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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서 잠도 못자" 쌍용차 해직자들 10년 만에 출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쌍용차 해직 노동자들, 10년 만에 복귀 출근

31일 오전 6시30분쯤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 해도 뜨지 않은 어두운 길가 한쪽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몰려들었다. 영하 13~14도의 추위에 손발이 곱고 칼바람에 얼굴과 귀가 빨갛게 변했지만, 이들의 얼굴에선 웃음꽃이 끊이질 않았다.
이날부터 회사로 복귀하는 쌍용차 해직 노동자들이다.
얼마나 기다렸던 복귀인가. 출근시간(오전 8시)은 물론 복귀 행사 시간(오전 7시30분)이 시작되기 한참 전인데도 50여명이 넘는 사람이 모였다.
김종표(48)씨는 "출근한다는 생각에 설레서 전날 거의 잠을 못 잤다"라며 "동료들의 얼굴을 다시 보니 너무 좋다"고 말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선물 받은 카네이션을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선물 받은 카네이션을 흔들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해직노동자 119명 중 절반이 넘는 71명이 이날 공장으로 복귀했다. 2009년 5월 정리해고된 지 10년 만이다.
나머지 해직노동자 48명도 내년 상반기 중 복직할 예정이다.
삼삼오오 모여 출근을 기다리던 이들은 복귀 행사가 예정된 오전 7시30분쯤이 되자 '곁을 지켜준 당신 잊지 않고 살겠습니다'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정문에 섰다. 일부 노동자들은 만감이 교차하는 듯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김정우 전 금속노조 쌍용자동차 지부장은 "'해고는 살인이다. 정리해고 박살 내자'고 외치며 저 달이 다 차면 끝날 것이라 생각했던 복귀가 10년이나 걸렸다"라며 "이 자리에 있는 모든 분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2015년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쌍용차 공장 굴뚝에서 89일간 고공농성을 벌였던 김정욱 사무국장도 "만감이 교차한다. 30명이라는 소중한 목숨이 세상을 등졌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남아있는 해고자들이 그래도 돌아올 수 있었다"며 "(이제는) 일상을 회복하고 싶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노동자로 살고 싶다"고 소회를 말했다.

10년 만에 가슴에 단 2009년 카네이션 

이날 복직자들에겐 카네이션이 전달됐다. '힘들고 모진 지난 10년을 견딘 복직자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또 다른 의미도 있다.
강환주 대외협력실장은 "해고자들이 해고 통보를 받은 날이 5월 8일 어버이날이었다. 당시 해고의 충격으로 아무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지 못했는데 뒤늦게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이날 출근하는 김정우 전 지부장에게 하얀색 운동화를 직접 신겨주며 ‘새 출발’을 축하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이번에 복직한 김정우 전 쌍용차 노조 지부장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이 이번에 복직한 김정우 전 쌍용차 노조 지부장에게 운동화를 선물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복귀 노동자의 가족들도 나와 첫 출근을 응원했다. 김윤성씨의 아내 신혜경(42)씨는 "10년 전 남편의 해고 통지서를 대신 받았던 초등학생이던 딸이 이제는 대학생이 됐다"며 "복직이 결정된 이후에도 계속 일정이 밀리니까 남편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출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다"고 했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노조 집행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카네이션을 들고 노조 집행부의 발언을 듣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사태는 2009년 4월 전체 임직원의 36%인 2600여명이 정리해고되자 노조원들이 반발해 5월 21일 옥쇄 파업에 돌입하면서 시작됐다.
77일간 이어진 파업 과정에서 한상균 당시 쌍용차지부장 등 64명이 구속됐고, 1700여 명이 명예퇴직 등으로 회사를 떠났다.
조합원 970여 명은 옥쇄 파업을 끝까지 버텼지만, 무급휴직(454명)이나 명예퇴직을 택해야 했고, 165명은 끝까지 선택하지 않아 결국 해고자 신세가 됐다.
거리로 나온 노동자들은 생업을 위해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 과정에서 30명의 해직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병으로 사망했다.

미 복귀자에겐 "현장에서 만납시다" 격려도

쌍용차 측은 2013년 무급휴직자 454명을 전원 복직시킨 이후 2015년 노·노·사 3자 합의에 따라 2016년 40명, 지난해 62명, 올해 26명 등 세 차례에 걸쳐 희망퇴직자와 해고자 등을 단계적으로 복직시켰지만 119명이 회사로 돌아가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 9월 쌍용차 측과 노동조합,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 대통령 소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해고자 전원복직에 합의하면서 이들의 복직도 성사됐다. 복직자 명단에는 30번째로 세상을 등진 해직자 김시중씨의 아들이 아버지 대신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최근 복직에 합의한 쌍용차 노조에 추석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최근 복직에 합의한 쌍용차 노조에 추석 선물과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사진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 지부장 페이스북]

김득중 지부장은 "남은 동지들에게 미안해하지 마라. 동지들의 오늘이 남아 있는 동지들의 내일이다"라며 "아직 공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남아 있는 일들을 마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은 강 대외협력국장과 함께 "남은 조합원이 모두 복직한 후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며 이날 복직하지 않았다.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출근하며 서로 축하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 첫출근 기념행사가 31일 오전 경기도 평택시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앞에서 열렸다. 복직 노동자들이 공장으로 출근하며 서로 축하하고 있다. 변선구 기자

30여분의 기자회견이 끝나자 복직 노동자들은 응원을 나온 가족과 동료들을 힘껏 끌어안은 뒤 공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곧 뒤돌아 아직 복직하지 못한 해직 노동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먼저 들어갑니다. 곧 현장에서 만납시다."
평택=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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