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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소년들, 깡통의족 소녀…슬픔도 기쁨도 너희가 희망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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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세계 곳곳에서 꽃송이 같은 아이들이 피고 졌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어른들을 놀라게 한 이들도, 어른의 탐욕과 증오에 휘말려 한줌 재가 된 이들도 있습니다. 질주하는 세상 속도에 못 미쳐 외롭게 버려진 아이들도 있습니다.

2018년 우리를 울리고 미소짓게 한 전세계 어린이들

2018년 한해 동안 우리를 마음 졸이게 하고 때로는 눈물 짓게, 때로는 미소 짓게 한 세계 아이들을 모아 봤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은 하나하나가 작은 세계입니다. 2019년엔 이들의 세계가 더 활짝 열리길 기원합니다.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깡통 의족'을 끌고 살아가던 여덟살 소녀 마야가 터키 적신월사 등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의족을 착용하게 돼 환하게 웃고 있다. [중앙포토]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깡통 의족'을 끌고 살아가던 여덟살 소녀 마야가 터키 적신월사 등의 도움으로 정상적인 의족을 착용하게 돼 환하게 웃고 있다. [중앙포토]

"걷고 싶다"는 난민촌 아이의 꿈, 이루어지다 

이제 이 아이는 친구들과 눈높이를 맞춰 걸을 수 있다. 시리아 북서부 이드리브주의 한 난민 캠프에 사는 여덟살 마야. 움직일 땐 목발에 의존해야 하지만 정식 의족에 힘입어 땅을 딛고 선 모습이 환하다.

선천성 하체 기형으로 인해 두 다리를 절단했던 마야는 지난 6월 ‘깡통의족 소녀’로 세계 언론에 소개됐다. 난민촌에서 아버지가 PVC 파이프로 만들어준 임시 의족을 하고 '참치 깡통' 신발로 기다시피 생활하는 모습이었다. “걷는 것이 꿈”이라는 소녀의 사연이 소개되자 터키 적신월사(이슬람권의 적십자) 등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아버지는 “마야가 의족이 생겨 정말로 기뻐한다. 우리 가족의 삶이 나아지게 도와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했다.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깡통 의족'을 한 채 살아가던 여덟살 소녀 마야가 터키 적신월사 등의 도움에 힘입어 정상적인 의족을 착용하게 됐다.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깡통 의족'을 한 채 살아가던 여덟살 소녀 마야가 터키 적신월사 등의 도움에 힘입어 정상적인 의족을 착용하게 됐다.

2011년 발발한 시리아 내전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군 철수 계획을 밝히면서 다시 혼란에 빠져들고 있다. 지난 7년간 국내외 난민만 11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된다(2017년 기준). 마야네 가족은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갈기갈기 찢어진 시리아인들의 삶은 회복될 수 있을까.

수천 ㎞ 걸어왔지만…거세지는 불법이민 갈등

미국과 멕시코 간 국경 검문소에서도 난민 어린이들의 통곡과 비명이 그치지 않은 한해였다. 온두라스 등 중남미 빈국에서 미국으로 향한 캐러밴(이민 행렬)이 수천 ㎞를 이동해 도착했지만 ‘트럼프 장벽’은 높았다. 특히 국경수비대가 쏜 최루탄 가스에 혼비백산한 어머니가 기저귀를 찬 딸들을 데리고 달아나는 사진은 세계인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이 사진은 로이터통신 소속 한국인 사진기자 김경훈씨가 찍었다.

로이터통신 소속 한국인 김경훈 사진기자가 촬영해 전 세계 미디어와 네티즌들에게 캐러밴(중미 이민행렬)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게 된 사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접경을 이루는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미국 쪽으로 국경 진입을 시도하던 온두라스 출신 이주민 모녀가 국경수비대가 발사한 최루탄을 피해 뛰어가는 장면이다.[로이터=연합뉴스]

로이터통신 소속 한국인 김경훈 사진기자가 촬영해 전 세계 미디어와 네티즌들에게 캐러밴(중미 이민행렬) 사태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하게 된 사진. 미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와 접경을 이루는 멕시코 티후아나에서 미국 쪽으로 국경 진입을 시도하던 온두라스 출신 이주민 모녀가 국경수비대가 발사한 최루탄을 피해 뛰어가는 장면이다.[로이터=연합뉴스]

이에 앞서 지난 6월엔 두살배기 온두라스 어린이가 겁에 질린 채 국경수비대원 앞에서 울고 있는 사진이 세계인들을 울렸다. 불법이민에 대한 무관용 정책을 고수하며 미성년 자녀를 가족과 격리시켰던 트럼프 대통령은 빗발치는 비판 여론에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온두라스 어린이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을 합성한 표지에다 이렇게 썼다. “미국에 온 걸 환영합니다(Welcome to America)”

미 국경순찰대원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온두라스 두살배기 여자아이 사진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스. 트럼프의 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에 따라 국경에서 부모들과 격리되는 이민 아동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트위터 캡처]

미 국경순찰대원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온두라스 두살배기 여자아이 사진을 1면에 실은 뉴욕타임스. 트럼프의 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에 따라 국경에서 부모들과 격리되는 이민 아동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트위터 캡처]

미 국경순찰대원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온두라스 두살배기 여자아이 사진과 트럼프 대통령을 합성한 2018년 7월2일자 타임지 표지. 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에 따라 국경에서 부모들과 격리되는 이민 아동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사진 타임지 캡처]

미 국경순찰대원을 올려다보며 울고 있는 온두라스 두살배기 여자아이 사진과 트럼프 대통령을 합성한 2018년 7월2일자 타임지 표지. 불법 이민 무관용 정책에 따라 국경에서 부모들과 격리되는 이민 아동 문제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았다. [사진 타임지 캡처]

힘겨운 삶의 굴레를 꿋꿋이 헤쳐 가는 아이의 사연이 미소를 안기기도 했다.

중국 윈난성 산골마을의 ‘눈송이 소년’ 왕푸만(王福滿·8)이다. 왕푸만은 지난 1월 강추위에 별다른 방한복도 없이 1시간 거리를 걸어서 등교하다 머리카락과 눈썹이 꽁꽁 얼어붙은 사진으로 유명해졌다. 특히 그가 류수아동(留守兒童), 즉 부모가 도시로 돈을 벌러 나가서 고향에 남은 자녀란 게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후원금이 쏟아졌다.

중국 윈난성 자오퉁시 주안산바오 마을에 사는 8살 소년 왕푸만이 눈으로 뒤덮인 모습. 이 초등학교에서 약 4.5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그는 매일 1시간 넘게 걸어서 등교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연합뉴스]

중국 윈난성 자오퉁시 주안산바오 마을에 사는 8살 소년 왕푸만이 눈으로 뒤덮인 모습. 이 초등학교에서 약 4.5km 떨어진 마을에 사는 그는 매일 1시간 넘게 걸어서 등교한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캡처=연합뉴스]

중국이 가파른 경제성장 속에서 도농 격차가 심화되는 걸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올초 신년사에서 “2020년까지 농촌 빈곤인구의 탈빈곤을 실현하는 것이 우리의 장엄한 약속”이라고 밝힌 바 있다.

러 쇼핑몰 화재, 인도 성폭행…분노에 불붙이다

안타까운 죽음을 통해 세계에 경종을 울린 어린이들도 있었다.

지난 3월 25일 러시아 시베리아 도시 케메로보의 쇼핑몰에서 큰 불이 났다. 매캐한 연기 속에 갇힌 사람들 중에 13세 소녀 마샤가 있었다. 마샤는 “주변이 온통 불타고 있다”고 가족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몇 분 후 “아마 이것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안녕!”이라고 작별을 고했다. 11살 소녀 비크토리아 포찬키나는 가까스로 이모와 통화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사랑한다고 꼭 전해주세요”가 마지막 말이었다.

러시아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에서 지인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학생들. [AP=연합뉴스]

러시아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에서 지인을 잃고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학생들. [AP=연합뉴스]

 러시아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과 인형들이 쌓여있는 모습. [AP=연합뉴스]

러시아 케메로보 쇼핑몰 화재 참사를 추모하는 촛불과 인형들이 쌓여있는 모습. [AP=연합뉴스]

64명의 사망자 중 41명이 어린이와 10대 청소년이었다. 봄 방학을 맞아 한 학급 학생들이 단체로 쇼핑몰을 방문했다가 이들 중 6명이 숨지기도 했다. 화재 안전 미비를 질타하는 시위가 이어지면서 케메로보주 주지사가 사임하는 등 러시아 정치권에도 반향을 줬다.

 인도에선 올해 시작도 끝도 모두 여아 성폭행 뉴스가 도배했다. 지난 1월 북부 잠무 카슈미르의 한 마을에서 8세 무슬림 소녀가 최소 3명의 남성으로부터 집단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됐다. 지난 16일엔 뉴델리에서 불과 3세 여아가 40대 경비원에 성폭행당한 뒤 숨졌다. BBC가 일러주는 통계는 참혹하다. 인도에선 16세 이하와 10세 이하 어린이가 각각 2시간35분, 13시간마다 성폭행 당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인도 8세 여아의 성폭행 살해에 공분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 [EPA=연합뉴스]

인도 8세 여아의 성폭행 살해에 공분하며 촛불을 든 시민들. [EPA=연합뉴스]

2012년 뉴델리 버스 집단성폭행 사건은 인도 뿐 아니라 전 세계에 충격과 분노를 안겼다. 지난 4월엔 12세 이하 아동을 성폭행할 경우 최소 20년 이상의 징역 또는 최고 사형까지 선고하는 내용의 긴급행정명령이 통과되는 등 처벌도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인구 세계 2위(13억5000만명)에 국토 세계 7위 규모의 나라에서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경제발전 속도(2018년 경제성장률 8%대)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

총탄에 스러져간 아이들…책임지는 자 누구인가

만연한 핏빛 갈등이 애꿎은 목숨을 앗아가기도 했다.

트럼프 정부가 주이스라엘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로 이전(5월14일)하면서 해묵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이 다시 불붙었다. 지난 4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시위 진압 과정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숨진 4명 중엔 15세 소년 무함마드 아유브도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맞아 숨진 15세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아유브를 추모하는 글귀와 깃발들이 가자 지구를 메우고 있다. [AP=연합뉴스]

무방비 상태에서 이스라엘군의 총격에 맞아 숨진 15세 팔레스타인 소년 무함마드 아유브를 추모하는 글귀와 깃발들이 가자 지구를 메우고 있다. [AP=연합뉴스]

“가자지구의 어린이를 죽이는 일이 평화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하마스 지도자들이 소년의 죽음에 대한 유일한 책임자”라는 반격이 나왔다. 그 어떤 주장도 소년을 가족에게 되돌려주진 못했다.

“총기 대신 우리를 지켜주세요!” 지난 3월 미국 워싱턴DC에선 이런 구호를 외치는 인파가 80만명이나 운집했다. ‘우리 생명을 위한 행진(March For Our Lives)’을 주도한 이들은 10대들. 총기 규제 촉구 시위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그 한달여 전 이들을 소스라치게 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백악관 앞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요구’ 학생 시위 [AP=연합뉴스]

백악관 앞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요구’ 학생 시위 [AP=연합뉴스]

백악관 앞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요구’ 학생 시위 [AP=연합뉴스]

백악관 앞에서 열린 ‘총기규제 강화 요구’ 학생 시위 [AP=연합뉴스]

 플로리다주 파크랜드의 마저리 스톤맨 더글러스 고교에서 퇴학생 2명이 총기를 난사해 17명이 숨졌다. 살해당한 친구, 피범벅이 된 교실에 몸서리치던 아이들은 어른들에게 총기 규제를 강화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5월에도 텍사스에 있는 산타페 고교에서 또다시 총기난사로 10명이 사망하는 등 미국은 총기 비극의 굴레를 벗지 못하고 있다.

유튜브 대박난 7살 꼬마, 로열 웨이브 선보인 공주

2018년이 온통 비극이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를 미소 짓게 한 어린이들 사연도 방방곡곡에서 전해졌다.

최근엔 유튜브로 대박을 낸 7살 꼬마 소식이 있다. 미국의 초등학교 1학년인 라이언은 장난감 언박싱(unboxing, 제품 상자를 뜯고 시연하는 것)을 진행하며 1년간 2200만 달러(약 244억원)를 벌었다고 한다((2017년 6월~ 올 6월 기준). 2015년 3월 부모의 도움으로 개설한 그의 '라이언 토이스리뷰(Ryan ToysReview)'의 페이지뷰는 260억건이며 팔로워는 1730만명이다. 최근 한국에서도 초등학생 장래 희망직업 순위 5위에 ‘유튜버’가 오를 정도다.

윌리엄 영국 왕세손의 딸 샬럿 공주(3)가 무럭무럭 커가는 모습도 잔잔한 미소를 안겼다. 지난 1월 유치원 가는 첫날 깜찍한 자태를 선보였던 샬럿 공주는 5월 작은 아버지인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의 ‘로열 웨딩’ 때 열렬히 손을 흔드는 ‘로열 웨이브’로 세계인의 시선을 독차지했다. 4월에 태어난 동생 루이 왕자를 품에 안고 이마에 키스하는 사진은 요즘 말로 ‘심쿵’(심장이 쿵쾅)이었다.

영국 왕실의 샬럿 공주가 유치원에 간 첫날(왼쪽)과 동생 루이 왕자를 품에 안고 이마에 키스하는 모습. [켄싱턴궁 사진=중앙포토]

영국 왕실의 샬럿 공주가 유치원에 간 첫날(왼쪽)과 동생 루이 왕자를 품에 안고 이마에 키스하는 모습. [켄싱턴궁 사진=중앙포토]

기적처럼 돌아온 아이들, 희망을 잇다

무엇보다 올해 우리를 기쁘게 한 ‘기적’은 태국에서 날아들었다. 지난 7월 태국 북부 치앙라이의 탐 루앙 동굴에 갇혔던 축구팀 소년 12명과 코치 등 13명이 고립된 지 17일 만에 무사 생환한 것이다. 이들은 폭우로 동굴 속에 고립돼 구조대에 의해 발견되기까지 열흘간 과자를 나눠 먹고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사흘 간 진행된 다국적 구조대의 구조 활동도 의연하게 따랐고, 생환 뒤엔 구조 활동 중 숨진 전직 네이비실 대원을 추모하고자 절에서 단기 승려 생활을 하기도 했다.

동굴 속에 고립됐다가 구조대에 의해 처음 발견됐을 때 태국 소년들 모습. [AP= 연합뉴스]

동굴 속에 고립됐다가 구조대에 의해 처음 발견됐을 때 태국 소년들 모습. [AP= 연합뉴스]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갇혀 있다가 구출되 병원 치료를 받은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이 군의관인 팍 로한스훈(두번째줄 오른쪽 세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태국 치앙라이 탐루엉 동굴에 갇혀 있다가 구출되 병원 치료를 받은 유소년 축구팀 소년들이 군의관인 팍 로한스훈(두번째줄 오른쪽 세번째)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페이스북 캡처=연합뉴스]

특히 이들 가운데 코치와 소년 3명이 미얀마에서 온 무국적 난민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태국 내 난민 문제에 관심을 환기하는 계기가 됐다. BBC에 따르면 태국에는 약 48만 명의 소수민족 출신 무국적자가 있다. 이 4명은 구조된 후 태국 시민권을 획득해 기쁨이 두배가 됐다. 소년들은 장래 희망을 물었을 때 “축구 선수가 되고 싶다”거나 “네이비실 대원이 되겠다”고 했다. 베풂과 나눔은 이렇게 미래로 대물림된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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