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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50원 후폭풍…주문도 서빙도 손님이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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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어메이징브루잉 건대점은 낮엔 공유 오피스로 쓰이고, 오후 6시 이후 펍으로 바뀐다. [김영주 기자]

어메이징브루잉 건대점은 낮엔 공유 오피스로 쓰이고, 오후 6시 이후 펍으로 바뀐다. [김영주 기자]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오전 10시, 서울 자양동 수제 맥주 전문점인 ‘어메이징브루잉’의 건대점. 분명 맥주 펍(Pub) 간판인데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수십 개의 ‘셀프 푸어링’(수도꼭지처럼 생긴 맥주 따르는 기구) 시스템과 셀프 주문용 키오스크가 눈길을 끈다. 하지만 정작 방문객을 맞는 건 공유 오피스 스타트업 ‘얼리브’의 직원이다. 얼리브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간을 빌려 카페 겸 오피스로 쓰고, 이후부터 오전 1시까지는 펍으로 운영한다. 24시간 중 9시간은 카페, 7시간은 펍인 ‘멀티 매장’인 셈이다.

최저임금 태풍에 달라지는 외식업 #주문·서빙 무인화로 인건비 절감 #115석 맥줏집에 직원은 달랑 4명 #낮에는 카페 겸 오피스로 재임대 #월세 받아 임차료 부담도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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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은 ‘언택트(Untact·‘Un+Contact’, 비대면)’를 택했다. 방문객은 카운터에서 무선 인식이 장착된 밴드를 받아 푸어링 시스템을 통해 스스로 주문하고 맥주잔을 채운다. 방문객은 모니터를 보고 20여 가지의 맥주를 선택할 수 있다. 가격은 10mL에 200원으로 250mL 잔을 가득 채우면 5000원가량이다. 보통 1인당 두세 잔, 안주를 포함한 객단가는 1만5000원~2만5000원가량이다. 다른 맥주를 마실 땐 ‘린서’(세척 기구)로 헹군 뒤 다시 따른다. 안주가 필요하면 카운터 옆 키오스크를 통해 주문하고 결제는 나갈 때 한꺼번에 한다. 직원과 대면하는 일은 밴드를 받고 반납할 때뿐이다.

키오스크와 셀프 주문·서빙을 선제적으로 도입한 이 매장은 내년 외식업이 맞을 변화의 단면을 보여준다. 당장 1월부터 최저임금이 10.9% 올라 2017년보다 29% 인상된다. 정보기술(IT) 기업의 전유물로 여기던 무인화 기술과 언택트 마케팅이 외식업에 스며든 건 이제는 비용을 줄이지 않고선 영업이 힘들어졌기 때문이다.

차승현(38) 어메이징브루잉 운영팀 이사는 “식자재·인건비가 급등해 매출을 늘리는 방법으론 한계가 있다. 비용 절감을 통한 경영 효율화가 살길”이라며 “서빙 등 단순한 일은 무인화했다”고 말했다. 또 주방은 이태원의 한 레스토랑 업체에 맡겼다. 차 이사는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차승현 어메이징브루잉 이사가 ‘셀프 푸어링’ 시스템을 통해 맥주를 주문한 뒤 직접 잔에 따르고 있다. [김영주 기자]

차승현 어메이징브루잉 이사가 ‘셀프 푸어링’ 시스템을 통해 맥주를 주문한 뒤 직접 잔에 따르고 있다. [김영주 기자]

실제 115석(면적 307㎡) 규모의 펍에서 일하는 직원은 4명이다. 이들은 하루 250~350명의 방문객을 맞는다. 평일엔 직원 1명에 파트타임 3명, 주말에 직원·파트타임 각 2명·4명이다. 언택트를 채택하지 않은 어메이징브루잉의 다른 매장 직원이 6~10명인 걸 고려하면 40% 적은 셈이다.

김태경(39)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 대표는 “최저임금이 30%(2017년 기준 2019년 최저임금) 올라 인건비를 30% 줄이는 방법을 택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내년이 되면 신입과 2~3년 차 월급이 비슷해지는 업장이 많아질 텐데 업주는 숙련도가 높은 직원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며 “결국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이 가장 큰 피해를 볼 것”이라고 말했다.

공유 오피스에서 펍으로 바뀌는 시간을 알리는 안내문.

공유 오피스에서 펍으로 바뀌는 시간을 알리는 안내문.

언택트에 대한 소비자의 의식 변화도 포착된다. 김 대표는 “지금까지 서비스(Service)라고 하면 곧 공짜(Free)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서비스를 받으려면 비용을 내야 한다는 인식이 생겼다. 비대면 서비스도 양해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지난 10월 문을 연 건대점은 지난달 바로 흑자를 냈다. 투자비 3억5000만원에 대한 감가상각비 월 600만원(3억5000만원/60개월)을 포함하고도 수익을 냈다. 인건비 비중을 매출의 20% 이하로 한 덕분이다. 추후엔 10% 중반까지 내릴 계획이다. 또 매출 대비 수수료 방식의 임대차 계약을 맺은 것도 한몫했다. 차 이사는 “건물주가 먼저 수수료 방식을 제안했다”며 “매출이 오르면 건물주도 좋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낮에 공유오피스에 매장을 빌려주고 받은 돈은 고스란히 수익이 됐다.

어메이징브루잉 건대점은 최근 외식업 트렌드를 반영한 매장이기도 하다. 한국외식산업정책학회는 최근 2019년 외식업 트렌드로 언택트·뉴트로·가정간편식을 꼽았다. 뉴트로는 ‘뉴(new)’와 ‘레트로(retro·복고)’의 합성어로 복고를 새롭게 즐기는 경향을 뜻한다. 최규완 경희대 교수는 생존 전략으로 “효율적인 세일즈 프로모션을 통한 매출 증대와 식자재·인건비 절감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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