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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 ‘IR52 장영실상’ 힌트 준 사람은 전두환 정부 때 쫓겨난 과학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일하던 1990년 8월 초 국무회의 참석차 과천 과학기술처에서 서울 정부종합청사로 향하던 중 잠시 짬을 내 남대문 근처의 단암산업 사장실에 들렀다. 사장인 이경서 박사는 내 친구로 서울대 공대에 1년 다니다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MIT)로 유학을 떠나 학사·석사·박사 과정을 마친 기계공학 전문가다. 귀국해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를 거쳐 국방과학연구소(ADD) 대전기계창(‘유도탄 연구소’의 암호명)에서 유도탄 개발사업인 ‘백곰사업’으로 자주국방의 기틀을 닦았다. 조선·기계·자동차·중공업 등 기계공업 육성책도 입안했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7) #<70> 이경서 박사의 쓴소리 #MIT출신 이 박사, '백곰 사업' 주도 #ADD, 유도탄 개발 자주국방 사업 #전두환 정권, 기술자 800명 해고 #원자력연구소 폐쇄 추진하다 중단 #이 박사, 산업기술에도 관심 많아 #영감 받아 IR52 장영실상 제정해

7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백곰 사업을 통해 개발한 한국형 지대지미사일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중앙포토]

78년 9월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백곰 사업을 통해 개발한 한국형 지대지미사일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중앙포토]

그런데 79년 10월 26일 박 대통령 서거 뒤 출범한 전두환 군사정권은 이듬해에 돌연 ADD 과학기술 인력의 3분의 1인 800여 명을 해고했는데 이 박사는 1호로 희생됐다. 신군부는 한국원자력연구소도 폐쇄하려 했지만, 관료와 과학기술자들의 강력한 반대로 명칭만 한국에너지연구소로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다. 도덕성 없는 군사정권이 미국에 인정받으려고 자주국방과 에너지 자립의 핵심을 없애려 했다는 주장도 있다. 정부는 몇 년 뒤 사과했지만, 정치군인들의 ADD 집단 해고는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ADD 과학기술자들의 숨은 공헌을 잊지 말아야겠다.

78년 9월 국산 미사일인 &#39;백곰1호&#39;의 발사 성공 직후 이경서 박사(왼쪽)이 박정희 대통령의 격려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78년 9월 국산 미사일인 &#39;백곰1호&#39;의 발사 성공 직후 이경서 박사(왼쪽)이 박정희 대통령의 격려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이날 만난 이 박사는 내게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국가가 막대한 연구개발비를 지원하는 이유는 국방과학을 키워 안보를 지키고 기술개발로 산업 경쟁력을 강화하라는 것인데 지금의 과학기술 정책이 과연 그렇게 하고 있는가?”
이 박사의 비판은 거셌지만 옳은 말이었다. 기술혁신의 75%는 현장에서 일어나는데 과학기술계는 학자들의 논문·특허 건수에 집착하며 산업현장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다시 정부종합청사로 향한 나는 현장 기술혁신과 기업 연구투자를 촉진할 방법을 놓고 고민에 빠졌다. 그 순간 미국과학재단의 과학기술정책 연구부장에서 미국경영협회 간부로 이직했던 앨 빈 박사가 떠올랐다. 빈 박사의 제안으로 미국에선 매년 산업기술 우수사례 100개를 선정해 연말에 ‘IR100’이라는 상을 준다. 정부가 인정하는 산업기술 혁신상이다. 한국에서 연 100개는 힘드니 매주 하나씩, 연 52개를 뽑는 건 가능할 것 같았다.

78년 9월26일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국내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의 성공적인 발사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미사일 옆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들로부터 동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78년 9월26일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국내 최초의 지대지 미사일인 백곰의 성공적인 발사 직후 박정희 대통령이 미사일 옆에서 국방과학연구소(ADD) 관계자들로부터 동체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중앙포토]

그래서 ‘IR52’를 제정하자고 생각하면서 세종로를 지나는데 문화부가 90년 8월 ‘이달의 문화 인물’로 장영실을 선정하고 이를 알리는 현수막을 걸어놓은 게 보였다. 순간 무릎을 쳤다. 상의 이름을 ‘IR52 장영실상’으로 하고, 자체 산업기술 개발자들에게 시상하고 홍보하면 기업인의 기술개발 투자와 현장 과학기술자의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날 국무회의 도중 나는 관련 계획을 공책에 적었다. 국무회의가 끝나자마자 청와대 행정관인 송옥환 과장(나중에 과학기술처 차관을 지냄)과 유희열 기술인력 국장에게 연락해 상의 제정을 논의하고 추진에 나섰다. 91년부터 지금까지 시행되고 있는 ‘IR52 장영실상’은 이렇게 탄생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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