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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주 이탈리아 북 대사, 서방국가 망명 타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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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모습. [구글맵 캡처]

이탈리아 북한 대사관 모습. [구글맵 캡처]

북한의 조성길(48) 이탈리아 주재 대사대리가 최근 잠적해 서방 국가로의 망명을 타진 중이라고 외교 소식통이 2일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탈리아 로마에서 근무 중이던 북한 대사관의 대사대리가 지난달 초 이탈리아 정부에 신변보호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서방 국가로 망명을 요청했고 이탈리아 당국이 그의 신병을 안전한 곳에서 보호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신변보호 요청은 제3국 망명을 진행하는 동안 본국(북한)으로 송환되지 않기 위한 외교 절차로, 그가 한국행을 희망하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식통은 “이탈리아 당국이 신병 처리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15년 부임 조성길 대사 대리 #이탈리아 당국서 신병 보호 중 #한국행 희망 여부는 확인 안 돼 #“북한 최고위급 아들 또는 사위”

외교 당국자는 “북한은 2000년 1월 이탈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고 그해 7월 대사관을 개설해 운영 중”이라며 “북한은 대사를 파견했지만 2017년 북한의 6차 핵실험(9월 3일) 이후 이탈리아 당국이 문정남 대사를 추방한 뒤 그해 10월부터 조성길이 대사를 대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단 “조 대사대리의 현재 근황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곤란하다”고만 밝혔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전문가는 “조성길은 북한 정권 내 최고위급 인사의 아들 또는 사위로 알려져 있다”며 “그가 대사대리 직함이지만 사실상의 대사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과거 해외 공관에서 근무하던 북한 외교관들의 망명은 고영환(1991년, 콩고 대사관 1등서기관), 현성일(96년, 잠비아 대사관 3등서기관) 등 여러 차례 있었다. 2016년엔 영국 대사관의 태영호 공사가 한국행을 택했다. 앞서 1997년에는 장승길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가 영국에서 참사관으로 근무하던 형(장승호)과 가족을 동반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하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집권한 뒤 대사급의 망명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길의 망명 시도 배경은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가 2015년 5월 현지에 부임했던 점을 고려하면 3년 동안 이탈리아에서 근무한 뒤 본국에 귀환(소환)하라는 지시가 있었고 이에 불응했을 가능성이 있다. 익명을 요구한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는 “북한 외교관 중 특별한 경우 한 곳에 10년 이상씩 머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2~3년 주기로 인사이동이 있다”며 “특히 선진국에서 근무하던 외교관들은 평양으로 들어오라는 소환 명령을 받으면 불만을 가지는 경우가 있다”고 귀띔했다. 이 외교관 출신 인사는 “선진 교육을 받았던 아이들의 장래를 생각해 소환 소식을 접한 일부 외교관은 망명을 고민하기도 한다”며 “이 때문에 북한에선 외교관이나 해외 대표부에 나가는 사람들의 가족 일부를 평양에 남기도록 하는데 출신성분이나 배경이 든든한 이들은 모든 가족이 동행한다”고 덧붙였다. 조성길은 부인 및 자녀들과 함께 이탈리아에서 생활했다. 이를 놓고 그가 북한 내 최고 핵심계층 집안이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조성길, 가족도 함께 신변보호 요청…김정은 집권 뒤 대사급 망명은 처음 

조성길은 이탈리아 당국에 가족들을 동반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는 점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고민하며 치밀하게 준비했으리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대사 역할을 하던 조성길의 잠적 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당국에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북한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주축이 돼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반이 구성됐고, 조사반이 최근 이탈리아를 찾아 상황 파악과 함께 외무성에 대한 조사도 진행했다는 첩보도 돌고 있다. 복수의 대북 소식통들은 “이런 정도의 사안이면 최고지도자에게 당연히 보고됐을 것이고 역시 당연히 철저한 조사 지시가 내려갔을 것”이라며 “최고지도자가 격노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한편 박광호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선전선동부장)이 지난 1일 신년 맞이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도 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당국이 신변 이상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북한 관영 언론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일 새해를 맞아 당·정·군 고위인사들을 대동하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박광호 부장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조선중앙TV 등이 공개한 동영상에도 그의 얼굴은 나타나지 않았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9월 9일 정권수립 70주년을 맞아 이번과 유사한 규모의 참배를 했는데, 당시 박광호 부장은 김 위원장 오른쪽(사진상 왼쪽)에 자리했다. 북한에서 선전선동부는 조직지도부와 함께 당 조직의 양대 축이다. 각종 당 행사에서 박광호는 최용해 조직지도부장과 함께 김 위원장 옆을 지켜 왔다. 정부 당국자는 “박광호 부장은 지난해 12월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7주기 참배 때도 참석하지 않았다”며 “당 부위원장 11명 중 유독 그만 모습을 감추고 있어 배경을 추적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태화·백민정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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