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트럼프 “한국, 분담금 6억 달러밖에 안 내” 숫자부터 틀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미국 정부가 주한미군 주둔비용 중 한국이 부담할 방위비분담금으로 제시했다는 12억 달러(약 1조3300억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시 사항이라고 한·미 관계에 밝은 소식통이 31일 전했다. 앞서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7일 미국과 한국의 방위비분담금 협상에서 미국 측이 12억 달러를 요구했다고 보도했다.

분담금 협상서 12억 달러 요구 왜 #한국 실제론 올해 9억 달러 부담 #“미군 주둔비 35억 달러”도 엉터리 #인건비, 가족 체류비까지 넣은 듯 #전문가 “대미 외교 강화해야”

이 소식통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1년에 들어가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 35억 달러(약 3조9000억원) 중 6억 달러(약 6600억원)만 한국이 내고 있다”며 이를 고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따라 “(6억 달러의) 두 배인 12억 달러를 내야 한다”고 기준을 내놨다. 12억 달러는 2018년 한국이 제공한 방위비분담금(9602억원)보다 50% 오른 수준이다. 그런데 미국 측이 협상 과정에서 50%가 아닌 ‘두 배’ 인상을 요구한 배경을 놓곤 그간 설이 분분했다. ‘두 배’는 한국 입장에선 난데없이 나온 수치이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미 관계 소식통은 “1년 주둔비용이 35억 달러인데 한국은 6억 달러만 내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은 외교 경로를 통해 한국 정부에도 전달됐다”며 “그런데 우리로선 도대체 이 수치가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잘 사는 나라인데, 아주 적은 돈으로 주한미군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계산법 중 35억 달러는 밥 우드워드의 책에도 공개적으로 등장해 놀란 적이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트럼프 행정부의 난맥상을 다룬 저서  『공포:백악관의 트럼프』엔 35억 달러가 몇 차례 등장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7월 “35억 달러나 들여 2만8500명(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 모두 집으로 데려오자”고 말했다.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비용 10억 달러를 미국이 부담한다는 참모진 얘기를 듣고 트럼프 대통령이 화를 내며 한 발언이었다. 이 책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과 통화에서 “180억 달러 무역 적자와 35억 달러의 미군 주둔 비용을 용인할 수 없다”며 압박하는 내용도 들어 있다.

그런데 ‘주둔비용 35억 달러’는 기존 미 국방 당국의 입장과는 다르다. 빈센트 브룩스 전 주한미군 사령관은 2016년 4월 미국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2015년 한국이 낸 분담금이 8억800만 달러”라며 “주한미군 전체 주둔비용의 약 50%에 해당한다”고 증언했다. 이에 따르면 주한미군 전체 주둔비용은 17억 달러 정도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주한미군 주둔 비용은 계산법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면서도 “한국이 인건비를 뺀 비용의 절반 정도를 감당하고 있다는 게 한·미 양국의 컨센서스”라고 말했다.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에도 한국은 주한미군 인건비를 제외한 주둔비용 중 일부를 분담한다고 돼 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35억 달러’는 주한미군 인건비, 주한미군 가족 체류 비용에 전략자산 전개 비용까지 포함한 액수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한국이 부담하는 비용이 ‘6억 달러’라는 데에도 당국자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한국이 2018년 낸 분담금 9602억원은 지난 12월 31일 환율 기준으로 8억6398만 달러다. 트럼프 대통령의 ‘6억 달러’보다 많다. 여기엔 한국이 방위비분담금 이외에 카투사(KATUSA) 지원, 사유지 임차료, 미군기지 주변 정비 등 직·간접적으로 지원한 비용은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이와는 다른 수치를 거론한 데 대해 익명을 요구한 대미 전문가는 “한국의 외교안보 라인이 트럼프 대통령의 귀를 잡는 데 실패했다”며 “대미 외교를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