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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악마와 깊은 바다 사이에 선 문재인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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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201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시리아 내전을 피해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밀항하는 난민들을 취재했다. 난민들은 지중해에서 우연히 구조되지 못하면 바다에 빠져 죽는 걸 알면서도 뗏목에 올라탔다. 당시 기사 헤드라인이 ‘악마와 깊은 바다 사이에서’였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난감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악마가 뒤쫓아 오는데 눈앞에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추진한 정부를 보면서 이 헤드라인이 새삼 떠올랐다. 지난해 12월 31일자로 해고자 71명이 복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해고자 문제를 언급한 지 5개월 만이다.

대신 쌍용차는 정부에 이들의 임금 분담을 요구했다. 예컨대 21년 동안 근무했던 해고자의 연봉(6700만원)에서 신입사원 연봉(4800만원)을 제외한 차액(1900만원)을 정부와 쌍용차가 절반씩 부담하자는 것이다. 쌍용차 요구는 일리가 있다. 정부 때문에 신입사원 대신 경력자를 뽑았으니 부담도 나누자는 요구다.

하지만 정부는 뗏목탄 난민 같은 처지다. 해고자 복직을 주도한 정부가 지원을 외면하면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 9년간 일손을 놓았던 해고자가 1인당 1900만원의 생산성을 높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원하면 세금으로 사기업 재직자의 연봉 일부를 보전하는 셈이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쌍용차는 정부에 신규 대출도 요구했다. 자동차 산업 전망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적자가 누적하면서 금융기관은 융자를 꺼린다. 민간 금융기관을 압박한다면 공권력 남용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다면 특정 기업 특혜 논란이 불거진다.

줄어든 청년 일자리를 보전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이들이 되돌아간 일자리 중 일부는 원칙적으로 청년 몫이다. 2015년 쌍용차 노사는 해고자와 희망퇴직자를  3명씩 뽑을 때 신입사원을 4명씩 충원하기로 약속했다. 해고자 71명이 복직했다면 신입사원도 95명이 출근했어야 정상이다. 하지만 이날 복직으로 신입사원 채용은 더 미뤄졌다. 쌍용차가 뽑았다는 신입사원(17명)은 공개채용이 아니라 희망퇴직자의 자녀들이다.

정부 주도의 해고자 복직이 낳을 문제는 이미 수차례 예고됐다. 이를 외면하고 실행한 이상 문제 해결도 정부 몫이다. 2008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쌍용차는 1조36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적자라는 악마가 여전히 쌍용차의 뒤를 쫓는 상황에서 정부는 구조선을 찾을 수 있을까.

문희철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