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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쌍용차 해직자 복직, 文정부엔 '악마와 바다 사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쌍용차 해고자 先복직…기업·청년 달랠 ‘묘안’ 있을까

리비아 앞바다에서 구조된 난민들. [사진 타임]

리비아 앞바다에서 구조된 난민들. [사진 타임]

2016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시리아 내전을 피해 리비아에서 유럽으로 밀항하는 난민들을 취재했다. 난민들은 지중해에서 우연히 구조되지 못하면 바다에 빠져 죽는걸 알면서도 뗏목에 올라탔다.

당시 보도기사 헤드라인이 ‘악마와 깊은 바다 사이에서(Between the devil and the deep blue sea)’였다. 어떤 선택을 해도 난감한 상황이라는 뜻이다. 악마가 뒤쫓아 오는데 눈앞에 깊고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까.

쌍용차 해고자 복직을 추진한 정부를 보면서 이 헤드라인이 새삼 떠올랐다. 쌍용자동차 해고자 71명과 희망퇴직자 34명은 12월 31일 9년 만에 복직했다.

이들이 복직한 건 2018년 7월 문재인 대통령이 아난드 마힌드라 마힌드라앤마힌드라 회장에게 “쌍용차 해고자 복직 문제 관심 가져달라”고 언급하면서다. 마힌드라앤마힌드라는 쌍용차의 최대주주다. 2018년 9월 문성현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중재한 자리에서 쌍용차는 해고자 복직을 결정했다.

대신 정부는 원칙적으로 쌍용차의 부담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로 했다. 합의 후 2차례 열린 상생발전위원회에서 쌍용차는 정부에 고용안정기금을 활용한 추가 임금 분담을 요구했다. 예컨대 21년 동안 근무했던 해고자의 연봉(6700만원)에서 신입사원 연봉(4800만원)을 제외한 차액(1900만원)을 정부와 쌍용차가 절반씩 부담하자는 것이다.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가 복직한 근로자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고 있다. 평택 = 변선구 기자

민주노총 쌍용차 지부가 복직한 근로자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고 있다. 평택 = 변선구 기자

쌍용차의 요구는 일리가 있다. 원래 쌍용차는 ‘경영 사정이 좋아지면’ 해고자 복직을 추진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2008년부터 올해 3분기까지 쌍용차는 1조364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적자가 쌓이는 상황에서는 1인당 수천만원도 큰 부담이다. 또 해고 후 3년이 지나면 법적으로 재채용할 의무도 없다. 정부 때문에 신입사원을 뽑을 수 있는 자리에 경력자를 뽑았으니 이에 대한 부담도 정부와 나누자는 요구다.

하지만 정부는 일단 시리아는 떠났지만 구조선을 찾기 난망한 난민 같은 상황이다. 해고자 복직을 주도한 정부가 지원을 외면하면 기업에 부담을 떠넘기는 꼴이다. 9년간 일손을 놓았던 해고자가 신입사원보다 1인당 1900만원 상당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가 지원하면 국민이 세금으로 사기업 소수 근로자의 연봉을 보전하는 셈이다.

또 쌍용차는 정부에 신규 대출을 요구했다. 자동차 산업 전망이 갈수록 악화하는 상황에서 적자가 누적하면서 금융기관은 융자를 꺼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민간 금융기관을 압박한다면 공권력 남용이라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고 정부가 직접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놓는다면 특정 기업 특혜 논란을 피할 수 없다.

희망퇴직자 자녀만 신입사원으로 채용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줄어든 청년 일자리를 보전할 방안도 찾아야 한다. 이들이 되돌아간 일자리 중 일부는 원칙대로라면 청년들이 채웠어야 했다. 2015년 쌍용차 노사는 경영상황이 호전할 경우 해고자와 희망퇴직자를 각각 3명씩 뽑을 때 신입사원을 4명씩 충원하기로 약속했다. 해고자 71명이 복직했다면, 신입사원도 95명이 출근했어야 정상이다.

리비아 앞바다에서 구조된 난민들. [사진 타임]

리비아 앞바다에서 구조된 난민들. [사진 타임]

하지만 이날 복직으로 신입사원 채용은 더 미뤄졌다. 쌍용차가 뽑았다는 신입사원(17명)도 공개채용이 아니라 희망퇴직자의 자녀(17명)가 아버지 대신 취업했다. 노노사정 합의에서 쌍용차 노조는 60명 희망퇴직자 본인 대신 이들의 자녀를 채용하기로 결정했다.

문희철 기자

문희철 기자

감정적인 해고자 복직 주도가 낳을 문제는 이미 수차례 예고됐다. 정부가 이를 추진한 이상 문제 해결도 정부 몫이다. 적자라는 악마가 여전히 쌍용차 뒤를 쫓는 상황에서 정부는 구조선을 찾을 수 있을까.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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