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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빠' 프레디 머큐리, 자택 일본정원서 일본어노래 만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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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출연한 배우 조셉 마젤로(존 디콘 역), 레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역),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역, 왼쪽부터)가 지난해 11월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 행사에 일본 전통의상 차림으로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출연한 배우 조셉 마젤로(존 디콘 역), 레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역),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역, 왼쪽부터)가 지난해 11월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 행사에 일본 전통의상 차림으로 참석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스바라시이아사가아케루(素晴らしい朝が明ける,아름다운 아침이 밝아온다) 요아케가요비카케루(夜明けが呼びかける,새벽이 말을 건넨다) 코코로노이즈미가와키데루(心の泉が湧き出る,마음의 샘이 솟아나온다) 유메노요우(夢のよう,꿈결처럼)… 요아케(夜明け, 새벽)키세츠(季節, 계절)유메(夢, 꿈)키보(希望, 희망) 우미토히카리가욘데루(海と光が呼んでいる, 바다와 빛이 부르고 있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로 화려하게 부활한 퀸의 리드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91)의 노래 ‘라 자포네즈(La Japonaise)’의 도입부다. 음유시인처럼 일본어 가사를 읊조리는 프레디의 유창한 일본어 발음이 인상적인 이 곡은 가사의 절반이 일본어다.

후지산ㆍ도쿄ㆍ교토 등 일본지명도 가사에 들어있고, 일본 전통악기 음을 차용하는 등 일본에 대한 사랑이 담뿍 담겨있다. 이 노래는 그가 에이즈를 앓으면서도 마지막 음악 열정을 불태웠던 솔로앨범 ‘바르셀로나’(1988)의 두번째곡으로 수록됐다. 프레디의 오랜 구애 끝에 앨범에 함께 참여한 스페인 출신 유명 소프라노 몽세라 카바예의 높고 청아한 목소리가 프레디의 바리톤 보컬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프레디 머큐리가 일본어 가사의 노래를 부른 건 이 뿐만이 아니다.
퀸의 5집 앨범 ‘A Day at the Races’(1976)의 마지막 트랙은 ‘테오토리아테(Teo Torriatte)’란 곡이다. 이는 일본어로 ‘손을 맞잡고’(手を取り合って)란 뜻. 이 곡의 후렴구는 ‘테오토리아테 코노마마이코(手を取り合って このまま行こう, 손을 맞잡고 이대로 함께 가요) 아이스루히토요(愛する人よ, 사랑하는 사람이여) 시즈카나요이니(静かな宵に, 조용한 밤에) 히카리오토모시(光を灯し, 등불을 켜고) 이토시키오시에오이다키(愛しき教えを抱き, 소중한 교훈을 마음에 품고서)’라는 일본어 가사로 돼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각별한 일본사랑, 일본어 가사 노래 두곡 불러  

이 두 곡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비롯한 퀸 멤버 전원의 일본 사랑이 담겨있다. 영미권의 세계적인 가수가 제목 뿐 아니라 가사에까지 일본어를 쓴 건, 매우 이례적인 일로 일본에 대한 극진한 사랑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퀸이 일본에 대해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된 건, 데뷔초 영미권에서 큰 인기가 없었던 자신들을 ‘수퍼스타’로 극진히 환대해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인기는 퀸을 세계적 밴드로 거듭나게 하는 기폭제가 됐다.
퀸이 1973년 데뷔했을 때만 해도 평단과 미디어의 시선은 그리 곱지 못했다. ‘시대착오적인 음악이다’ ‘독창성이 부족해 성공할 수 없다’등 혹평이 나오기도 했다. 그런 그들을 온몸으로 껴안고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준 나라가 일본이었다.
75년 4월 17일은 퀸의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날로 기억된다. 퀸이 처음으로 일본을 방문했던 그날 하네다 공항은 젊은 여성팬과 보도진 등 3000여명의 인파로 가득찼다. 퀸 멤버들은 경호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패닉상태의 공항에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숙박지인 도쿄프린스 호텔도 뒷문으로 겨우 들어가 체크인을 해야 할 정도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출연한 배우 조셉 마젤로(존 디콘 역),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역),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역, 왼쪽부터)가 지난해 11월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출연한 배우 조셉 마젤로(존 디콘 역), 라미 말렉(프레디 머큐리 역), 귈림 리(브라이언 메이 역, 왼쪽부터)가 지난해 11월초 일본 도쿄에서 열린 프리미어 행사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데뷔 때부터 일본에선 아이돌급 인기, 첫 방일때 열렬한 환대받아   

예상치 못했던 열광적인 환대에 브라이언 메이는 기자회견에서 “마치 다른 세상에 온 것 같다. 어떤 나라에서도 이같은 환영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사석에서 멤버들은 일본팬들의 환대에 “무서울 정도였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영미권에서 본격적인 인기궤도에 오르지도 못한 퀸에 일본팬들은 왜 그리 열광했던 걸까.
일본 음악잡지 특집기사 등을 통해 퀸을 알게 된 일본 여성팬들에게 퀸은 이미 아이돌급 존재였다. 순정만화 속 왕자님 같은 귀공자 풍 외모에 팝의 본고장 영국 출신이란 점, 그리고 심금을 울리는 수려한 멜로디 등의 요인이 당시 팝을 즐겨듣던 젊은 여성팬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부도칸에서 열린 퀸의 첫 일본공연은 초만원이었다. 공연 외에 방송 출연, 잡지화보 촬영, 인터뷰 등 퀸 멤버들은 눈코 뜰새 없는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외신의 표현대로 일본 열도가 ‘퀸 앓이’(Queen Fever)로 들썩였다. 퀸의 폭발적인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도 있었다.
76년 히메지 공연 때의 일이다. 멤버들이 도착할 기차역에 팬들이 쇄도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경호진은 그 전의 역에서 하차, 일반택시를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네 명의 멤버와 경호원 등 5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지금보다 좁은 옛날 택시에 거의 ‘구겨넣어진’ 상태로 승차한 일은 지금도 회자되는, 웃지못할 에피소드다.
‘테오토리아테’는 브라이언 메이가 만든 곡으로, 일본 팬들의 애정에 보답하고픈 퀸 멤버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당시 퀸의 일정을 함께 소화했던 통역사에게 부탁해 영어가사를 일본어로 바꿨다고 한다.
이처럼 퀸 멤버들 모두 일본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졌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한발 더 나아갔다. 밴드의 공식적인 방문 외에 개인적으로 방문할 정도로 일본에 마음을 빼앗겼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일본 포스터 [20세기 폭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일본 포스터 [20세기 폭스]

일본도자기 푹빠진 프레디 머큐리, 하루에 3억원어치 구입하기도 

일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은 일본 전통문화에 대한 심취로 이어졌다. 당시 퀸 공연을 담당했던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프레디는 개인적으로 일본을 방문할 때 식사도 거른 채 일본 전통도기 쇼핑에 열중했다. 백화점에서 하루에 3000만엔(약 3억원) 어치의 골동품과 미술품을 구입한 적도 있으며, 일본의 전통 도기를 보러 유명관광지도 아닌, 지방 미술관을 찾기도 했다.
특히 이마리야키(伊万里焼)라는 일본 도자기를 좋아했는데, 이는 정유재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인 도공들의 혼이 서려있는 예술품이다. 쇼핑하며 마음에 드는 도자기를 발견하면 손을 비비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프레디는 평소 우키요에(浮世絵ㆍ에도시대 말기 유행한 풍속화)등 일본 미술품 관련책을 읽으며, 일본 전통문화를 공부했고 나중에는 감정가 수준의 지식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런던 저택도 일본풍 개조, 차실에서 '라 자포네즈' 작곡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레미 말렉)가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장면 [20세기 폭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프레디 머큐리(레미 말렉)가 무대에서 열창하고 있는 장면 [20세기 폭스]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며, 런던 자택까지 일본풍으로 개조했다.
영국 거주 일본인 예술가를 불러 집 마당에 100평 규모의 일본식 정원과 차실(茶室)을 만들게 했는데, 일본인 예술가가 차실의 기와를 갈색으로 칠하자, 자신이 교토에서 봤던 색깔과 다르다며 회색으로 다시 칠하게 하기도 했다.
마당 연못에는 일본 사람들이 좋아하는 비단잉어를 키웠고, 봄이 되면 마당의 아름드리 벚꽃나무에 벚꽃이 만개했다. 프레디는 91년 사망 직전까지 차실에서 연못의 비단잉어를 바라보며 음악적 영감을 떠올리는 일상을 즐겼다고 한다. ‘라 자포네즈’를 만든 곳도 바로 이 차실이었다.

경호원에 세심한 배려, 명품시계와 일본도 선물하기도   

프레디가 사적인 일정을 포함해 7번 방일했을 때마다 늘 그의 곁을 지켰던 경호원 이타미 히사오(73ㆍ경비회사 대표)씨는 최근 주간 아사히와의 인터뷰에서 프레디의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난 일화를 밝혔다.
“퀸 멤버들은 경호원들에게 늘 친절히 대해줬어요. 일본에 올 때마다 카르티에 탁상시계, 라이타, 커프스 등을 선물했죠. 프레디는 ‘영국인은 신뢰하는 사람에게 카르티에를 선물해요’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한번은 프레디가 일본을 떠나는 날 공항으로 가는 길에 숍에 잠깐 들르자고 하더군요. ‘이타미, 손목시계를 골라봐요’라고 하길래 가장 싼 시계를 골랐더니 ‘그것 말고 이걸로 해요’라면서 가장 비싼 시계를 사줬어요. 지금도 그 시계를 손목에 차고 있습니다. 프레디가 마지막으로 방일했던 86년에는 제게 일본도를 선물해줬어요. 제가 예전에 검도 챔피언이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때는 정말 가슴이 뜨거워졌어요.”
한편 ‘보헤미안 랩소디’의 1000만 관객달성이 가시권에 들어온 한국 못지않게 일본에서도 영화의 흥행세가 뜨겁다. 일본에선 이 영화가 한국보다 9일 늦은 지난해 11월 9일 개봉했다. 개봉 8주차에 접어들었지만, 1월1일 기준 500만 관객을 돌파, ‘주먹왕 랄프2’를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역주행에 성공했다. 흥행수입은 6400만 달러로, 북미를 제외한 전세계 흥행수입 1위인 한국(7000만 달러)을 바짝 뒤쫓고 있다. 새해 첫날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부인과 함께 영화를 관람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정현목 기자 gojh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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