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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김정은, 진정성 있는 비핵화로 대결의 ‘새로운 길’ 피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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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어제 신년사를 통해 완전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의지를 재천명했다. 그는 지난해 남북관계 개선을 ‘경이로운 성과’로 평가하고 한반도를 정전체제에서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해 다자협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열린 기회의 창을 올해에도 이어가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을 조건 없이 재개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다. 그러나 김 위원장은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는 돼 있다”면서도 “미국이 우리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새로운 길’은 다시 대결적인 국면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압박의 의미로 보인다.

신년사, 한반도 평화 의지는 긍정적 #북 경제개발 성공엔 비핵화 선결돼야

김 위원장의 신년사는 여느 때와 달랐다. 그동안 단상이나 책상 앞에 서서 신년사를 발표했지만, 이번에는 집무실 소파에 편안하게 앉아서 읽었다. 지난해 신년사에 22번이나 등장했던 ‘핵’이 올해엔 2번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것도 ‘비핵화’와 ‘핵무기’가 각각 1번이었다. 대신 지난해 10번 언급했던 ‘평화’는 이번에 25번이나 나왔다. 또한 ‘핵탄두와 미사일 대량생산 및 실전 배치’ ‘핵타격’ ‘핵단추’와 같이 화약 냄새가 나는 용어는 사라졌다. 김 위원장이 핵 전투력을 거의 완성한 데다 내치도 상당히 안정시켰다는 자신감의 표시일 수도 있지만 일단 분위기는 전향적이다.

그가 신년사의 많은 양을 할애해 강조한 것은 경제개발이다. 북한은 지난 2년 동안 북핵 개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제재로 어려움을 겪었다. 그런 가운데 올해는 북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네 번째 해로 마지막 고비다. 김정은 정권을 안정적으로 지속하기 위해선 경제개발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절실한 과제다. 그 성공의 관건은 대북제재 해제다. 주민 생활 안정에 필요한 경공업 성장과 필수적인 전기 공급을 위해선 해외에서 물자와 석유가 들어와야 한다. 외화벌이 수단인 석탄 수출이나 개성공단 및 금강산 관광 재개도 대북제재가 풀려야만 가능하다. 남북 철도·도로 연결 등 우리 정부가 북한을 도와주려고 해도 마찬가지다.

대북제재 해제의 대전제는 비핵화다. 김 위원장 희망대로 새해 여정을 성취하려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가 최우선이다. 비핵화 조치가 없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이나 그의 서울 답방은 빈 껍데기일 뿐이다. 김 위원장의 ‘한·미 연합훈련과 미 전략자산 한반도 전개의 영구 중지’ 요구는 한·미동맹을 약화하고 안보를 더욱 취약하게 만들 수 있다.

청와대는 그의 신년사에 대해 “새해 한반도 문제가 순조롭게 풀리는 데 긍정적으로 작용하리라 기대한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북한의 평화공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선 곤란하다. 김 위원장도 당장 제재가 해제되지 않는다고 ‘새로운 길’은 결코 가선 안 된다. 그 길은 낭떠러지다. 한반도 하늘엔 또다시 먹구름이 끼는 상황으로 되돌아갈 순 없다. 김 위원장은 스스로 밝힌 ‘평화’를 위해서라도 과감하고 신속한 비핵화에 나서는 것이 정체된 현 국면을 뚫는 돌파구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