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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 넣은 된장찌개가 뭐 그리 맛있겠나 했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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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민국홍의 삼식이 레시피(13)

된장찌개만큼 인생스토리를 가득 담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가족 3대를 이어주는 보이지 않는 끈인가 하면 한국이 후진국으로 어려웠던 시절 못 먹고 못 살았음을 잘 보여주는 음식이라는 이야기다.

한편으로 된장찌개는 언제나 밥상의 윗자리를 자리를 차지하면서 한 가정 저녁의 조그만 행복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된장찌개가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이라서 그런 것일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밥상에는 언제나 된장찌개와 김치가 있었다. 실은 된장찌개와 김치만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것 같다. 초등학교 다니던 60년대 한국은 참으로 못 살았다.

‘우리도 한번 잘살아 보세’라는 노래가 심금을 울릴 때다. 그런 시절이니만큼 끼니를 거르지 않고 배를 채우면 행복할 때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된장찌개를 그렇게 매일 먹어도 한 번도 질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내가 어렸을 때 밥상에는 언제나 된장찌개와 김치가 있었다. 실은 된장찌개와 김치만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된장찌개만큼 인생스토리를 가득 담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중앙포토]

내가 어렸을 때 밥상에는 언제나 된장찌개와 김치가 있었다. 실은 된장찌개와 김치만 있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한 것 같다. 된장찌개만큼 인생스토리를 가득 담은 음식은 없을 것이다. [중앙포토]

어렸을 때 된장찌개와 관련된 기억은 3가지다.
밥상에서 된장찌개 들어간 감자를 놓고 한 조각이라도 더 먹으려고 동생과 젓가락 전쟁을 벌였다는 게 하나의 에피소드다. 지금 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된장을 맛있게 했든 안 했든 먹는 것 자체가 무조건 맛있던 것 같고 감자조각 하나는 특식에 해당했던 것 같다.

2번째 에피소드는 대전시 서구 용두동 서대전 초등학교 부근에서 살던 초등학교 3, 4학년 시절 어느 겨울 저녁 할머니 심부름을 간 것이다. 할머니가 호수돈여고 근처 고개에 있는 정육점에 가서 쇠고기를 사 오라면서 50원을 주셨다. 어디에 쓸 것이냐고 물었더니 된장찌개에 넣는다는 것이었다.

길거리는 초저녁 어두움이 살포시 깔렸는데 가로등 불이 별로 없었던 그 시절 길가의 상점들의 약한 불빛만이 거리를 밝히고 있었다. 너무 스산했다. 심부름을 갔다 오는 길이 매우 무서웠는데 그 기억이 아주 오래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다.

그런데 이런 기억이 1990년 베트남 하노이와 2005년 북한의 평양에서 되살아날 줄이야! 90년 산업자원부를 담당하던 기자 시절 하노이를 방문했는데 묵던 호텔서 저녁 무렵 동네 야시장으로 갔는데 너무 캄캄하고 을씨년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몸서리를 쳤다.

또 2005년 여자프로골프협회 전무 시절 평양에서 평화 자동차가 후원하는 여자골프대회를 열기 위해 평양을 방문했다. 묵던 호텔에서 안내인 동지를 따라 부근의 단고기(개고기) 집을 들른 적이 있는데 저녁 무렵의 동네 풍경이 “어쩜 그렇게 60년대 중반 한국의 모습과 똑같은지”하고 마음이 아픈 적이 있다.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가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를 참 맛있게 잡수셨다는 기억이다. 조금은 시어 버린 동치미 무 조각을 넣고 끓인 된장인데 먹는 표정이 그렇게 천진난만할 수가 없었다. 어렸을 때는 무 넣은 된장찌개가 뭐 그리 맛있었을까 의아해 했을 정도다.

동짓날을 맞이해 된장찌개와 함께 팥죽, 제철 음식인 도루묵 구이로 저녁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동짓날을 맞이해 된장찌개와 함께 팥죽, 제철 음식인 도루묵 구이로 저녁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올해 삼식이가 되어 집에서 음식을 시작할 때는 된장찌개를 맛있게 끓일 자신이 있었다. 속으로 30여년간 평범한 된장으로 가족을 먹여 살아온 아내한테 된장이란 무엇인가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많이 다녔던 고깃집의 된장은 참으로 맛있었다.

특히 영동시장 안에 있는 언양 불고깃집의 불고기는 말할 나위 없이 맛있고 고기를 먹은 뒤 깻잎과 함께 나오는 된장은 천하일미를 할 정도로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된장찌개를 끓여내기 위해서는 순전히 감으로만 시도를 해야 했다. 요리학원에서 조리사 자격시험에도 나오지 않는 ‘너무도 쉬운’ 된장찌개 요리법은 가르쳐주지도 않는다. 나는 감자, 양파, 호박 등과 함께 묵은 지와 고기를 넣고 된장을 풀어 찌개를 끓였다. 근데 웬일? 제대로 맛이 나질 않는다. 다음에는 소갈비와 함께 무 조각과 함께 각종 재료를 한꺼번에 넣고 끓여 보기도 했다. 별로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경북 왜관에서 열린 남자 프로골프대회의 레프리를 하기 위해 숙소를 잡은 곳 바로 옆에 있던 왜관 시장 안의 약목 식육식당에 들렀다. 갈빗살이 나와 구워 먹었는데 그 맛이 예술이다. 다음에 나온 된장찌개는 한 수 위였다. 천국의 맛이다.

찌개를 끓이기 전 감자, 양파, 쇠고기, 두부, 대파 등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찌개를 끓이기 전 감자, 양파, 쇠고기, 두부, 대파 등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숙소로 돌아갔다가 음식점이 파할 무렵 다시 찾아가 사장에게 된장찌개를 어떻게 끓이냐고 물었다. 사장이 소 갈빗살 정리하면서 나오는 기름기 있는 고기 부스러기와 무를 썰고 푹 끓이면 되는데 무슨 레시피가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그때 속으로 유레카라고 외쳤다.

집에 돌아와 무와 소고기를 넣고 된장찌개를 여러 번 실험해보니 정말 맛있는 된장이 나왔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푹 끓인 무가 신의 한 수였다. 나박김치 담글 때처럼 무를 썰어 오랫동안 끓이면 단맛과 감칠맛이 나는데 된장찌개의 맛을 확 살렸다. 지금은 다음과 같이 된장찌개를 끓인다.

2인분 기준으로 무 100g과 다시마와 황태포를 넣고 물을 한소끔 끓이다 쇠고기 30g과 청주 1큰술을 추가해 30분 이상 약 불을 유지한다. 여기에 된장 2큰술, 마늘 반 큰술, 대파 1개, 양파 1개, 감자 1개, 두부 반 모 등을 넣어 10분을 더 끓인다. 물론 다시마는 물이 한소끔 끓을 때 황태포는 건져낸다.

된장찌개를 이렇게 해서 먹으니 어느 음식보다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렵게 살던 시절 생존을 위해 먹던 된장찌개가 미각을 황홀하게 해주는 음식으로 거듭 태어난 것 같다. 된장 하나만으로도 저녁이 행복해지고 기다려진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된장을 먹을 때면 가끔은 된장을 좋아하던 아버지 생각이 난다.

해물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꽃게, 오징어, 새우, 바지락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해물된장찌개를 끓이기 위해 꽃게, 오징어, 새우, 바지락을 준비했다. [사진 민국홍]

다음으로 해물된장찌개는 재료만 준비하면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다.
다시마와 황태포로 육수를 준비한다. 다음 끓는 육수에 오징어 반 마리, 새우 4마리, 꽃게 반 마리, 바지락 40g에 대파 1개, 마늘 한 큰술, 양파 1개를 넣고 된장 2큰술을 풀어 5분 정도 끓이면 그것으로 끝이다. 해산물을 오래 끓이면 질겨지는 만큼 짧은 시간에 익혀 불을 꺼야 한다.

[정리] 된장찌개 만드는 법

[재료]
2인분 기준) 무 100g, 다시마, 황태포, 쇠고기 30g, 청주 1큰술, 된장 2큰술, 마늘 반 큰술, 대파 1개, 양파 1개, 감자 1개, 두부 반 모

[조리순서]
1. 무 100g과 다시마와 황태포를 넣고 물을 한소끔 끓인다. (물이 한소끔 끓을 때 다시마와 황태포를 건져낸다.)
2. 쇠고기 30g과 청주 1큰술을 추가해 30분 이상 약불을 유지한다.
3. 여기에 된장 2큰술, 마늘 반 큰술, 대파 1개, 양파 1개, 감자 1개, 두부 반 모를 넣어 10분을 더 끓인다.

해물된장찌개 만드는 법
[재료]
다시마, 황태포, 오징어 반 마리, 새우 4마리, 꽃게 반 마리, 바지락 40g, 대파 1개, 마늘 한 큰술, 양파 1개, 된장 2큰술

[조리순서]
1. 다시마와 황태포로 육수를 준비한다.
2. 끓는 육수에 오징어 반 마리, 새우 4마리, 꽃게 반 마리, 바지락 40g, 대파 1개, 마늘 한 큰술, 양파 1개를 넣는다.
3. 여기에 된장 2큰술을 풀어 5분정도 끓인다.

* 해산물을 오래 끓이면 질겨지니 짧은 시간에 익혀 불을 꺼야 한다.

민국홍 KPGA 경기위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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