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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커에 빠진 볼, 2벌타 먹고 밖에서 플레이 가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더,오래] 민국홍의 19번 홀 버디(20)

올해 전면 개정된 골프규칙의 백미는 벙커의 골프 정신을 되살려 냈다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벙커에 들어가면 골퍼는 모래와 한판 대결을 벌여야 하는데 제한 규정에 걸려 ‘아차’ 하다가는 멋진 벙커 샷을 날리기에 앞서 벌타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이런 규정들이 없어져 모래의 도전을 이기기만 하면 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벙커에 볼이 들어가면 플레이를 제한하는 규정이 제법 많았다. 벙커에 들어가면 돌이나 낙엽, 나뭇가지, 솔방울 등을 치울 수 없었다. 이 같은 ‘루스 임페디먼트’를 건드리면 2벌타. 순서를 기다리다 클럽을 모래에 기댄 채 잠깐 쉬어도 2벌타다. 벙커에 들어가면 모래를 건드리는 것이 원천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이다.

벙커의 기본 정신 살리는 제한들은 유지

2018년 7월 22일 영국 스코틀랜드 앵거스 카누스티 골프 클럽에서 열린 오픈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6번째 그린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8년 7월 22일 영국 스코틀랜드 앵거스 카누스티 골프 클럽에서 열린 오픈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6번째 그린 모습.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골프 규칙의 양대 기본 축은 볼은 있는 그대로(the ball as it lies), 코스는 눈에 보이는 대로(the course as you find) 플레이하라는 것이다. 벙커에서 골프의 정신은 모래와 싸워 이기라는 것인데 골프의 기본 원리를 따르다 보니 이런 정신이 무시됐던 것이다.

다만 벙커의 기본 정신을 살리는 제한들은 그대로 유지됐다. 플레이어의 볼 바로 앞뒤에 있는 볼을 건드리거나 백스윙할 때 모래를 건드리면 2벌타를 받는다. 이는 볼의 라이를 개선했기 때문이다. 또 벙커 안에서 연습스윙으로 모래를 퍼 올리면 2벌타를 받는데, 이는 모래 상태를 시험하는 경우에 해당해서다.

벙커는 아마추어뿐 아니라 프로선수한테도 어려운 경우가 종종 있다. 브리티시 오픈이 열리는 링크스 코스에 있는 항아리벙커들은 플레이하기가 어려운 것으로 악명이 높다. 벙커 턱에서 수직으로 떨어지는 측벽이 높아 빠져나오기가 매우 힘들어 세계적인 선수라 하더라도 2~3타를 쉽게 까먹을 수 있다.

작년까지만 해도 벙커와 관련한 규칙 중 언플레이어블 볼 조항에 따르면 볼을 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해 2클럽이나 직후방선에서 구제를 받더라도 벙커 안에서만 해야 했다. 그러나 올해부터는 언플레이어블 볼을 선언하고 2벌타를 먹으면 벙커 밖 어디라도 볼을 드롭하고 칠 수 있게 된다.

많은 골프전문가는 항아리벙커에서 선수의 기량을 시험하는 것이 브리티시오픈의 묘미인데 이런 것이 없어지게 됐다고 아쉬워하고 있다. 물론 브리티시오픈이란 전통과 인내의 한계를 시험하는 메이저 대회라는 점에서 벙커와 관련한 언플레이어블볼 구제조항은 다소 아쉬움을 남긴다. 하지만 벙커 샷을 어려워하는 아마추어에겐 벙커에서의 탈출구가 마련됐다는 점에서 대승적인 평가를 하고 싶다.

벙커에서 볼을 탈출시키는 게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면 2벌타를 먹고 구제를 받은 뒤 벙커 밖 후방선에 볼을 드롭하고 치면 된다. [제작 유솔]

벙커에서 볼을 탈출시키는 게 불가능 하다고 판단되면 2벌타를 먹고 구제를 받은 뒤 벙커 밖 후방선에 볼을 드롭하고 치면 된다. [제작 유솔]

다음으로 이번 개정 규칙 중 눈에 띄는 게 퍼팅그린에 관한 몇몇 조항이다. 우선 볼이 그린 안에 놓여 있을 때도 깃대를 홀에 꽂고 칠 수 있게 한 것은 신의 한 수라고 평가할만하다. 모든 현대스포츠가 그렇듯 골프도 경기 시간과의 싸움이 늘 주요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골퍼는 퍼팅그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 대부분의 플레이어가 그린 밖에서는 홀에 깃대가 꼽힌 상태에서 스트로크를 하다 보니 깃대를 꼽거나 다시 빼는데 시간을 많이 소모하게 된다.

이전에는 그린 밖에 있는 플레이어보다 거리가 먼 그린에 볼을 올린 플레이어는 깃대를 뽑고 퍼팅을 하고 난 뒤 그린 밖의 플레이어는 다시 깃대가 홀에 꼽힌 상태에서 어프로치샷을 날려야 했는데 이런 시간 지연이 없어질 전망이다. 당연히 퍼팅할 때 깃대를 맞춰도 2벌타나 되었던 페널티가 없어진다.

퍼팅그린에서 실수로 볼 건드려도 무벌타

지난 10월 4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CC에서 열린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1라운드. 한국 박성현이 14번 홀 그린에서 퍼팅라인을 살피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지난 10월 4일 인천 송도 잭니클라우스CC에서 열린 2018 UL 인터내셔널 크라운 1라운드. 한국 박성현이 14번 홀 그린에서 퍼팅라인을 살피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또 퍼팅그린에서 움직이는 공에 대한 제한규정도 많이 완화되었다. 요컨대 플레이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 실수로 볼이나 볼 마커를 건드려 움직이게 했더라도 벌타 없이 볼을 제자리에 놓고 칠 수 있게 됐다. 예전에는 그린에 올려놓은 볼이 움직였을 때 원인이 애매모호할 경우 플레이어에게 1벌타를 주는 경우가 많았는데, 앞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제로에 가까워졌다.

더스틴 존스가 2016년 US오픈 마지막 날 5번 홀 그린에서 볼이 저절로 움직인 것에 대해 1벌타를 받아 하마터면 우승을 놓칠 뻔한 일이 있었다. 앞으론 이런 해프닝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볼을 그린에 올리고 볼 마크를 한 뒤 바람이 불어 볼이 움직여도 원래의 자리에 놓고 칠수 있게 된 것도 새로운 규칙이다. 그러나 그린에서 손상 수리를 거의 무한대로 허용한 것은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플레이어가 플레이 선(예전의 퍼트선)에 난 스파이크 자국을 다림질하듯 수선을 하게 되면 경기 시간이 많이 지연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영국왕립골프협회(R&A)나 USGA 측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도 스파이크 수선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경우 각국의 경기위원회가 경기속도를 높이는 정책을 병행해 이에 대응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다음 회차에서는 드롭 절차를 비롯해 박힌 볼 등 비정상적인 상태에 놓인 볼에 대한 구제절차를 소개할 예정이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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