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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상가 사기 분양 주의보 … 과장·과대 광고에 허위 사실 유포도

중앙일보

입력

부산·울산·화성시 등지서 사기 분양 논란 잇따라 … 독점 업종 확약서, 유령 임차인 등 수법 교묘

2003년 사기 분양을 당했던 서울 동대문구 굿모닝시티 상가 계약자들이 굿모닝시티 부지 철거 건물에 혈서로 쓴 대형 현수막을 올리고 있다.

2003년 사기 분양을 당했던 서울 동대문구 굿모닝시티 상가 계약자들이 굿모닝시티 부지 철거 건물에 혈서로 쓴 대형 현수막을 올리고 있다.

2003년 6월 19일, 서울지방검찰청 특수부 수사관이 서울 동대문운동장 인근에 위치한 한 상가개발회사(시행사) 사무실과 이 회사 대표의 자택에 들이닥쳤다. 이때만 해도 그저 회사 대표가 상가 분양 대금 등 회사 돈을 횡령한 사건인가보다 했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이 회사가 당시 동대문에서 개발 중이던 테마상가의 부지 매입, 인·허가, 분양 등과 관련해 정치권과 검·경 등에 전방위 금품 로비를 벌인 대형 비리 사건이었다. 당시 여권의 핵심 정치인이 구속됐고, 검·경은 물론 공무원 등 20여 명이 줄줄이 붙잡혀 들어갔다. 이 사건은 이른바 ‘굿모닝게이트’로 불렸던 굿모닝시티 상가 사기 분양 사건이었다.

큰 충격 안긴 2003년 ‘굿모닝게이트’

굿모닝게이트는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정치인이, 검·경이 연루돼서만은 아니다. 시행사가 상가 건립 부지도 확보하지 않은 채 3400여 명에게 상가를 팔아 약 3700억원을 챙겼기 때문이다. 회사 대표는 이 돈으로 로비를 하고 호화생활을 했다. 당연히 3400명의 투자자들은 투자금을 온전히 회수하지 못했다. 적게는 1억~2억원에서 많게는 4억~5억원을 투자했지만 투자자 대부분이 투자금 일부를 허공에 날렸다. 평생 모은 재산을 한순간에 날린 한 투자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당시 한국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다.

굿모닝게이트가 터진 지 15년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상가 사기 분양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어 투자자의 주의가 요구된다. 굿모닝게이트를 계기로 상가 분양 방식이 선(先) 분양에서 후(後) 분양으로 확 바뀌면서 상가 시행사가 작정하고 사기를 치는 예는 거의 사라졌지만, 과대·과장 광고나 허위 사실을 통해 투자금을 끌어 모은 후 나 몰라라 하는 사건이 심심찮게 벌어지고 있다. 최근 부산시 기장군에서 벌어진 사건도 마찬가지다. 시행사는 지난해부터 허위 사실과 과대·과장 광고를 통해 투자자를 끌어 모았는데, 준공을 앞두고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지면서 지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피해자 측 주장에 따르면 피해자는 1000여 명, 피해액은 2000억원이 넘는다. 경찰은 최근 시행사 대표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구속 영장을 청구할 방침이다.

앞서 9월에는 동탄2신도시에서 한 중견 건설회사가 지은 단지 내 상가가 사기 분양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 회사는 2015년 분양 당시 인근의 경부고속도로 동탄2신도시 통과 구간 지하화로 동탄2신도시의 랜드마크 공원이 인접한 상가라고 홍보하며 분양했지만, 주변은 현재까지도 공원은커녕 허허벌판으로 남겨져 있다. 고속도로 지하화에 대한 타당성 논의가 교착상황에 빠진 영향이다. 4월에는 울산혁신도시 내 상가가 사기 분양 논란 휘말렸다. 일부 상가를 복층으로 개조해 활용할 수 있다며 분양했지만, 현행법상 복층 개조가 불법이었던 것이다.

미분양 상가에 대한 상가분양대행회사의 속임수도 교묘해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 미분양 상가 계약자들은 분양대행사가 제시한 독점 업종 확약서를 믿고 분양받았다가 낭패를 봤다. 독점 업종 확약서란 분양자가 임차할 수 있는 업종에 제한을 두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특정 호수에는 카페만 입점이 가능하도록 규제해 업종 중복을 피하는 것이다. 입주 이후엔 상가 관리단에서 확약서를 기반으로 업종 겹치기를 사전에 차단해 출혈 경쟁을 막는다. 이를 통해 상권 활성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계약 책임이 없는 분양대행사가 작성한 확약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며 “계약률을 올리기 위한 수단이어서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수도권의 미분양 상가에서는 ‘유령 임차인’ 앞세운 분양 사례도 나오고 있다. 마치 입점 예정인 임차인이 있는 것처럼 속여 분양하는 것인데, 투자자 입장에서는 임차인이 확정된 경우 공실 걱정이 없기 때문에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짜 임차인을 내세우거나 가짜 임대차 계약서를 통해 상가 분양가를 뻥튀기해 분양한 뒤 분양대행회사가 사라지는 예가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상가 분양대행회사 관계자는 “위례신도시 등 수도권 신도시마다 미분양 상가가 많다보니 이러저런 수법을 동원해 사기 행각을 벌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며 “주변 임대 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비싸게 계약된 임대차계약은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과장·과대 광고나 확약서, 유령 임차인을 앞세운 상가 분양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내다본다. 정부의 주택시장 규제로 시중 유동자금이 풍부한 상황에서 수도권 신도시를 중심으로 고분양가로 인한 미분양 상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상가 분양 계약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가 분양 계약서에 시행사 혹은 분양대행사가 강조한 내용을 명시하지 않으면 향후 법적 효력을 갖기 어렵다. 시행사나 분양대행사가 구두로 설명한 내용은 계약서에 반드시 기재해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구제받을 근거가 된다. 미분양 상가를 분양이 아닌 일반 매매 형태로 계약할 때도 해당 상가에 독점 업종 확약이 있는지 여부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확인 없이 특정 업종 임차인과 계약을 맺었다가 나중에 상가 관리단에서 확약서를 제시하며 개점 불가라고 할 경우 하소연 할 데도 없다.

임대차 실제 여부 확인해야

유령 임차인으로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임대 계약의 주체를 확인해야 한다. 선임대 계약자가 분양 영업사원이라면 가짜 계약일 가능성이 크다. 임대 계약이 상가 시행사와 체결됐다면 향후 계약자 명의로 승계하는 임대차승계계약서를 발급해주는지 확인해야 한다. 임대차 계약금이 정상적으로 오갔는지도 확인할 필요가 있다.

최광석 로티스합동법률사무소 변호사는 “계약금을 영업사원이 갖고 있다면 가짜 계약일 가능성이 크고 임차인이 지불한 계약금이 일반적인 수준보다 적은 경우도 의심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권강수 이사는 “유명 프렌차이즈의 입점의향서를 보여주면서 실제 계약이 이뤄진 것처럼 유혹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며 “입점의향서는 말 그대로 입점할 의향이 있다는 의미일 뿐 계약이 확정된 게 아닌 만큼 실제 계약서를 확인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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