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 이맘때면 사진기자 머리는 쥐가 난다.
송년과 신년호 1면 사진 준비 때문이다.
2019년은 기해년(己亥年) 황금돼지 해다.
신년호 1면 사진 준비를 위해 돼지를 찾아 나섰다.
사진기자에게는 12간지에 해당하는 쥐부터 돼지까지 동물들은 좋은 신년호 사진 소재다. 단 혐오감을 주는 쥐와 뱀, 상상 속의 동물인 용은 예외다. 동물을 소재로 사진촬영을 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말을 알아들을 수 없고, 행동을 통제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송·신년호를 준비하는 기간이 대개 추운 겨울이기 때문에 동물들의 활동이 움츠러드는 때이기도 하다. 그래도 어떻게든 사진기자는 일명 '그림'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수십 년 전부터 전설처럼 전해져 오는 한 사진기자의 이야기가 있다. 이 기자는 닭의 해를 맞아 멋진 수탉이 떠오르는 해를 배경으로 아침을 깨우는 울음을 우는 장면을 구상했다. 해가 떠오르는 모습과 닭을 매치시키기도 쉽지가 않은데, 닭이란 녀석이 가만 있을 리가 없다. 수십차례 실패를 거듭하다 이 기자는 꾀를 낸다. 박제한 닭을 이용해 원하는 사진을 얻었던 것이다.
지난 12일 새벽 충남 청양 국내 최대 방목 돼지농장인 송조농원에 전국의 거의 모든(?) 언론사 사진기자가 몰렸다. 떠오르는 해와 돼지를 함께 찍기 위해서다. 돼지 1500여 마리와 사진기자 40여 명이 모였다. 그야말로 돼지 반, 기자 반이다. 각종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전국에서 모인 사진기자들을 본 최재용(63) 송조농원 대표는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로 "창사 이래 이렇게 많은 기자는 처음이네유"라며 "에라 모르것다~ 오늘 우리 돼지들하고 한 판 놀아 보쥬"라고 말하며 돼지들을 언덕으로 몰았다.
기자들은 갑자기 몰아닥친 첫 추위에 시린 손 부여잡고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아침 해가 동쪽 산 능선 위로 빨간 얼굴을 내밀었다. 어라! 순간 검은색의 돼지가 황금색으로 변했다. 아침 햇살에 역광으로 비친 돼지들은 황금 돼지로 변신해 있었다. 순간 현장에 모인 사진기자들의 카메라 셔터에 불이 났다.
"게 섰거라!"
"아니 돼지야 걍 그대로 섰거라!"
"제발 움직이지 말고 "
사진기자들은 돼지들이 알아듣거나 말거나 돼지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가지 못하도록 마구 소리를 질러댔다.
송 대표와 농장 직원들은 사진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말 안 듣는 돼지들을 이리로 저리로 몰았다, 저리로 몰았다 한참 진땀을 뺐다. 해가 높이 떠오르면서 황금돼지들이 다시 검은 돼지로 돌아오자 그제야 사진기자들의 셔터 소리가 잦아들었다. 잠깐의 그 순간에 최고의 사진을 담아야 했던 사진기자들의 손끝에서도 힘이 빠졌다. 2019년 1월 1일 신문 1면에서 이 돼지들을 다시 만나길 기대하며 기자들은 제각기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오종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