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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약으로 철새 잡으면 징역 2년"…엄포에도 적발은 못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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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군산시 금강철새조망대 인근에 떼지어 먹이를 찾고 있는 가창오리. 겨울 철새 중에서 농약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종류다. [뉴스1]

전북 군산시 금강철새조망대 인근에 떼지어 먹이를 찾고 있는 가창오리. 겨울 철새 중에서 농약 피해를 가장 많이 보는 종류다. [뉴스1]

지난 2월 21일 충남 당진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으로 보호를 받는 가창오리 245마리가 떼죽음 당한 채 발견됐다.
3월 6일에도 당진에서는 가창오리 150마리와 청둥오리 17마리가 죽은 채 발견됐다.

죽은 청둥오리의 내장에서는 농약인 카보퓨란(Carbofuran)이 최고 408ppm까지 검출됐다.
영국 작물생산위원회(BCPC)에서는 카보퓨란의 치사량을 체중 1㎏당 2.5~5ppm 정도로 보고 있다.

또 지난 4일에도 경남 창원 주남저수지에서는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큰고니 7마리가 폐사했다.
큰고니 몸에서는 터부포스(Terbufos)라는 농약이 최고 480ppm이나 검출됐다.

해마다 겨울 철새 도래지에서 농약에 중독된 새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환경부는 올 한 해 전국에서 총 62건의 야생조류 집단 폐사(동일 지역에서 2마리 이상 폐사)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했으며, 폐사 원인을 분석한 28건 중 68%인 19건(1000마리 폐사)이 농약과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25일 밝혔다.

나머지 9건의 경우 각 1~15마리가 폐사했으며, 농약 성분이나 조류인플루엔자(AI) 바이러스는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다른 질병이나 굶주림, 사고 등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됐다.

농약이 검출된 19건에서는 살충제 등으로 사용되는 카보퓨란·펜치온(Fenthion) 등 농약 성분 13종이 검출됐다.
농약은 주로 폐사한 야생조류의 위 내용물(볍씨 등)과 간에서 검출됐다.

농약 중독 폐사의 경우 철새가 주로 도래하는 겨울철에 집중적으로 발생하는데, 올해도 1~3월에 발생한 것이 17건이었다.

농약 중독으로 폐사한 야생조류 가운데 철새는 가창오리(56%)·떼까마귀(8.6%)·청둥오리(8.5%)·흰뺨검둥오리(8.3%) 등이 많았다.
텃새 중에서는 직박구리(6.9%)·까마귀(3.4%)·비둘기류(2.9%)의 피해가 컸다.

판문점 대성동 마을에서 죽거나 빈사상태로 발견된 독수리. 농약이 묻은 볍씨를 뿌릴 경우 철새가 죽을 뿐만 아니라 그 사체를 먹은 독수리까지도 피해를 보게 된다. [중앙포토]

판문점 대성동 마을에서 죽거나 빈사상태로 발견된 독수리. 농약이 묻은 볍씨를 뿌릴 경우 철새가 죽을 뿐만 아니라 그 사체를 먹은 독수리까지도 피해를 보게 된다. [중앙포토]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농약으로 인한 야생조류 집단 폐사는 직접 중독돼 죽는 개체뿐만 아니라 독수리 등 포식자가 농약에 오염된 사체를 섭취하면서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농약 살포 발생지역이나 발생 가능성이 있는 주요 철새 도래지에 안내표시판이나 현수막을 설치하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관련 기관에 책자를 비치해 야생 조류에 대해 농약·독극물을 살포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홍보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환경부는 내년 3월까지 철새 도래지 주변 등에서 농약·유독물 살포 행위에 대한 감시 활동 강화하기로 했다.

적발되면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2년 이하의 징역을 살거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야 한다.
특히, 멸종위기 야생생물을 죽게 했을 경우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30여 년 전인 1980년대에도 충남 지역에서 겨울철새가 농약에 중독돼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중앙포토]

30여 년 전인 1980년대에도 충남 지역에서 겨울철새가 농약에 중독돼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중앙포토]

하지만 이 같은 환경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최근 농약 살포로 적발된 사례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농약 살포를 차단하고, 살포자를 적발하기 위해 도래지 주변에 감시카메라 등을 설치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관계자는 "지방환경청과 지자체가 함께 단속반을 운영하면서 철새 도래지 주변에서 농약 오염이 의심되는 볍씨를 수거하는 등 감시를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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