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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문의 USB 남기고 사라졌다…‘철거왕’ 이금열 미스터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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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호 01면

[SPECIAL REPORT] 복마전 재개발·재건축사업

수원지검은 2013년 서울과 경기 지역의 재건축·재개발 사업 과정에서 ‘철거왕’이라 불린 다원그룹의 이금열 회장의 비리를 수사한 적이 있었다. 이 회장의 회사는 전국 철거 용역의 60%를 수주할 정도로 큰 영향력이 있었다. 검찰은 이 회장이 1000억원대 공금을 횡령하고 서울시의회 의장과 조합장들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밝혀내는 등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검찰이 당시 로비리스트가 담긴 USB를 압수하고도 그 실체를 밝혀내지 못했다. 검찰 관계자는 “USB에는 뇌물을 받은 것으로 추정되는 인사들의 명단이 이니셜로 정리돼 있었고, 뇌물 액수를 뜻하는 숫자도 함께 기재돼 있었다”며 “하지만 이 회장이 검찰 수사에 전혀 협조하지 않고 입을 닫아 뇌물 리스트의 실체를 더 이상 추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은 또 있다. 경찰 역시 당시 이 회장 측이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4구역 재개발 사업에 개입해 각종 비리를 저지른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담당 수사관이 지구대로 갑작스럽게 발령나면서 수사는 동력을 잃고 말았다. 당시 수사 실무자였던 최용갑 수사관은 최근 중앙SUNDAY와 만나 “‘철거왕’ 관련 의혹을 수사하던 중 외압을 받았고, 수사를 다 마무리하지 못한 채 지구대 인사발령까지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이 검찰로 송치되는 과정에서도 이 회장과 조폭 출신(모래내파)이자 이 회장의 최측근 인사인 박모씨 등 핵심 인사가 피의자 목록에서 누락됐다”고 덧붙였다.

최 경위가 제기한 이 의혹은 2017년 국회 행정안전위 국감 때도 제기됐다. 경찰은 자체 감찰을 벌였지만 최 수사관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가재울4구역에 대한 수사가 미진한 부분이 일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고, 지난 4월 서울청 광역수사대가 재수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경찰은 지금까지 이렇다 할 결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회장이 거액이 담긴 사과상자로 경찰 수사를 무마하기 위해 로비를 시도했다는 의혹도 밝혀야 할 대목이다. 한 조합원은 이 회장이 검은색 에쿠스 차량 트렁크에 실린 세 개의 사과상자를 보여주며 측근 두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목격하고 당시 수사하던 최 경위에게 제보했다. 이 조합원은 취재진에게 “경찰 고위층에게 줄 돈이라는 얘기를 우연히 듣고 일기장에 기록한 뒤 제보한 사실이 있다”며 “하지만 오히려 최 경위가 교체되고 수사가 흐지부지돼 버렸다”고 말했다.

서울 서대문구 가재울4구역은 도시정비사업의 각종 불법과 비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조합 사업으로 유명하다.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갔다. 각종 용역사업비가 부풀려지는 등 사업비가 늘어나 조합원들은 평균 3000만~5000만원의 추가분담금의 부담을 져야 했다. 전국 1200여 개, 서울에만 400개가 넘는 조합이 있다. 가재울4구역에서 벌어진 불법은 다른 조합에서도 일상적이고 동일한 수법으로 벌어지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도시정비사업 전문가인 김상윤 법무사는 “조합 있는 곳에 비대위 없는 곳이 없다”며 “대부분의 조합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각종 비리 의혹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고성표 기자 muze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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