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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이민 얘기하던 분들 지금 뭐하고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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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

2016년 미국 대선을 앞두고 농반진반으로 미국을 떠나겠다는 분들이 꽤 있었다. 이민 후보지에 한국도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견디지 못한 쪽에서다. 그중 한 분이 당시 찰스 랭걸 민주당 하원의원이다. 그해 9월 전화 인터뷰 도중 그에게 트럼프 당선 가능성을 물었더니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내가 한국으로 이민간다고 한국 독자에게 전하라. 한국 국민들에게 나 랭걸을 기다리고 있으라고 알리라”고 호언장담했다. 한국에 도움이 되는 대선 후보가 누구인지를 괜스레 물었다가 “농담하냐”는 면박을 들었다.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랭걸은 “(트럼프는) 해외에 있는 우리 친구들이 신뢰하지 않게 만들었다”라고 했다.

이민 거론한 민주당 의원, 트럼프 견제 전면에 #야당 총공세에 밀린 백악관 북핵 뒤로 미룰 수도

비슷한 상황은 이에 앞서 다섯달 전에도 겪었다. 그해 4월 털털거리는 낡은 캠리 자동차를 타고 나타난 제리 코널리 민주당 하원의원은 인터뷰 시작부터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면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으로 이민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트럼프는) 한반도 이슈가 뭔지 북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아는 게 없다”라고 주장했다. 코널리 의원은 미국 의회내 지한파 의원 모임인 코리아코커스의 공동의장이다. 그래서 한국 정·관계 인사들도 많이 알고 한반도 상황도 잘 안다. 랭걸 의원 역시 코리아코커스 소속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시대를 맞아 이 분들이 뭐 하나 궁금했는데 두달 전 코널리 의원을 미국 언론에서 만났다.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을 따지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구체적인 비핵화 약속 없이 김정은에게 국제적 정당성을 부여했다”며 “트럼프 행정부가 과거를 잊지 않게하겠다”고 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에 이제 미국 국내 정치라는 제3의 변수가 등장한다. 한때 이민 얘기를 꺼냈던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이 되는 내년 1월부터 트럼프 정부를 전방위로 견제한다는 측면에서다. 두 가지 측면에서 북·미 협상에 악재다. 먼저 백악관 입장에선 하원 민주당이 트럼프 행정부를 상대로 비핵화 ‘성과’를 보이라며 각종 청문회와 출석 요구로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두번째가 더 심각할 수 있는데 민주당이 상임위마다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법안 처리 지연과 각종 의혹 제기로 총공세에 나서며 백악관이 북핵 이슈를 후순위로 미루는 경우다.

한국 이민이 늘거라 했던 코널리 의원은 현재 하원 외교위뿐 아니라 정부개혁감독위원회의 멤버다. 이 상임위는 정부의 무능과 정책 혼선을 감시하는 위원회다. 내년 연초부터 트럼프 대통령을 견제할 대표 위원회로 손꼽히다. 이 위원회는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대통령의 각종 스캔들과 정부의 탈법 의혹을 조사한다며 5년간 1000여건의 소환장을 발부했던 악명 높은 기록이 있다. 당시는 위원회 위원장이 공화당이었다. 코널리 의원은 이달초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대표상품인 국경 장벽 건설을 위원회 차원에서 조사하겠다고 예고했다.

랭걸 의원은 대선 이후 한국으로 건너오지는 않았다. 대신 정계를 은퇴했다. 랭걸은 떠났지만 대선 기간중 반(反)트럼프의 선봉에 섰던 블랙코커스(흑인 의원 모임)에서 랭걸과 함께 활동했던 일라이자 커밍스 의원이 정부개혁감독위의 차기 위원장으로 확실시된다. 랭걸과 커밍스는 모두 블랙코커스 의장을 지냈다. 커밍스가 내년에 위원회 차원에서 들여다볼 사안으로 거론한 것만 트럼프 정부의 권력남용, 언론 보복, 세금 낭비, 트럼프 호텔 등 부지기수다.

최근 워싱턴을 찾은 당국자, 전문가들이 전하는 현지 기류중 하나가 내년 민주당이 장악한 하원이 백악관 견제에 나서면서 비핵화 협상이 내부에서부터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최근 조명균 통일부장관은 “내년 2∼3월까지가 고비”라고 말했는데 같은 맥락이다. 이럴 때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이 확인된다. 상대를 한계로 몰아 최대치를 얻어내려는 기존의 벼랑끝 전술을 북한이 이번에도 구사한다면 비핵화는 기약이 없다.

채병건 국제외교안보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