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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김장, 돼지고기김치∙명태김치∙준치김치 아시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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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우리나라 김장의 실제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10월 말~12월 중순 전국 9곳의 현장을 찾아다녔다. 자연환경에 따라 ▷동부 산간지역 ▷서부 평야지역 ▷동서 해안지역 ▷섬 지역 4개 권역으로 나눠 살펴봤다. 지역별 김치는 대동소이(大同小異)했지만, 작은 특성이라도 찾아보려 노력했다. 이번 주에는 동서 해안지역인 속초 청호동과 평택 포승읍의 김장을 소개한다.

속초 옥이네밥상: 동태 살, 돼지 목살이 푸짐하게 들어간 김치

속초 청호동에서 ‘옥이네밥상’을 운영하는 김옥이(61)씨는 ‘아바이마을 또순이’, ‘아바이마을의 딸’이라는 말을 듣는다. 그 동네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열심히 살아 오늘날 음식으로 일가를 이뤘다. 매주 동네 노인정에 식사 봉사도 한다. 그 부지런하고 마음 따뜻한 성정을 아끼는 사람들이 그런 애칭을 붙여줬다. 그가 지난달 28일 두벌 김장을 했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던 날이다. 서울 최저 기온 영하 14도, 속초는 영하 11도였다.

지난해 10월 하순에 담근 명태김치. 살을 저며 넣지 않고 좀 작은 동태를 토막 쳐 넣었다.

지난해 10월 하순에 담근 명태김치. 살을 저며 넣지 않고 좀 작은 동태를 토막 쳐 넣었다.

속초지역은 우리나라에서 김장 시기가 가장 이른 편이다. 예전 땅에 묻을 때는 10월 중순 시작해 월말이면 끝냈다. 요즘엔 때가 있는 건 아니지만 10월 말부터 11월 초에 한다. 옥이네도 지난해 10월 하순 배추 50포기 명태김치를 담갔다. 명태김치는 상온에서 40일쯤 숙성해야 뼈까지 다 삭아서 제 맛을 볼 수 있다. 초벌 김장이 떨어질 때를 대비해 이번에 30포기로 두벌 김장을 한 것이다. 20포기는 명태김치, 10포기는 돼지고기김치를 담갔다.
그의 어머니는 함경도 바닷가 출신인데 어린 나이에 홀로 월남했다. 속초에서 의지할 데가 없어 아버지 집에 민며느리로 들어가 자라서 가정을 이뤘다. 어머니는 음식을 잘했다. 그 함경도 음식 솜씨를 딸이 물려받아 향토음식 식당을 하면서 10여 가지 젓갈을 담가 판매도 한다.
그는 돼지고기김치에 아릿한 추억이 있다. 어렵게 살던 1960년대 후반, 초등학생 때 매주 함경도에서 내려온 아바이마을 오징어 배 선주 집에 놋그릇을 닦으러 다녔다. 요즘으로 치면 초등학생이 알바를 다닌 거다. 그때 오징어 배가 있으면 엄청 부잣집이었다. 선주 집에서 돼지고기김치를 처음 먹어봤다. 고기가 귀하던 시절이기도 하지만, 그 김치가 어찌나 맛있었던지 잊을 수가 없었다. 생각이 나서 3년 전에 해 먹어봤다. 여전히 맛있었다. 그래서 올해 다시 담그기로 했다.
함경도에서 내려온 사람들 중에도 돼지고기김치는 부잣집에서나 먹던 고급 김치였다. 요즘도 아바이마을 노인정에서는 잔치국수를 해 먹으면 반드시 돼지고기 삶아서 그 국물에 국수 말고 편육을 고명으로 올려서 먹는다.

돼지고기김치에 들어갈 목살. 얇고 넓적하게 포를 떠서 끓는 물에 살짝 익혔다.

돼지고기김치에 들어갈 목살. 얇고 넓적하게 포를 떠서 끓는 물에 살짝 익혔다.

돼지고기김치에는 배추 10포기에 아이들 손바닥만하게 저민 목살 5㎏을 살짝 삶아서 넣었다. 고기에는 아무 양념도 하지 않는다. 목살이 기름기가 적어서 좋다고 한다. 김칫소 넣기는 양념을 손에 쥐고 배추 줄기에 얇게 펴 바르듯 빠르게 했다. 양념이 너무 진하면 배추 맛을 가리기 때문에 옅게 하되 김치를 상에 냈을 때 고운 붉은색이 날 정도로 한다. 양념을 바르면서 배추 쪽마다 두 번 줄기 사이에 돼지고기를 두 점씩 끼워 넣었다. 양념이 다 끝나면 배추 중간을 양손으로 잡고 들어올린 다음 늘어진 겉잎을 반으로 접듯이 포개면서 말아 통에 꼭 눌러서 담았다.

‘옥이네밥상’ 주인 김옥이씨가 돼지고기김치에 소를 넣고 있다.

‘옥이네밥상’ 주인 김옥이씨가 돼지고기김치에 소를 넣고 있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갈피를 벌려 양념하지 않은 돼지고기를 두세 점씩 끼워 넣는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갈피를 벌려 양념하지 않은 돼지고기를 두세 점씩 끼워 넣는다.

돼지고기김치의 숙성과 저장은 일반 김치와 비슷하다. 요즘 같은 한 겨울에는 실내 상온에서 10일, 춥지 않을 때는 일주일쯤 익혀 저온 냉장고에 넣는다.
명태김치는 해마다 담근다. 속초 일반 가정에서도 많이 해 먹는다. 양념이나 김칫소 넣기는 돼지고기김치와 동일하지만 명태 살을 김치 쪽마다 줄기 사이에 서너 점씩 세 차례 넣는다. 명태 살에 별도의 양념은 하지 않는다.

김칫소로 들어갈 명태 살. 동태 한 마리를 2장으로 포 뜬 걸 1㎝ 내외 크기로 잘랐다.

김칫소로 들어갈 명태 살. 동태 한 마리를 2장으로 포 뜬 걸 1㎝ 내외 크기로 잘랐다.

이날 쓴 명태는 러시아에서 큰놈을 뼈 발라 2쪽으로 포를 떠 얼린 걸 들여온 것이다. 그걸 녹여 손가락 크기로 잘라서 잘라 김칫소로 썼다. 20포기 김치에 명태 1.5상자(9만원어치)가 들어갔다. 10월 하순 초벌 김장 때는 좀 작은 명태를 토막 쳐서 대가리까지 줄기 사이에도 넣고 포기 사이에도 많이 넣었다. 그렇게 100㎏을 담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부 팔고, 나머지는 저장했다. 재료비가 많이 들어간 음식이라 10㎏(실제론 12~13㎏)에 18만원 받았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줄기 사이에 양념하지 않은 명태 살을 5~6점씩 끼워 넣는다.

절인 배추에 양념을 바르고 줄기 사이에 양념하지 않은 명태 살을 5~6점씩 끼워 넣는다.

담그는 과정을 마치고 통에 담은 명태김치. 상온에서 40일 익혀야 살이 삭아 제 맛이 난다.

담그는 과정을 마치고 통에 담은 명태김치. 상온에서 40일 익혀야 살이 삭아 제 맛이 난다.

명태김치는 뼈가 말랑말랑하게 삭으려면 예전 땅에 묻을 때는 두 달 지나야 했다. 요즘은 비닐봉지에 넣고 PVC통에 담아 이동하지 않고 상온에 40일쯤 두면 익는다. 이때 저온 저장고에 넣고 꺼내 먹는다. 비닐봉지는 공기 들어가지 말라고 쓰는 것이고, 자꾸 움직이면 맛이 없어지니까 한자리에 둔다. 김치냉장고는 안 쓴다. 김치냉장고에 넣어봤더니 맛이 제대로 안 났다.

농사지은 고춧가루, 찹쌀풀, 개복숭아청, 3년 삭힌 잡젓 국물 등을 넣고 버무린 양념.

농사지은 고춧가루, 찹쌀풀, 개복숭아청, 3년 삭힌 잡젓 국물 등을 넣고 버무린 양념.

김칫소에 들어간 양념은 찹쌀풀, 직접 농사 지어 약간 굵게 빻은 고춧가루, 개복숭아청, 마늘, 생강, 간 양파∙배를 넣고, 갓∙쪽파∙무채를 섞었다. 좀 맵게 하려면 고추씨도 넣는다. 젓갈은 3년 묵은 잡젓을 국물만 걸러서 쓴다. 잡젓에는 갈치∙황석어∙밴댕이∙붉새우와 고등어∙청어 새끼 등 섞여 잡힌 생선 8가지 정도가 들어갔다. 3년을 넘겨야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그 전에는 비려서 먹지 못한다. 3년 지나 항아리 뚜껑을 열면 구수하고 단맛이 난다. 국물을 거르고 남은 건더기를 양념해서 무쳐도 짜지 않고 맛있다.

3년 삭힌 잡젓 국물. 찍어 먹어보니 비린내는 거의 안 나고 맛이 구수했다.

3년 삭힌 잡젓 국물. 찍어 먹어보니 비린내는 거의 안 나고 맛이 구수했다.

속초 사람들은 꽁치젓갈이나 오징어 이리(정소)젓갈 넣은 김치를 많이 해 먹었다. 요즘도 가정에서는 조금씩 하지만 음식점에서는 먹기 어렵다. 특히 오징어 이리는 할복장에서도 따로 빼지 않고 어디로 다 가지고 간다. 들리는 얘기로는 화장품 공장으로 간다고 한다.
 배추는 초벌 김장은 직접 재배한 걸로 했다. 김씨는 통이 큰 것보다 키 작고 파란 잎이 적은 쌈배추 같을 걸 좋아한다. 시장에 가면 망에 들어있는 큰 포기는 사지 않고 1차 정선해 박스에 담아 파는 배추를 고른다.

배추를 12시간쯤 절인 상태다. 단면에 뿌린 소금이 아직도 녹지 않고 많이 남아 있다.

배추를 12시간쯤 절인 상태다. 단면에 뿌린 소금이 아직도 녹지 않고 많이 남아 있다.

배추를 많이 절일 때는 바닷물을 받아서 한다. 바닷물에 배추를 담그면 30포기 기준, 배추 단면에 소금 3㎏쯤을 뿌려 12~13시간 절인다. 소금물로만 절일 때는 30포기에 소금 3㎏은 물에 풀고 7㎏는 배추 단면에 뿌려 모두 10㎏을 쓴다. 같은 시간(두벌 김장 땐 오후 8시~ 다음날 오전 9시) 절인다.

 ‘옥이네밥상’ 주인 김옥이씨가 전날 오후 8시에 절인 배추를 다음날 오전 9시에 헹궈 건지고 있다.

‘옥이네밥상’ 주인 김옥이씨가 전날 오후 8시에 절인 배추를 다음날 오전 9시에 헹궈 건지고 있다.

강원도에서 자란 키 작은 배추는 줄기가 단단해서 절이는 시간이 길다. 12~13시간 절여도 속대는 숨이 거의 죽지 않았다. 김씨는 푹 절이는 것보다 살짝 덜 절여야 양념과 배추 즙이 어우러지면서 맛이 더 좋아진다고 했다. 또 명태김치는 40~60일 정도 푹 익혀야 명태 살과 뼈가 충분히 삭기 때문에 배추를 너무 절이면 김치가 익으면서 줄기가 무른다. 그래서 줄기가 무른 물배추를 피하고, 푹 절은 걸 싫어해 약하게 절인다. 김씨는 “강원도 배추는 줄기가 단단하고 고소하면서 단맛이 돈다. 김장을 해도 싱싱한 아삭함이 오래간다. 남녘 배추를 써봤더니 줄기가 무르고 고소한 맛도 적었다”고 했다.

배추를 13시간 절였지만 가운데 두꺼운 줄기는 생생하다. 명태김치는 40일 이상 숙성해야 하므로 배추를 푹 절이면 줄기가 무르기 때문에 약하게 절인다.

배추를 13시간 절였지만 가운데 두꺼운 줄기는 생생하다. 명태김치는 40일 이상 숙성해야 하므로 배추를 푹 절이면 줄기가 무르기 때문에 약하게 절인다.

배추는 작은 걸 쓰기 때문에 절일 때 두 쪽으로 가르는데, 통이 좀 큰 포기는 김칫소를 넣을 때 한번 더 반으로 가른다. 손님상에 김치를 낼 때 줄기를 자르지 않고 꼭지만 따서 한 쪽을 모두 접시에 담기 때문에 너무 크면 버리는 게 많아진다.
명태김치와 돼지고기김치는 원가가 비싸 식당 손님용으로 쓰지는 못한다. 큰 단골이나 귀빈 접대용으로 쓴다. 별찬으로 팔아보라고 권했더니 김치를 따로 사 먹으라고 하면 원하는 손님이 별로 없을 것이라고 했다. 지금 파는 음식에 대해서도 들이는 정성을 몰라주고 왜 이리 비싸냐고 불평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그의 아버지는 속초 외옹치가 고향이다. 조그만 문어 잡이 배를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 배를 타고 새벽에 바다에 나가 일 돕고 아침에 들어와 학교에 가기도 했다. 앞바다 조도(청호초등학교에서 1.2㎞)까지 헤엄쳐 건너가 작살로 고기 잡고 홍합 따서 끓여 먹고 해초도 많아 뜯어오곤 했다. 거기가 어릴 적 놀이터였다. 먹을 것 부족하던 시절 바다는 풍요로웠다. 겨울에도 허벅지까지 물이 올라오는 바다에 들어가 전복∙해삼∙멍게∙파래 같은 걸 따다가 시장에 팔고 학교에 가기도 했다. 그때 터득한 바다가 오늘날 음식 솜씨의 밑거름이 됐다.

평택 댓골재 양조장: 준치 없어 10년 못 담가…대신 밴댕이로

평택시 포승읍 희곡리에 있는 댓골재 양조장(밝은세상녹색영농조합) 집안의 가전 비법인 준치김치는 2015년 슬로푸드 국제본부 ‘맛의 방주’ 목록에 올랐다. 지난해 9월 28일 SBS ‘폼 나게 먹자’ 프로그램에서도 이 김치를 소개했다. 양조장은 13대 토박이인 서양화가 이계송(71) 화백과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 이인자(67)씨 부부가 두 딸과 함께 술도 빚으면서 음식점과 갤러리도 운영하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댓골재 양조장 갤러리에서 본 이계송 화백의 옛집과 양잠실을 개조한 양조장(오른쪽). 옛집에서 전승된 전어김치는 2015년 슬로푸드 국제본부 ‘맛의 방주’ 목록에 올랐다.

댓골재 양조장 갤러리에서 본 이계송 화백의 옛집과 양잠실을 개조한 양조장(오른쪽). 옛집에서 전승된 전어김치는 2015년 슬로푸드 국제본부 ‘맛의 방주’ 목록에 올랐다.

이 마을은 한반도를 호랑이 형상으로 볼 때 배꼽에 해당하는 곳이라고 비정(比定)한다. 그래서 막걸리 이름을 ‘호랑이배꼽’이라고 지었다. 자연농법으로 재배한 쌀과 새싹현미, 지하 40m 암반수와 누룩만으로 가양주 빚듯 100일 숙성한 프리미엄 막걸리다.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한 ‘찾아가는 양조장’ 방문 행사에 참여해 지난해 10월 19일 이곳에 찾아가 술과 김치 맛을 보고 준치김치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실제 김장 현장은 취재하지 못했다.
평택항에서 북동쪽으로 3㎞ 거리에 있는 양조장 안주인 이씨의 친정은 시집에서 아산만 건너 맞은편인 아산시 인주면이다. 결혼해 작품활동하는 화가 남편과 1980년대 말까지 서울에 살다가 귀향했다.

댓골재 양조장 집안의 가전 비법인 준치김치 대를 잇는 서양화가 이계송 화백과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 이인자씨 부부. 이 화백은 이곳에서 생산한 증류주 ‘소호’ 한 병을 들고 있다.

댓골재 양조장 집안의 가전 비법인 준치김치 대를 잇는 서양화가 이계송 화백과 도예가이자 요리연구가 이인자씨 부부. 이 화백은 이곳에서 생산한 증류주 ‘소호’ 한 병을 들고 있다.

평택∙아산 지역에서는 흔히 생선을 통으로 넣고 김장을 했다. 옛날에 있는 집은 준치김치 담그고 일반 가정에서는 밴댕이김치를 담갔다. 날 생선 싫어하는 집은 아무것도 안 넣고 담그기도 했다. 이 집안에서는 노인들 접대하기 위해 준비한 음식이다.
이 화백 아버지는 자수성가해 염전∙정미소(방앗간)∙목재상을 겸업했다. 이 일대에서 알아주는 알부자였는데 사람이 집에 오는 걸 좋아했다. “사람 많이 올 때가 호시절이다. 사람이 복이다”라고 늘 얘기했다. 아버지는 생신 때 잔치 대신 문객들을 초대해 시회(詩會)로 했다. 4~5월에 문객이 15명쯤 오고 구경꾼까지 수십 명이 모여도 다 대접을 했다. 손님이 많으면 하루에 쌀 한 섬(80㎏)이나 밥을 지었다.
잔치 음식은 주로 준치김치, 낙지 탕탕이와 연포탕이었다. 가을에 김치를 따로 만들어 행사용으로 광에 저장했다. 김치에 넣은 준치는 겨울을 나면서 뼈와 가시가 다 삭아 치아가 부실한 노인들이 먹기에 편했다. 준치는 단백질이 아주 풍부한 물고기이니 육류가 부족하던 시절 노인들에게는 보양음식도 됐을 것이다. 생일에는 다른 음식도 그런 사정을 다 고려해 장만했다.

2년 묵은 밴댕이김치. 1년을 더 묵었어도 1년 묵은 김치의 밴댕이와 형태 차이는 없다.

2년 묵은 밴댕이김치. 1년을 더 묵었어도 1년 묵은 김치의 밴댕이와 형태 차이는 없다.

준치(밴댕이)김치는 오래 익혀야 맛있다. 발효 시간이 오래 걸린다. 11월 말~12월 초에 김장을 하면 다음해 4월에 먹는다. 5개월은 익혀야 준치의 많은 가시들이 다 삭아 제 맛이 난다. 비늘 벗기지 않고 씻기만 해서 담가도 비늘까지 다 삭는다. 뼈는 다 삭아도 살은 쫀득한 질감이 살아있다. ‘썩어도 준치’라 하듯 맛은 있지만 가시가 많아 먹기 성가신 생선을 김치로 담가 뼈를 삭혀서 먹은 듯하다. 땅에 묻은 김칫독에서 2월쯤 되면 비린내가 많이 났다. 그게 뼈 삭는 냄새다. 비린내 나는 과정을 거쳐야 맛이 제대로 나온다. 이상하게도 춥지 않은 날 김장을 담그면 맛이 덜했다.
이씨는 새댁 때 시어머니 김장 보조하면서 준치김치를 배웠다. 시어머니는 김장 날에는 준치 다져서 빚은 완자 넣고 가을 배추 탕을 끓였다. 절이다 떨어진 배춧잎으로 탕을 끓이기도 했다(강화 교동도에서도 김장 날 배추탕을 별미로 꼽았다). 시어머니는 이처럼 오래 두고 먹는 밑반찬보다 즉석요리를 즐겨 했다.

김치 통에서 1년 묵은 밴댕이김치 한쪽을 들어올려 보여주고 있다.

김치 통에서 1년 묵은 밴댕이김치 한쪽을 들어올려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준치김치를 못 담근 지 10년이나 됐다. 서울에 살면서는 담그지 않아 잊고 지내다가 귀향해 어느 해 담그려고 보니 시장에서 준치를 구할 수가 없었다. 여기 저기 알아보았는데도 구할 수 없었다. 실제로 한국 해역에서 준치는 잡히지 않고 있다. SBS 프로그램에 나온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48)씨는 방송에서 "준치를 구하려고 전국 8도로 알아봤다. 그런데 못 구했다. 어획량이 서서히 줄다가 2010년대에 거의 잡히지 않는 생선이 됐다"고 말했다.
2017년 가을에는 시장에 일본산만 있다고 해 께름칙해서 안 샀다. 준치를 구하지 못하는 동안 ‘꿩 대신 닭’이라 하듯 밴댕이로 담갔다. 부인 이씨는 “내년부터는 일본 거라도 사다가 담가야겠다. 국산 준치 기다리다가 음식 대 끊길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준치는 본래 4~7월 서남해안에서 잡히는 생선이다. 밴댕이도 비슷하다. 정약전(1758∼1816)은 『자산어보』에서 준치에 대해 “시어다. 속명을 준치어라 한다. 크기는 2~3자이고, 몸은 좁고 높다. 비늘이 크고 가시가 많으며, 등은 푸르다. 맛이 좋고 산뜻하다. 곡우가 지난 뒤에 우이도(신안군 도초면)에서 잡히기 시작한다. 점차 북상하여 6월 중에 해서(황해도)에 이르기 시작한다. 어부는 이를 쫓아 잡는데 늦은 것은 이른 것만 못하다. 작은 것은 크기가 3~4치이며 맛이 매우 박하다”고 설명했다. 자산어보의 시기는 음력 기준이고, 곡우는 양력 4월 20일쯤이다.

밴댕이김치는 반듯하게 뉘어 통에 담아둔다. 김치 줄기들 들추자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밴댕이가 드러난다.

밴댕이김치는 반듯하게 뉘어 통에 담아둔다. 김치 줄기들 들추자 모양을 그대로 유지한 밴댕이가 드러난다.

김치에 통 젓갈을 넣는 경우도 흔하지만 이 댁에서는 생 준치(밴댕이)를 통째로 배추 줄기 사이에 끼워 넣는다. 냉동하더라도 염장하지 않고 얼렸다가 막걸리 섞고 소금을 푼 얼음물에 녹여서 건져 닦아서 쓴다. 준치(밴댕이)에 찹쌀풀∙고춧가루∙소금을 약간 넣고 버무려 절인다. 얼른 하지 않으면 밴댕이에서 상한 냄새가 날 수도 있다. 김칫소 양념은 일반적으로 하는 방법과 같지만 새우젓은 싱싱한 것을 다져 넣거나 오래 둬서 삭은 것은 국물만 꼭 짜서 넣는다.
생 준치를 쓸 때는 살이 두꺼워서 소금을 많이 쓴다. 간수를 빼지 않은 소금을 사용하면 맛이 써서 김치를 버리게 된다. 짠맛에 쓴맛이 보태지면 먹을 수가 없다. 이렇게 저렇게 살림에 소금을 많이 써서 안주인은 소금 욕심이 많다. 20㎏짜리 100포대 정도는 늘 준비해두고 산다고 한다.
김치를 버무릴 때는 4등분해서 절인 배추에 갈피마다 양념을 버무린 다음 도마에 뉘고 뿌리 쪽에서 포기 중간까지 가로로 두 번(3층이 되도록) 칼집을 낸다. 그 사이에 양념으로 절인 밴댕이를 배춧잎 한 장에 한두 마리 꼴로 끼워 넣는다. 완성된 김치를 통에 담을 때는 밴댕이가 옆으로 새 나가지 않도록 포기를 나란히 뉘어 저장한다. 2017년 김장 때는 배추 12포기를 담그는 데 밴댕이 780마리가 들어갔다고 한다. 포기 당 65마리가 들어간 셈이다.

2017년 김장 때 전어를 구하지 못해 대체재로 담근 밴댕이김치. 두부 구이와 어울려서 상에 냈다.

2017년 김장 때 전어를 구하지 못해 대체재로 담근 밴댕이김치. 두부 구이와 어울려서 상에 냈다.

밴댕이김치는 두부 구이와 한 접시에 담아 내왔다. 배춧잎 2~3장을 겹친 위에 한입 크기로 자른 밴댕이 2마리가 머리부터 꼬리까지 원래 모습대로 누워 있다. 1년 묵은 김치에서 밴댕이 머리를 먹어봤는데 씹을 때 뼈가 걸리는 게 하나도 없었다. 살은 부드럽게 녹았다. 배추 줄기와 곁들여 먹으니 맛이 깊고 시원하고 고소했다. 밴댕이 통 젓갈을 흔히 쓰는 강화도 김치에 비해 맛이 진하고 고소했다. 젓갈은 짜서 많이 넣을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생 밴댕이를 쓰니까 아주 많이 넣어서 김치를 담가 맛이 더 진하고 고소한 듯했다. 2년 묵은 김치의 밴댕이는 오히려 살이 고들고들했지만 비린내도 희미하게 올라왔다. 밴댕이는 5월에 사서 냉동해 뒀다가 가을에 꺼내 녹여서 담갔다고 한다. 2년짜리 김치는 이 화백이 유기농 방식으로 농사지은 배추로 담가 옛날 배추처럼 키도 작고 푸른 잎이 많으면서 포기도 부실하지만 줄기가 단단해 무르지 않고 아삭아삭했다.

2016년 가을에 담근 밴댕이김치. 1년 묵은 김치의 밴댕이 살보다 더 존득한 느낌이었다.

2016년 가을에 담근 밴댕이김치. 1년 묵은 김치의 밴댕이 살보다 더 존득한 느낌이었다.

풀지 못한 궁금증도 있다. 준치(밴댕이)를 지금은 냉동해 뒀다가 늦가을 김장 때 녹여서 쓸 수 있지만, 예전엔 어떻게 했을지 궁금하다. 요즘은 생선 철에 맞춰 김치를 봄에 담그기도 한다고 하나 냉장고가 없던 시절엔 여름을 어떻게 났을지 또한 궁금하다.
글∙사진=이택희(음식문화 이야기꾼) hahnon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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