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3년 9월 제정 이후 사회·경제·문화의 급속한 변화속에서도 거의 손질하지 않았던 형법이 36년만에 큰 수술을 받게 된다. 85년 6월이래 3년 10개월을 끌어온 법무부의 형사법 개정작업은 형사법 개정특별 심의회의 조문별 심의를 마치고 조문화 작업과 공청회만을 남긴 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이번 개정에는 형법·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교통사고 처리특례법·사회보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법·도로교통법 등 10여개 형사법이 포함돼 있고 거의 전조문이 망라돼 있어 질·양에 있어 형사법에 대한 「제2의 제정」이라 불릴 만하다.
법무부는 당초 개정내용 못지않게 개정절차의 공정성도 중요하다고 판단, 30여명의 학자·법조인이 참여한 심의회의를 자주 여는 등 「모양 갖추기」에도 신경을 썼다.
더욱이 일본 등 선진국의 형사법 개정이 수십년 걸렸음에 비해 우리는 4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됐음을 감안, 개정작업이 졸속에 흐르지 않도록 다양한 의견수렴에 노력해 왔다.
◇개정연혁=법무부는 85년 6월 1차 형사법 개정특별 심의회 전체회의를 열어 개정작업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12월 개정 기본방향을 확정했다.
이후 형법총칙, 개인법익, 국가·사회법익의 3분야로 나눠 1백83개 조목에 대해 76회의 심의회의와 32회의 자료작성 회의, 4회의 전체회의를 가진 끝에 이번에 형사법 개정요정을 마련했다.
법무부는 3월초부터 조문화 작업에 나서 7월까지 이를 마치고 공청회를 거쳐 형법 개정안을 확정한 뒤 올 정기국회에 제출, 통과시켜 시행할 방침이다.
◇개정방향 및 원칙=이번 개정은 급속한 산업화와 현대화에 따른 신종범죄에 대한 효과적인 대응과 무질서한 특별법 체계의 정비에 주안점이 두어졌다.
법무부는 형사법 개정에는▲인간의 가치와 평등권·환경권의 보장▲사회 변화에 따른 법죄화·비범죄화의 고려▲형벌제도 개선등의 원칙이 반영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조문에 구체화된 개정방향은▲인신에 대한 기본권 보장 강화▲신종범죄에 대비한 조문신설▲실효성과 타당성이 없거나 사문화된 일부 법조문의 폐지▲형사특별법의 형법 편입과 사형조항의 축소▲성범죄의 처벌 강화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사회보호법의 일부조항에 대해 개·폐 및 형법편입 문제도 다뤘으나 대부분 현행규정을 유지하기로 의견을 모아 이번 개정에는 거의 포함시키지 않았다.
<신설>
▲죄형법정주의의 명문화=헌법에는 이 원칙이 들어 있으나 형법에는 없었는데 이 조항은 형법의 대원칙이기 때문에 형법 모두 (모두)에 명기하기로 했다. 이는 형법의 인권보장 측면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선언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특수상해죄=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상해죄를 범한 때에는 행위방법의 위험성에 비추어 가중 처벌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죄 3조1항 「집단폭행」 조항은 폐지하고 형법에 특수상해죄를 신설했다.
▲도주 운전자의 가중처벌=도주 운전자는 죄질이 불량하므로 형법에 가중처벌 규정을 신설하고 현행특가법·도로교통법의 규정은 폐지한다. 도로 교통법은 원활한 교통의 확보를 위한 법률에 불과하므로 사람을 사상(사상)하고 도주하거나 도주하여 사상에 이르게 한 경우를 형법에 규정했다.
▲인질에 의한 강요죄=사람을 체포·감금, 또는 약취·유인한 후에 그를 인질로 삼아 체포를 면하려 하거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예가 발생하고 있고 이를 위하여 인질을 살해하는 경우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 인질에 의한 상해죄와 살인 치사죄를 신설했다.
인질의 생명보호를 위해 인질을 해치거나 치사·살해하면 형을 가중토록 하고 인질을 석방하면 형을 감경토록 탄력규정을 두었다.
▲특수강간죄=현장에서 2인 이상이 공동하거나 또는 흉기등을 휴대하여 간음한 경우 보통강간에 비해 형에 차등을 두어 가중하는 규정을 두기로 하고 윤간도 엄벌키로 했다.
▲컴퓨터에 의한 업무방해죄=컴퓨터 시스팀을 혼란시키거나 컴퓨터에 수록된 자료를 변경·말소·복사함으로써 업무 방해하는 경우를 처벌한다. 이는 컴퓨터를 이용하는 기업이 증가하고 있고 이에 의한 업무방해의 피해는 결코 방치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컴퓨터 악용죄=컴퓨터의 공정증서 원본 부실 기록. 공용죄를 새로 만들고 컴퓨터 이용 사기죄를 신설, 전자적 기록 손괴죄를 처벌키로 했다. 이에는 기술적 기록의 위조·변조·허위작성·부정행사도 포함시켰다. 다만 컴퓨터의 특색을 살리기 위해 범위를 과도하게 넓히지는 않았다.
▲대화비밀 침해죄=공개되지 아니한 개인의 대화를 녹음하거나 기계적 수단에 의해 도청하는 것을 처벌한다. 제3자가 타인들의 대화를 녹음, 또는 도청하는 경우도 이에 포함시켰다.
▲기업비밀 침해죄=기업의 임직원이 기업의 생산방법, 기타 기술상의 비밀에 관한 비밀·경영 전략등을 누설하는 것을 금하도록 규정했다. 산업비밀을 보호할 필요가 있기는 하나 비밀의 범위를 무제한 확대하면 바람직하지 않으므로 좁게 규정했다.
이와 함께 기업비밀 탐지죄도 신설, 피해자의 처벌요구가 있을 경우 벌하게 했다. 다만 비밀의 공표나 이용이 내용과 형식으로 보아 공공의 이익, 또는 적법한 개인적 이익에 의하여 정당화된 때에는 처벌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신체 수색죄=수사기관 종사자등이 영장이나 당사자의 동의없이 신체나 소지품등을 수색하는 것을 처벌한다. 이 규정을 현행 형법 321조 「주거수색」에 추가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별도의 조항을 만들어 명기키로 했다.
▲자동차 등 불법 사용죄=자동차와 자가운전자의 증가에 따라 자동차의 불법무단 사용을 처벌할 특별규정을 마련했다. 법해석상으로 자동차 불법 사용죄를 절도죄로 처벌할 수 있으나 절도죄는 불법 영득의 의사가 필요하나 자동차 무단이용자는 현실적으로 불법 영득 의사가 있다고 할 수 없으므로 절도죄로 처벌하기 어렵다.
즉 주인의 동의없이 남의 자동차·항공기를 일시적으로 사용한 자를 벌하기 위한 별도규정을 만들었다.
▲강도강간 치사죄=가정파괴사범을 엄벌할 필요가 있으며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특수공갈죄=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공갈죄를 범하는 경우에 저촉되도록 했다.
공갈죄도 폭력·협박을 수단으로 하기 때문에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3조는 폐지하고 형법에 별도항을 새로 만드는 것이 타당하다고 결론지었다.
▲진술강요죄=공무원의 직무에 관한 죄의 장(장)에 신설하며 수사관이 고문·폭행·협박등을 통해 진술을 강요하면 처벌하며 진술을 강요키 위해 남을 신체적으로 악용하거나 폭력등으로 정신적인 괴로움을 주면 저촉된다. 형사소송 절차의 적법성을 유지키 위한 조항이다.
▲공해죄=고도산업 사회에서 중대한 사회문제인 공해문제를 형법으로 처벌해야 하며 헌법상의 환경권 보장이념을 구현하기 위해 신설했다. 이는 공해대책이라는 정책적 관점에서 뿐 아니라 국민의 법의식에 비추어 공해범죄를 억제키 위한 것이다.
공해물질의 방류행위로써 독물, 기타 건강에 유해한 물질을 고의·과실에 의해 방출·폐기해 대기와 토양등을 오염시켜 공중의 건강에 위험을 일으키는 행위를 처벌한다. 다만 일반형법 이론에 비추어 무리없는 기본유형만 입법하기로 했다. <김석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