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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사라진 여자아이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16호 35면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20년 전, 한국에서 태어났어야 할 여자아이 2%가 외환위기 여파로 사라졌다. 특히 아이가 이미 둘 이상 있는 집에서는, 태어났어야 할 여아의 20%가 사라졌다! 주요 국제 경제학술지인 ‘응용 계량경제학 저널’ 최근호에 실린 논문의 충격적인 내용이다. 이수형 서강대 교수와 오시니 런던 정경대학 교수는 이 논문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신생아 성비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1997~98년 외환위기 발생 직전 임신이 됐던 집단을 분석했다. 그 결과 “남아 대 여아 출생률이 외환위기로 더욱 악화되었음”이 유의미한 인과관계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남아선호가 강한 사회에서 부모가 ‘줄어든 자원을 아들에게 몰아주려는’ 경제상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또한 논문은, 유교 가부장사회의 잔재가 강한 한국에서 1984년 태아 성감별이 가능해지자 여아 낙태가 성행했고 신생아 성비 불균형이 극심해졌음을, 그리고 “90년대 초반부터는 불균형이 완화되고 있었으나 외환위기 와중에 다시 악화”되었음을 밝힌다. 논문과 별도로 통계청 데이터만 봐도, 여아 100명당 남아 수가 80년대 말 90년대 초 112~116.5에 달하다가(자연 성비는 105 정도) 9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떨어졌지만 98년 다시 110을 넘어섰다.

다행히 2000년대에 한국은 미국 허드슨 교수의 지적대로 “각종 성차별 제도 개선으로 성비 정상화를 이룬 모범”이 됐다. 그러나 최근에는, 80년대 중반~90년대 말 성비 불균형으로 태어난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서, 허드슨 교수의 “남초가 심하면 폭력 범죄와 반정부 불안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가 실현되어, 여성은 물론 남성도 그 피해자가 되고 있다. 또한 유례없는 저출산이 계속되며, 정부는 각종 대책을 내놓지만 “짐승도 먹이 상황 보고 새끼 낳는다”라는 냉소적 댓글만 달리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위기 때 사라진 여아들’은 무엇을 시사할까. 이 교수는 필자에게 말했다. “정부가 경제정책에 실패해 사회가 어렵고 불안해지면, 사람들은 많은 투자를 필요로 하는 출산을 기피하게 되고, 그 결과는 사회적 약자에게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말을 들으니, 지금 정부가 경제와 사회정책을 연결해 ‘함께 잘 사는 포용국가’를 이루겠다는 비전 자체는 틀리지 않지만, 그 구체적인 정책에서 비현실적 헛발질만 계속한다면, 오히려 사회적 약자부터 그 역효과가 나타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문소영 코리아중앙데일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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