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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가 잔디 삼키는 실험…정부, 이런 것까지 요구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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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너무 화가 날 때는 당장에라도 그만하고 싶은데 이제는 오기로 버티고 있습니다."

20년 잔디 박사 이효연 #“GM 잔디 개발해 승인 요청하니 #4개 기관 돌아가며 보완자료 요구 #위원 바뀌면 새 자료 제출 반복 #그 사이 미국, 자국기업 판매 승인 #단돈 1만원어치라도 팔고 싶다”

지난 24일 제주대 아열대원예산업연구소 2층 사무실에서 만난 이효연(57) 소장의 한숨 섞인 이야기는 끊이질 않았다. 그만큼 마음속에 쌓아뒀던 말이 많았던 모양이다.  이 소장은 20년 넘게 잔디를 연구한 잔디 박사다. 그는 "제초제 저항성 GM 잔디 연구에 10년을 투자했다. 정부 승인은 길어봤자 5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11년이 됐다"고 말했다.

-잔디 연구만 20년 넘게 했다.
“순천대 교수로 일할 무렵이었다. 처음에는 벼를 연구했는데 한국에 온 일본 유학생을 지도하다 잔디 연구에 빠져들었다. 잔디와 벼는 같은 화분과 식물이라 어렵지 않았다. 1998년 처음으로 제초제를 견디는 GM 잔디를 만들었고 2002년 국제학회에 발표해 검증을 받았다. 2003년 제주대로 옮겨와 본격적으로 잔디 연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개발한 GM 잔디가 모든 종류의 제초제를 견디나.
 “아니다. 바스타라는 특정한 제초제만 견딘다. 제초제 저항성 GM 잔디에 삽입된 유전자는 30년 전에 개발된 유전자다. 미국 등에선 GM 콩을 만드는 데 쓰이고 있다. 바스타가 아닌 다른 제초제를 뿌리면 GM 잔디라 할지라도 죽는다. 특정한 제초제만 견디는 것이지 영생을 하는 건 아니다.”

이 교수는 “잔디는 다른 식물과 함께 살지 못하는 비우정성 식물이라 잡초와 경쟁하면 살아남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이나 공원 같은 곳에서 대규모 잔디를 관리하면서 제초제를 뿌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물고기가 잔디를 삼키는 실험 결과까지 정부가 요구했다"며 제초제 저항 GM 잔디를 개발한 뒤 10년째 승인을 못받고 있는 제주대 이효연 교수가 24일 제주대에서 GM 기법으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를 개발한 성공기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물고기가 잔디를 삼키는 실험 결과까지 정부가 요구했다"며 제초제 저항 GM 잔디를 개발한 뒤 10년째 승인을 못받고 있는 제주대 이효연 교수가 24일 제주대에서 GM 기법으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를 개발한 성공기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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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장 등에서 잔디 판매 요청은 안 들어오나.
“제주대 농장에 와서 GM 잔디를 한 번 보고 간 사람들이 종종 전화를 걸어와 언제 팔 수 있냐고 묻는데 답을 할 수가 없다. 제주도에만 골프장이 36곳이고 잔디영농조합도 있는데 언제 정부에서 허가를 내줄 것인지 기약이 없다.”

-GM 잔디 재배 승인을 정부에 처음으로 신청한 건 언제인가.
“2007년이다. 그동안 농촌진흥청에서 8번 보완 요구가 나왔다.  해양수산부 산하 수산과학원에선 물고기가 GM 잔디를 삼켰을 경우에 대한 위해성 실험을 하라고 해서 다른 교수님 도움을 얻어 제브라 피시 실험을 했다. 솔직히 말해 물고기가 GM 잔디를 먹을 확률이 얼마나 되겠나. 그래도 했다. 정부에서 요구한 것이니까. 최근에는 농진청에서 야생동물이 GM 잔디를 먹었을 경우를 가정한 위해성 평가 실험을 하라고 해서 토끼 실험도 했다. 실험용 토끼는 GM 잔디를 먹지 않아서 결국 굶어 죽었다."

-실험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겠다.
"문헌 조사 결과로도 충분한 데 정부에선 꼭 실험을 요구한다. 실험 한 번 진행하면 일 년이 후딱 간다. 실험 설계도 신청자가 해야 하는데 해외 사례를 아무리 뒤져 봐도 GM 작물에 대한 물고기 위해성 평가 항목은 찾을 수가 없어서 독자적으로 설계했다. 몬산토 등 다국적 종자회사는 GM 종자 하나 개발하는데 수백 억원을 투자하는데 정부가 이렇게 막고 있는데 그들과 경쟁할 수 있겠나."

-GM 작물에 대한 우려도 크다.
“내가 개발한 GM 잔디는 식용이 아니다. 골프장이나 공원·운동장 등에서 쓰이는 비식용 작물이다. 하지만 정부에선 식용 작물에 준하는 기준을 들이대고 있다."

 이 소장은 2014년 꽃이 피지 않는 GM 잔디를 개발해 정부에 재배 승인을 신청했다. 그는 “꽃이 피지 않기 때문에 환경단체가 우려하는 것처럼 자생하고 있는 다른 들잔디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런데도 정부는 각종 보완실험을 요구하면서 재배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물고기가 잔디를 삼키는 실험 결과까지 정부가 요구했다"며 제초제 저항 GM 잔디를 개발한 뒤 10년째 승인을 못받고 있는 제주대 이효연 교수가 24일 제주대에서 GM 기법으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를 개발한 성공기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물고기가 잔디를 삼키는 실험 결과까지 정부가 요구했다"며 제초제 저항 GM 잔디를 개발한 뒤 10년째 승인을 못받고 있는 제주대 이효연 교수가 24일 제주대에서 GM 기법으로 제초제를 뿌려도 죽지 않는 잔디를 개발한 성공기를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정부가 11년째 GM 잔디를 승인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과학적 근거가 있어 막고 있다기보다 의지가 부족한 것이라고 본다. 농진청 등 4개 기관이 심사를 하는데 위원 임기가 끝나면 항상 새로운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직전 위원이 요구했던 자료를 다시 요구하는 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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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판매되는 GM 잔디가 있나.
"지난해 미국 정부가 '벤트 그라스'라는 GM 잔디 재배 및 판매를 허가했다. 다국적 종사회사 몬산토 계열에서 만든 잔디다. 우리가 앞설 수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쳤다. 그래도 다행인 건 미국과 일본·유럽에서 GM 잔디 특허 10개를 내놓았다는 점이다."

-해외에서 먼저 잔디를 판매하면 안 되나.
“자국에서 승인을 안 해준 걸 어느 나라 어느 기업이 사가겠나. 국내 수입되는 GM 콩이나 옥수수는 미국 등 각국 정부에서 재배와 판매를 허가한 제품이다.”

-지난 11년을 돌이켜 보면.
“GM 잔디를 보러오고 싶다는 환경단체 모든 분에게 실험 데이터는 물론 실험용 농장도 전부 공개하고 있다. 서귀포시 인근에 3000평 규모의 실험 농장을 10년간 운영하고 있는데 GM 잔디가 주변 생태계를 교란했다는 어떤 과학적 근거도 찾지 못했다. 이에 반하는 결과를 누군가 내놓는다면 당장 내일이라도 관련 실험은 물론이고 연구개발도 중단하겠다."

-향후 계획은.
"전국에 흩어져 있는 들잔디 품종을 모아 상업화가 가능한 품종을 추렸다. GM 잔디를 생산하는 원천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어떤 품종의 잔디도 제초제에 견디는 GM 잔디로 만들 수 있는 플랫폼을 갖고 있다. 정부에서 승인만 내주면 제초제 저항성 잔디 품종 개발부터 시제품 생산까지 3년이면 충분하다. 단돈 10만원이라도 좋으니 미국 시장에서 내가 개발한 잔디를 팔아보고 싶다."

이 소장은 “교수 정년까지 7년 남았는데 정부에서 허가하든 안 하든 끝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속 깊숙한 곳에 담아둔 얘기를 끄집어냈다.

제주=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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