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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심층분석] “기득권에 집착하는 계파주의가 배타적 투쟁 낳아”

중앙일보

입력

■ 총파업·경사노위 불참·점거의 일상화, 文 정부와 대립각 세워
■ 한노총과 갈등·광주형 일자리도 좌초, ‘조폭노조’로 공격받아
■ 20~30대 가입률 떨어져·조합원 고령화, 내부혁신 없이 신뢰 요원

‘한국경제의 딜레마’ #민노총의 일방통행

민노총은 11월 16일 청와대 앞에서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집회를 감행했다. 하루 평균 21건에 달할 만큼 집회신고를 남발하고 있는 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에 주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민노총은 11월 16일 청와대 앞에서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집회를 감행했다. 하루 평균 21건에 달할 만큼 집회신고를 남발하고 있는 민노총은 사회적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장외투쟁에 주력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노총)은 11월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한 전국 14개 지역에서 총파업을 벌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민노총 총파업이다. 월간중앙은 10월호에서 “대통령 지지율 떨어지면 총파업 가능성 높아진다”는 제하의 기사를 썼다. 실제 경제가 어려워지자 문 대통령 지지율은 50% 선을 위협받고 있다.

이 와중에 민노총의 총파업은 ‘친노동적’ 색채가 강한 정부를 더욱 궁지로 몰아넣고 있다. 민노총은 “우리는 문재인 정부가 더는 촛불정부가 아님을 통보한다”, “청와대에 늑대정권을 몰아냈더니 여우정권이 들어섰다”, “부자정권, 재벌정권, 미국에 놀아나는 정권”이라는 말폭탄을 던졌다. 탄력 근로제의 단위기간 확대와 최저임금 산입 범위의 변화가 파업 ‘명분’이었다.

# 총파업 다음 날인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이하 경사노위)가 출범했다. 민노총의 참여를 기다리다 거의 5개월이 늦어졌다. 그러나 끝내 민노총은 들어오지 않았다. 민노총은 10월, 경사노위 참여 안건이 걸린 임시 대의원회의를 열려고 했다. 그러나 정족수 미달로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기의 요구를 관철하기 위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 양보와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노총을 향한 말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틀 전, 민노총은 “정부의 불통과 오만을 확인했다.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선언했다. 사회적 대화가 아닌 광장에서의 투쟁 노선을 선명히 한 것이다. 실제로 경찰청에 따르면 2018년 1월부터 10월까지 민주노총이 신고한 집회는 6602건에 이른다. 전체 집회가 6만7168건이었으니까 민노총 집회만 9.8%에 달한다. 하루 평균 21건인 셈이다.

민노총은 분파적 집합체

경사노위가 11월 22일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앞줄 가운데)은 민노총의 참여를 기다렸지만 끝내 응답이 없었다. 맨 왼쪽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다.

경사노위가 11월 22일 출범했다. 문재인 대통령(앞줄 가운데)은 민노총의 참여를 기다렸지만 끝내 응답이 없었다. 맨 왼쪽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이다.

중앙일보는 11월 22일 사설에서 ‘2003년 닮아가는 2018년 민노총의 구태’라고 썼다. 민노총의 투쟁 일변도 노선을 비판한 것이다. 어째서 민노총은 15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하지 않은 것일까.

민노총 홈페이지에 따르면 2018년 1월 기준, 총 조합원수는 78만6563명. 1995년 11월 11일 41만 명 조합원의 참여로 출발한 이래 두 배 가까이 세를 불렸다. 민노총은 1999년 11월 합법화됐고, 한국노총(이하 한노총)과 더불어 대한민국 양대 노조가 됐다.

바깥에 비치는 것과 달리, 민노총은 이념적으로 통일된 조직체가 아니다. 이런 민노총의 분파적 속성을 알아야, 고립을 자초하는 이들의 비(非)전략적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 익명을 전제로 취재에 응한 전 민노총 관계자는 3가지 맥락에서 민노총이 실리 없는 싸움으로 일관하는 배경을 설명했다.

“민노총의 가장 약한 고리는 태생이 정치적 노동운동이라는 점이다. 몸은 민노총 한 몸이지만, 이념적 노선에 따라 정파노조적 성격이 강하다. 예전보다 완화됐다고 해도 인맥, 출신, 사업장에 따라 움직인다. 이러니 합리적 판단보다 타 조직에 대한 견제와 비판이 강하다. 민노총 안에서도 ‘사회적 대타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그러나 그들이 전략적 협상을 해서 성과를 내는 것을 원치 않는 구조도 있다.”

민노총에 내재한 또 다른 내부적 모순은 ‘기업별 노조’ 중심 체계다. 민노총은 공식적으로 산별노조를 지향한다. 그러나 현실은 별개다. “노조의 존재감을 가장 잘 표현하는 수단이 교섭이다. 기업 노조가 (독립적으로) 교섭하면 산별은 허울이 된다. 기업별 노조가 굳이 사회적 의제에 대해 책임지거나 열의를 갖고 참여할 여지가 없어진다.” 이미 풍족함을 향유하는 민노총 산하 대기업 노조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노동 약자와 한국 사회 전체 이익을 위한 타협에 나설 필연성이 떨어지는 구조다. 그나마 산별노조도 정파적 지향성에 따라 분류가 이뤄졌다. 가령 삼성 에버랜드 노조가 금속노조에 가입해 있고, 서울대병원이 보건의료노조를 탈퇴한 뒤, 공공운수연맹에 들어가는 식이다.

세 번째 이유는 선출직이 채용직의 강한 견제를 받는 현실이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은 온건파로 통한다. 그러나 실무라인의 반대를 뚫지 못한다. 민노총 전직 인사는 “산업별, 지역별 정파가 민노총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한다. 그들의 동의 없이 집행부라도 함부로 경사노위 참여를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민노총 상근자의 주류는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 계열인 ‘현장파’가 점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민노총에서도 가장 ‘왼쪽’에 위치한 강경파다.

한노총, “민노총 ‘떼쓰기’ 못 참겠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3번째)과 여야 5당 대표는 11월 21일 채용비리 의혹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왼쪽 3번째)과 여야 5당 대표는 11월 21일 채용비리 의혹 관련 국정조사에 합의했다. / 사진:연합뉴스

민노총의 전신은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성과였다. 전노협의 탄생은 한노총에 대한 불신에 뿌리를 둔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은 산별노조를 시행했다. 원래 산별노조는 ‘공통된 기술을 보유한 노동자들을 묶어 균질한 노동조건을 보장해주자’는 취지에서 성립된다. 유럽의 노동조합이 산별노조로 시작된 연유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은 노동조합의 필요성 때문이 아니라 통제의 효율성 차원에서 산별노조를 선택했다.

그러나 의도와 달리 산별노조는 ‘뭉치는’ 힘이 발생했다. 결국 박정희 정부는 기업별 노조로의 분화 전략으로 선회했다.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한노총이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라는 이름으로 1961년 8월 30일 출범했다.

한노총의 실리 지향은 노동운동 내에서 반발을 불러왔다. ‘어용’이라고 판단한 이들은 한노총의 우산을 벗어난 새로운 노조를 추진했다. 그것이 전노협이었고, 1995년 민노총으로 전환됐다.

이러다 보니, 민노총과 한노총은 협력보다 경쟁 관계일 때가 잦았다. 특히 최근 갈등이 격화되는 양상이다. 2018년 11월 12일 경찰청 앞에서는 상징적인 시위가 있었다. 한노총이 민노총을 규탄하는 집회였다. 한노총 주장에 따르면,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의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민노총 조합원들이 현장 입구를 점거하고 농성을 했다. 그 전에는 안전교육장을 점거하기도 했다. 이런 민노총의 실력행사의 이면에 관해 김호국 한노총 경기남부지부 조직국장은 “사업장에 100% 민노총 조합원만 배정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탓에 비노조 일용직 노동자들도 2주째 현장입구에서 발길을 돌리고 있다. 민노총의 ‘떼쓰기’는 2007년 복수노조 창설 허용 때부터 습관적으로 반복됐다”고 주장했다. 한노총은 7월에도 경찰을 항의 방문해 “민노총의 불법 점거시위에 엄정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민노총의 불법농성과 경찰의 무대응이 반복되자 시위는 계속됐다.

이를 두고 노동계 사정에 밝은 인사는 “한노총의 불만이 터진 것이다. 한노총은 권력과의 민감도가 강한 조직이다. 역대 여당과 교감을 형성했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 때에도 그랬다.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은 2017년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공동선대위원장까지 맡았다. 이렇게 정부에 협조했는데 경사노위 참여 등, 정부는 노동정책을 펼 때마다 민노총을 의식하고 기다려주니 박탈감이 터져 나온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노총은 ‘제1노총’으로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나 한노총 150만 회원 중 조합비를 내는 이는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이 정설이다. 80만 조합원 대다수가 돈을 내는 민노총과 대비된다. 복수노조 허용 이후 경쟁심은 더 커졌다.

민노총 측도 한노총에 관한 불신이 짙다. 노동계 인사는 “한노총이 과거 노사정위원회(경사노위의 전신)에서 (반대 급부를) 못 받아내고, 민노총이 일관되게 반대했던 사안들을 합의해준 전례들이 있었다. (노조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타임오프제가 그랬다. 그래 놓고 박근혜 정권으로 가서 국회의원이 된 한노총 인사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민노총 출신 중에서도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가지 않고, 문 정부와 손을 잡은 케이스가 있다. 사회연대노동포럼이 대표적이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이 단체 출신으로 문재인 대선캠프에서 뛰었다.

이렇게 민노총은 ‘전선’에서 고립돼 있다. 보수진영과 기업 집단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여당과도 껄끄럽다.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저지를 놓고 연대하고 있어도, 한노총과도 근본적으로 융화가 어렵다. 자영업자나 비정규직, 청년구직자 등 사회적 약자 계층이 민노총을 보는 눈길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이러다 보니 민노총이 저지른 ‘일탈’의 사회적 반향이 더 강하게 돌아오고 있다. 공공기업 채용비리 건이 그렇다. 국정조사까지 예정돼 있다. 그러나 월간중앙 취재 결과, 대다수 노동 전문가는 ‘고용세습’이라는 프레임 자체에 동의하지 않았다.

‘조폭노조’라는 오명까지…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이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뒷모습 보이는 이)을 응시하고 있다. 이념적인 민노총과 실리적인 한노총의 갈등은 최근 들어 더 첨예하다.

김명환 민노총 위원장이 김주영 한노총 위원장(뒷모습 보이는 이)을 응시하고 있다. 이념적인 민노총과 실리적인 한노총의 갈등은 최근 들어 더 첨예하다.

조성재 노동연구원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일부 일탈은 있었겠지만 노조의 고용세습으로 보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봤다. 익명을 요청한 노동 분야 박사도 “비리가 조직적이냐, 아니냐를 들여다봐야 한다. 이것은 채용비리지 고용세습이 아니다. 전 정부에서 비정규직을 확장하면서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 일부 노조 간부의 인맥이나 친인척이 일용직으로 눌러앉았다. 그러다 현 정부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진행되자, 그제야 채용 절차나 기준에서 허점이 노출됐다”고 말했다.

국회 국정조사에 관해 자유한국당 안에서조차 “더 캐봤자 나올 게 없다”는 말이 들린다. 사건이 증폭되자 서울시는 “민·관 합동으로 2014년 이후 산하 공공기관 신규채용과 정규직 전환 전체를 대상으로 채용비리 조사를 추진한다”고 했다. 국정조사도 ‘2014년 이후’라는 범위에서 움직일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민주당이 “(구 여당 연루 의심이 드는) 강원랜드와 금융기관 채용비리도 조사하자”고 자유한국당에 역공을 취할 수도 있다. 그만큼 ‘용두사미’ 국정조사의 개연성이 올라간다.

11월 22일, 유성기업 민노총 노조가 김모 상무를 집단폭행한 사건도 사회적 파장이 컸다. 김천시청 점거와 함께 민노총의 ‘호전성’이 드러난 사례다. 자유한국당에서 “조폭노조”라는 성토까지 나왔다. 조성재 본부장은 “폭력을 답습한 민노총도 문제다. 다만 2011년부터 불거진 유성기업 사태는 오래된 사건이다. 장기분규 사업장은 전면적인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노동계 인사는 “노조 활동가들 사이에서 (유성기업은) 과거 쌍용자동차 사태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노조가 회사 임원을 감금, 폭행했다’고 단편적으로 볼 문제는 아니다. 노조탄압과 결부해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민노총의 폭력성과 경찰 공권력 집행의 소극성에 면죄부를 줄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악재들이 민노총의 입지를 더 협소하게 만들 터인데 오히려 이를 강경투쟁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세력이 존재하는 현실이다. 민노총 지도부는 컨트롤타워로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 민노총 출신 인사는 “민노총은 상층부 과잉 조직”이라고 평했다. 단일안이 만들어지기도 어렵고, 그 과정에서 국민파·중앙파·현장파 등 계파 간 내부 분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위에서 정하면 따라가는 한노총에 비해 협상력에서 결정적 차이가 난다. 실리를 외면하고, 투쟁에 함몰되는 민노총 비합리성·배타성의 근본 원인이다.

홍영표·임종석에 대한 불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나란히 앉아있다.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민노총을 견제하는 발언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가 나란히 앉아있다. 두 사람은 시차를 두고, 민노총을 견제하는 발언을 했다. / 사진:연합뉴스

통계청이 11월 12일 발표한 3분기 가계동향지수는 문 정부에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근로시간 단축 등 노동친화적 정책이 소득불평등의 악화라는 뜻밖의 성적표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평균소득은 하위 20% 가구 평균의 5.52배에 달했다. 이는 2007년 이후 가장 격차가 벌어진 결과였다.

이를 전후해 청와대의 기류 변화가 감지됐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11월 6일 국정감사에서 “민노총과 전교조는 사회적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1월 12일 “너무 일방적이라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민노총을 겨냥했다.

이에 민노총은 “촛불을 꺼뜨린 문재인 정부 개악을 막고 사회 대개혁을 추진하자”며 11월 21일 총파업으로 응수했다. 12월 1일에는 여의도 국회 앞에서 ‘2018 전국민중대회’를 열고 문재인 정부를 성토했다.

그러나 정부는 조금씩 ‘우클릭’하는 모양새다. 홍남기 신임 경제부총리는 12월 11일 취임사에서 “2019년 3월까지 최저임금 결정 구조개편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시급 7530원에서 2019년 8350원까지 올리려 했던 최저임금의 속도조절론이 힘을 얻고 있다.

2019년 1월부터 본격 시행되는 주52시간 근무제 계도기간 연장도 검토 중이다. 민주당은 탄력근로 단위기간 확대 관련 법안을 ‘2019년 2월 임시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주도하는 홍영표 원내대표에 대해 노동계와 정부여당 양쪽 모두 마땅찮은 기류가 강하다.

정부 측 한 인사는 “탄력근로제 법안 관련해 정치권에서 이렇게 지시하듯 하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는 허울만 남게 된다. 정부 프레임이라고 오해하지 누가 자율적 논의라 생각하겠는가? 섬세한 전략이 아쉽다”고 말했다. 전직 민노총 인사는 “홍 원내대표가 노조 출신이라지만 최저임금 문제 등, 민노총과 입장을 달리한 것이 많다”고 했다. 적어도 홍 대표가 민노총과의 대화창구일 것이라는 노동계의 기대감은 희박했다. 그는 “민노총에는 이 정부와 관계가 잘되는 것을 원치 않는 정파가 존재한다. 대통령의 참모들은 책상에 앉아서 보고만 받고 있다. 홍 대표에 관해선 ‘민노총 출신’이라는 말부터 거부감을 가질 만큼 불신이 깊다. 민노총이 ‘대화창구가 없다’고 하는데 맞는 소리다. 그런데 정부도 답답한 것이 이 사람, 저 사람 만날 순 없지 않는가. 민노총에서 역할분담, 권한위임 같은 조직체계가 무너져 있으니 대표성이 없다. 개인적 만남으로 끝난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문 정부와 민노총이 완전히 갈라설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일단 민노총 스탠스에 관해 조성재 본부장은 “민노총은 2019년 1월 경사노위 복귀를 논의한다. 여기서 부결되면 장외투쟁밖에 길이 없다. 그래도 박근혜 정부 때처럼 전면투쟁으로는 안 갈 것이다. 일정한 거리를 둔 긴장과 협력 관계가 예상된다”고 봤다.

정부도 여론이 ‘민노총에 쏠리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 선결과제다. 조 본부장은 “다른 정책은 써보지도 못하고, 최저임금 전선으로 1년 반을 보냈다. 이를 탈피할 무언가를 정부 경제팀에서 내놓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 과정에서 민노총이 소외감을 느낀다면, 더 격앙될 수도 있다. 노동법 개정,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 비준, 전교조 합법화 등은 휘발성을 지닌 패키지다.

정부여권에서는 문 대통령의 민노총 대응을 두고 ‘전략적 인내’라는 말이 나온다. 시민단체와 더불어 민노총은 문 정부 지지기반의 핵(核)이라 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집토끼’를 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어떻게 됐는지를 곁에서 목격했다. 노 전 대통령 취임 첫해인 2003년 화물연대 파업이 터졌다. 민노총은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령에 반발해 ‘노무현 퇴진운동’을 선언했고, 그렇게 지지기반에서 떨어져 나갔다.

광주형 일자리 흔드는 대기업 노사카르텔

울산 현대차노조가 12월 6일 광주형 일자리에 반발해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평소보다 2시간 이른 오후 1시 30분쯤 일손을 놓고 회사 정문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울산 현대차노조가 12월 6일 광주형 일자리에 반발해 부분파업에 돌입했다. 평소보다 2시간 이른 오후 1시 30분쯤 일손을 놓고 회사 정문을 나서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는 12월 4일, 완성차 공장 설립 합의를 발표했다. 지역 노·사·민·정이 일자리를 만드는 소위 ‘광주형 일자리’다. 연봉 3500만원 수준에, 간접고용까지 1만~1만2000명의 일자리 창출 효과를 기대했다. 그런데 민노총 산하 금속노조에 속한 현대차노조가 파업 불사로 반발했다. 7일 예정됐던 파업은 유보됐지만 현대차노조는 “광주형 일자리가 재추진되면 파업하겠다”는 자세다.

광주형 일자리는 독일 ‘아우토(Auto) 5000’의 한국식 모델이다. ‘아우토 5000’은 독일 폴크스바겐 본사가 있는 볼프스부르크에 2001년 설립한 유한회사다. 볼프스부르크 공장은 경기침체로 인력 구조조정 위기에 직면하자 해외 이전 대신, 월급 5000마르크(약 300만원) 수준의 정규직 직원 5000명을 고용하겠다고 제안했다. 원래 받는 돈의 80% 수준이었다. 처음에 노조는 반대했지만 설득을 받아들였고, 세계 자동차 경기가 회복되자 구성원 모두 상생했다.

그러나 광주형 일자리에 관해 정부 측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재벌과 노조가 (광주형 일자리가 불발되도록) 알리바이를 만들고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책임이 보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대주주가 광주시라는 구조 자체가 무책임의 증거라고 여긴다. “현대차가 광주 공장에 물량을 위탁, 판매해 준다고 하더라도 자동차 경기가 안 좋아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광주형 공장이 디폴트(채무 불이행) 들어갈 수 있겠나? 광주시에 여차하면 계속 혈세로 자금을 밀어 넣으라는 소리나 다름없다. (경영이 악화돼도) 해고도 못한다. 이러다 광주시가 디폴트로 갈 수도 있다. 재벌 노사가 서로 싸우는 와중에 광주시와 중앙정부가 볼모로 잡힌 희한한 상황”이라고 개탄했다.

4년 6개월이 흘렀는데도 진도를 못 나가는 광주형 일자리를 현대차노조가 반대하는 주된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현대차노조의 지역 이기주의 조장이다. 울산과 광주 사이에 ‘일자리 제로섬게임’처럼 받아들여지는 한, 교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현대차노조의 상위기관인 민노총은 어떤 태도일까. 이에 관해 전직 민노총 인사는 “조합원 구성상, 민노총에 정규직 대공장 노조원이 많다. 그쪽 이익을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한국 사회의 공익과 민노총의 이익이 꼭 일치한다고 볼 수 없는 근거라 할 만하다.

둘째, 광주시와 현대차의 잠정합의안에 등장한 ‘단체교섭 5년 유예’ 규정이다. 정부 측 인사는 “차라리 돈을 아끼지. 노동기본법에 보장된 내용마저도 무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애당초 현대차노조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조건을 내걸어 결렬을 유도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현대차로서도 실적 부진과 불황이 부담스럽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12월 12일 ‘총 7조6000억원을 투자해 2030년까지 연 50만 대 규모의 수소전기차(FCEB) 생산 계획’을 공개했다. 40조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흑자가 났음에도 구조조정을 단행한 미국 GM처럼 현대차도 선택과 집중을 선언한 셈이다. 이 시국에 노조 리스크를 짊어지고, 광주형 일자리에 무작정 투자하라고 강권하기도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현대차의 방향성과 노조의 기득권 챙기기, 제도의 부재는 광주형 일자리를 좌초시키는 ‘카르텔’을 낳았다. 민노총 안에서조차 뜻 있는 이들은 “장기불황이 오고, 인구가 감소한다. 민노총도 경사노위에 들어가고, 책임감 있게 못 하면 고립된다”고 털어놓는다.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바람을 타고 민노총 조합원은 증가했다. 그러나 다시 정체기에 들어설 시점이다. 노조 조직률 증가가 궁극의 목적일 민노총은 역설적이게도 확장성의 한계에 직면해있다. 노동계에서는 “20~30대의 노동에 관한 인식이 좋지 않다. 노조의 미래가 회의적이다.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정당성을 확보 못 한 노조는 공동체에 부담스러운 존재”라고 지적했다. 일자리가 있어야 노조도 있는데 민노총의 고령화도 심각하다. 일례로 현대차 울산공장 노조 평균연령이 50세를 넘겼다.

또 다른 전직 민노총 인사는 “강성 귀족노조 이미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민노총의 실력이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면 ‘똥파업’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지금 민노총은 파업부터 하고 본다. 산별노조가 제대로 안 돼 있으니 파업을 해봤자 효과도 없고, 나쁜 프레임만 쌓인다”고 한탄했다.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정당성 확보해야

민노총 관련 인사들이 11월 14일 서초동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까지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은 3차례에 걸쳐 이들에게 퇴거 통보를 했고, 불응하자 체포했다.

민노총 관련 인사들이 11월 14일 서초동 대검찰청 민원실 앞에서까지 연좌농성을 하고 있다. 경찰은 3차례에 걸쳐 이들에게 퇴거 통보를 했고, 불응하자 체포했다.

민노총의 유연성 부족에 내부적으로도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있다. 노무현 정부 때 정부와의 협의 틀을 열어줬는데 그 공간을 민노총이 적절히 활용 못했다는 반성도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부담을 무릅쓰고 최저임금을 인상했을 때, 가장 혜택을 봤음에도 민노총은 ‘시급 1만원 공약’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격적인 논평을 냈다. 노무현 시절의 전략미숙으로 이명박·박근혜 정권에서 그 고생을 했음에도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곧 ‘민노총은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자인이나 다름없다.

이에 관해 그 인사는 “결국 (민노총 계파들의) 책임지는 것에 관한 두려움이다. 사회적 대화에 참여해서 역할을 하고, 책임지고, 사퇴하면 된다. 필요하면 조직혁신을 해야 된다. 그렇지만 민노총은 그런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민노총 안에서 세를 유지하려면 비타협적, 배타적 노선으로 일관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셈이다. 민노총 주변에 동지는 간데 없고, 열린사회의 적처럼 사갈시되고 있다.

정부 측 인사는 “노정 관계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갈까봐 의도치 않은 사건을 걱정하고 있다”는 말을 들려줬다. 2015년 민중총궐기 집회 당시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숨진 농민 백남기씨 같은 사건을 지칭하는 듯했다. 그러나 이를 우려한 나머지 법치주의가 무너졌다는 분노도 나오고 있다. 이는 고스란히 정부 지지율에 부담이 될 터다.

김영준 월간중앙 기자 kim.youngjo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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