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 비리, 조합이 동원한 ‘제3의 손’ 막아야 끊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18.12.29 00:43

업데이트 2018.12.29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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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05면

[SPECIAL REPORT] 김상윤 법무사의 해법
재개발 비리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윤 법무사. [김경빈 기자]

재개발 비리 저승사자로 불리는 김상윤 법무사. [김경빈 기자]

검찰 수사관 출신인 도시정비사업 전문가 김상윤(전 저스티스파트너스 대표·사진) 법무사는 누구보다 재건축·재개발 비리를 속속들이 꿰고 있다. 업계에서는 그를 도시정비사업의 저승사자로 부르기도 한다. 2012년부터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서면결의서 위조방지 대책위원회’라는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전국 각지의 조합원들로부터 다양한 내용의 제보와 상담 요청이 끊이질 않는다. 그는 실제로 조합원들을 도와 비리 조합장을 몰아내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고, 때로는 수사기관에 정보를 제공하는 고발자 역할도 해 왔다. 특히 2014년 서울 서부지방검찰청이 관내 도시정비사업 전반의 비리 수사를 진행할 당시 중요한 제보를 하고 원활한 수사를 위해 조언하는 등 상당한 역할을 했다.

조합 총회, 시공사 선정 투표 등 #재건축·재개발의 전 과정에 개입 #“OS 쓰면 북핵도 해결” 우스개도 #서울시 ‘OS 불법’ 규정 있으나마나 #가짜 용역비 등 수법 알아야 차단

대통령도 최근 재건축·재개발 사업 비리 근절을 촉구했다. ‘현장을 모른다’는 지적을 하면서 근본적 해결을 주문했는데.
“도시정비사업 과정에서 비리가 끊이지 않는 근본 원인은 제3의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해 조합원들의 의사 결정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조합원의 자율 의사를 누가, 어떤 수단을 써서 왜곡하는지를 찾으면 된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건 뭘 말하나.
“조합과 시공사 등이 동원하는 ‘OS’를 말한다. 원래 아웃소싱(Outsourcing)을 뜻하는데, 한국의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는 용어로 변질됐다. 홍보 용역업체가 조직적으로 동원한 인력이다. 조합 임원 선거에서부터 각종 용역사업비를 결정하는 총회, 시공사 선정 투표 등 중요 사안마다 이들이 개입한다.”
OS가 동원되더라도 조합원이 각자 자율 의사 표시를 하면 되는 것 아닌가.
“조합원들이 총회 책자를 이해하기 어렵고, 또 근거도 제대로 붙이지 않아 알기 어렵게 돼 있다. 게다가 대부분 재건축·재개발 지역 조합원은 고령층이 많다 보니 사업 진행 과정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다. 이런 상황에서 OS가 맨투맨으로 조합원들을 접촉해 ‘서면결의서’에 사인을 받는다. 뭔지 잘 모르는 조합원들은 OS가 유도하는 쪽으로 찬성 의사를 표시하게 된다. 본 총회가 열리기도 전에 이미 조합이나 시공사 등이 원하는 쪽으로 결정난다고 보면 된다. 오죽하면 OS만 동원하면 북핵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는 우스갯소리까지 있겠는가.”
2013년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가재울4구역 비리를 수사했지만 담당 수사관이 지구대로 전출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당시 가재울4구역 전경. [중앙포토]

2013년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가재울4구역 비리를 수사했지만 담당 수사관이 지구대로 전출되면서 흐지부지 됐다. 당시 가재울4구역 전경. [중앙포토]

OS의 힘이 그렇게 대단한가.
“2014년 지방선거 때 일이다. 서울 한 지역에서 당시 새누리당이 구청장 후보를 뽑는 경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해당 지역 조합장이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위해 OS를 대거 동원해 내부 경선을 뒤집기도 했다.”
법으로 OS를 못쓰게 하면 되지 않나.
“서울시는 표준선거관리규정에 따라 조합 임원 선거 때 OS를 쓰지 못하게 돼 있다. 이를 어기고 지자체가 인가해 주면 안 된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도 OS 동원을 못하게 돼 있다. 시공사는 3회 적발되면 입찰 무효조치를 하게 돼 있다. 시공사 임직원도 처벌하게 돼 있다. 법과 규정은 있는데 현장에서 실제로 지켜지지 않는 것이 문제다. 한 달 전쯤 경기도 성남 지역의 한 재건축 조합에서 OS를 동원한 시공사 수주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는데도 누구도 문제삼지 않고 넘어가더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지자체는 뭐하나.
“사실 행정기관이 의지만 있다면 인허가 과정에서 웬만한 조합 비리는 막을 수 있다. 서울 강북 지역의 한 조합이 구청에 서류를 보냈는데 같은 용역 항목의 숫자가 문서마다 다른데도 문제삼지 않고 그대로 인가를 내주더라. ‘총회에서 다 의결된 내용이고, 우리는 인가만 내주면 된다’는 식이다. 공무원 교육을 철저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조합 측이 사업 편의를 위해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기도 한다.
“뇌물은 직진만 하지 않고 우회도 한다. 조합에서 직접 받으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요즘에는 대부분 특정 업체를 조합에 소개해 주고 업체로부터 대가를 받는 수법을 쓴다. 서울의 모 지역은 구청 측이 소개한 법률사무소를 쓰지 않으면 그 일대 조합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다. 왜, 어떻게 특정 업체가 한 지역을 장악하고 있는지 수사기관이 조금만 신경써 들여다보면 된다. 뇌물 자체만 보지 말고 그 배경을 살펴야 한다. 그래야 뿌리가 뽑힌다.”
수사 의지가 있긴 하나.
“꼭 제보가 있거나 고소·고발이 있어야 수사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수사기관이 공개된 서류만 들여다보고도 가짜 용역비, 부풀려진 사업비를 찾아낼 수 있을 정도가 돼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수도·전기·가스 시설을 기존의 철거와 분리해 용역을 발주하는 수법이다. 석면 철거, 범죄예방 계획 같은 용역도 대부분 근거 없이 부풀려 책정하는 대표적 항목이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런 비리의 수법을 잘 알아야 막을 수도 있다. 이런 비리도 결국은 OS를 동원해 이런 용역비를 총회에서 인준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현재 서울북부지검이 재개발·재건축 비리 전담 수사기관으로 지정돼 있지만 전담 검사는 두 명뿐이다. 서울만 해도 400여 개의 조합이 있는데 전담 인력이 너무 부족하다.”
서울 서대문구가 비리 근절을 위해 가재울4구역 백서를 펴내기로 했다가 유야무야됐다.
“2016년에 구청장 지시로 담당 공무원들이 백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도움을 요청하더라. 각종 계약서를 분석해 문제점을 찾아내는 등 백서 만드는 일을 도왔다. 백서 발간 주체가 구청이라 행정의 문제점(인가 과정 등)은 대부분 뺐다. 나중에 구청 공무원을 대상으로 한 강의 등에서 얘기하기로 하고 남겨뒀다. 그런데 언젠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이유로 공무원 대상 교육도 취소되고, 나중에는 구청 공무원 업무 분장에서 백서 제작 부분도 없어졌더라. 1년 전엔가 다른 구역 사례까지 포함해 백서를 낸다고 하던데 지금까지도 백서는 발간되지 않았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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