면서 연예인 매니지먼트 업계에서 이름을 떨치기도 했다. 최민수, 이정재, 손창민, 오연수, 이미숙 등이 그가 배출해낸 스타들로 연예계에선 이들을 ‘하용수 사단’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다.

1990년대 '하용수 사단'으로 불렸던 배우 최민수와 디자이너 하용수가 함께 찍은 사진.

1990년대 '하용수 사단'으로 불렸던 배우 최민수와 디자이너 하용수가 함께 찍은 사진.

고인 곁에는 늘 스타들이 있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자신이 직접 매니지먼트를 하지 않아도 패션계와 영화·방송 등에서 화려한 인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변엔 늘 스타들이 머물렀다. 특히 1991년 강남 프리마 호텔 옆에 문을 연 라이브 하우스는 고인이 직접 운영하던 국내 최초의 오픈 가라오케 업소였는데 장안의 모든 셀레브리티들이 모이는 희대의 명소로 유명했다. 이곳에 가면 ‘맨발의 디바’ 이은미를 비롯해 김건모 등을 직접 볼 수 있었는데, 패션잡지 보그 코리아의 패션 디렉터였던 조명숙씨는 당시의 에피소드 한 토막을 들려줬다.

2016년 한 가요무대에서 '박진영표' 댄스로 현란한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 박진영.

2016년 한 가요무대에서 '박진영표' 댄스로 현란한 무대를 선보였던 가수 박진영.

“라이브 하우스에 놀러오라고 선생님이 초대해서 간 날인데, 여느 때처럼 스타들이 많이 있었고, 마침 무대에선 건장한 체구의 한 청년이 노래를 하고 있었다. 워낙에 가수 지망생들도 많이 몰렸던 곳이라 노래를 웬만큼 잘 하는 정도로는 관객석에 있는 스타들의 눈길을 뺐지 못했는데, 그날의 그 청년은 흑인 가수 뺨치게 팝송을 노래해서 모두의 주목을 받았다. 나도 그가 누구지 궁금했는데, 6개월 뒤 그 청년이 살을 쏙 뺀 모습으로 TV에 출연하더라. 그가 박진영이다.”
고인이 2016년도에 출간했던 자서전 『네 멋대로 해라』 한 챕터에는 바로 이 라이브 하우스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책에는 “라이브 하우스는 뮤지션만을 위한 공간은 아니었다. 최고의 스타들만이 운집했던 그런 공간이었다. 이정재 정우성 이숙 이은미 김혜수 오연수 진희경 김진아 지수원 아니타 배수빈 송일국 노영심 김형석 최준영 강재규 장현수 등 숱한 영화감독을 비롯, 아티스트와 스타들이 운집했던 리얼 핫 스팟이었다”라고 쓰여 있다.

‘하용수 사단’은 단지 스타들을 많이 거느리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만은 아니다. 패션 디자이너이기도 했던 고인은 스타로 주목받기 위해선 몸매관리와 스타일도 엄격하게 챙겨야 함을 늘 강조했다. 청중에게 첫 선을 보이기 전에 완벽하게 이미 스타로서의 몸매와 스타일을 갖춰야 했던 것.

한 매체와의 '취중토크' 중인 배우 송일국.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조금만 먹어도 살이 많이 찌는 스타일이라 늘 다이어트에 신경 쓴다고 말해왔다.

한 매체와의 '취중토크' 중인 배우 송일국. 그는 평소에도 자신이 조금만 먹어도 살이 많이 찌는 스타일이라 늘 다이어트에 신경 쓴다고 말해왔다.

2000년대에 기자도 ‘하용수 사단’을 주제로 패션 화보를 진행한 적이 있다. 당시 화보 촬영을 위해 고인의 부름을 받고 달려온 여자 연예인들은 심혜진, 염정아, 예지원 등이었는데 당시 특별히 기억나는 두 명의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당시 고인은 기자에게 두 사람을 “지금 배우 데뷔를 위해 준비 중인 신인들”이라며 인사를 시켰다. 그들이 지금은 중견 배우가 된 송일국, 배수빈이다. 고인은 당시 송일국을 소개하면서 “김을동 여사가 데려와서 배우로 키워달라고 부탁을 했다”며 “키도 크고 잘 생겼는데 화면 앞에 서기엔 체격이 너무 커서 지금 한창 살을 빼는 중”이라고 소개했다. 배수빈을 가리키면서는 “홍콩 쪽에서 더 좋아할 마스크라 홍콩 쪽 매니지먼트사에 먼저 소개하고(당시 최고의 감독으로 유명했던 왕가위 감독과의 미팅도 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홍콩 활동을 먼저 시작해볼까 고민 중”이라고 소개했었다.
패션과 스타, 뗄려야 뗄 수 없는 이 시장의 시너지 효과를 가장 왕성하게 또 자신만의 스타일로 완성시켰던 하용수씨였다. 자서전 『네 멋대로 해라』에서 고인은 박진영에 관한 대목을 쓰면서 이렇게 썼다. “무명의 가수 지망생이었던 가수 박진영 군은 낙지 같은 몸짓으로 아무도 의식하지 않고 있는 힘껏 ‘흐느적’ 대면서 그의 본능적인 댄스 월드를 보여줬다. 춤에 미쳐 짬만 나면 스테이지에 올라 마이클 잭슨 춤을 추어대던 박진영군은 이제 대 기획사의 회장님이 되었더라. 누구든 청춘은 있다! 당시 정재나 우성이를 비롯한 청춘스타들도 이제 중견이 되었으니...나만 멈춰 있나?!”
이 책이 출간된 게 불과 2년 전.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다시 새롭게 힘을 내려했던 고인의 열정이 결국 멈출 수밖에 없게 됐음이 안타깝다.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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