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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선2035

언제쯤 적령기서 벗어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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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민경원 기자 중앙일보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

“놀 거면 난자 냉동이라도 해 놓고 놀아.”

엄마가 던진 최후통첩이다. 결혼 3년 차가 됐으니 “밥값을 하라”는 엄마의 보챔과 “아직 더 놀고 싶다”는 딸 사이의 힘겨루기 끝에 나온 얘기였다. 여자 나이 만 35세가 되면 난소의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지니 그 전에 임신할 생각이 없으면 난자 동결보관 시술을 고려해보란 뜻이었다.

“아니 엄마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냐”는 하소연에 친구들의 반응은 각양각색이었다. “안 낳을 거면 몰라도 낳을 거면 빨리 낳아라”는 잔소리는 기본, “나도 둘째 때문에 고려 중”이라는 경험자의 충고부터 “갈 때 나도 데려가달라”는 미혼자의 요청이 밀려들었다. “엄마가 너무하네”라는 위로를 기대했건만 “엄마가 깨어있다”는 칭찬만 쏟아졌다.

사실 10년 전에도 비슷한 위기는 있었다. 그때만 해도 “여자 나이는 크리스마스 케이크와 같다”는 사회적 통념이 지배적이었다. 23, 24살까진 불티나게 팔리지만 25살이 넘어가는 순간 잘 안 팔린다는 얘기다. 젠더 감수성이 높아진 요즘 같은 때엔 상상도 할 수 없는 성차별적 발언이다.

그래도 “요즘엔 연말연시에도 케이크 많이 산다” “숙성할수록 좋은 와인도 많다”며 받아치면 그만이었다. 현실이 그랬기 때문이다. 25살에 취업도 힘든 상황에서 결혼을 꿈꾸는 이가 있을 리 만무했다. 너무 이른 결혼은 오히려 숱한 기회비용을 포기해야 하는 안타까운 선택에 가까웠다.

하지만 35살을 맞닥뜨리는 것은 달랐다. 사회적 나이를 연장할 순 있어도 타고난 생물학적 나이를 바꿀 수는 없는 탓이다. 어려 보이는 것과 어린 것은 확연히 다른 얘기였다. 10대를 고스란히 대입에 바치고, 20대를 온전히 취업에 쏟아야 하는 시대에 30대마저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없다니 얼마나 슬픈 일인가.

차병원그룹에서 해당 시술을 받는 사람이 2013년 23명에서 2017년 288명으로 늘었다는 걸 보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올해 합계 출산율은 역대 최저치를 기록해 1.0명 미만으로 떨어진 반면 냉동 난자 시술은 5년 새 12배 증가했다.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각기 다른 이유로 보류할 수밖에 없는 고민의 흔적들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람마다 가장 좋은 때는 따로 있다고 믿는다면 너무 순진한 걸까. 고령 임신에 대비해 난자 15개를 냉동해뒀지만, 자연임신과 출산에 성공한 배우 함소원(42)처럼 말이다. 지금을 넘기고 나면 또다시 새로운  ‘적령기’가 등장해 괴롭힐 텐데 그럴 바엔 내게 맞는 ‘적령기’를 찾는 게 더 현명하지 않을까 싶다.

민경원 대중문화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