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망원렌즈 무장한 목사, 아파트 지붕위 올라간 사연

중앙일보

입력 2018.12.24 01:00

업데이트 2018.12.24 17:53

최병성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경기도 용인 상하동 난개발 현장. 야산의 좁은 등산로만 겨우 남겨놓고 양쪽을 모두 깎아 개발했다. [사진 최병성]

최병성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경기도 용인 상하동 난개발 현장. 야산의 좁은 등산로만 겨우 남겨놓고 양쪽을 모두 깎아 개발했다. [사진 최병성]

지난 17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상하동. 추위는 가셨지만 군데군데 잔설이 남아있었다.

환경운동가 최병성 목사

상하동을 관통하는 중부대로 서쪽의 양지바른 산기슭에는 크고 작은 빌라와 주택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뒤편 북쪽으로는 나지막한 야산과 숲이 마을을 아늑하게 감싸고 있었다.

하지만 큰 도로에서 벗어나 마을로 들어서는 주택가 골목길은 가팔랐고, 꼬불꼬불하고 좁아 자동차가 마주 지나기도 어려웠다.

마을 뒤 야산을 오르자 나무들 사이로 건물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용인 상하동의 주택가. 가파른 경사로 인해 눈이 쌓이면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기 어려워 보였다. 건너편에서는 숲을 베어내고 택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강찬수 기자

용인 상하동의 주택가. 가파른 경사로 인해 눈이 쌓이면 사람도 자동차도 다니기 어려워 보였다. 건너편에서는 숲을 베어내고 택지를 조성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강찬수 기자

능선 반대편에도 주택 수백 채의 마을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능선 위의 숲은 아래에서 본 것과는 달리 등산로를 중심으로 폭이 30여m에 불과했다.

등산로 반대편 주택가 골목길은 남쪽 마을보다 훨씬 더 가팔랐다.
경사가 30도가 넘어 눈이라도 쌓이면 차는 물론 사람도 다니기 쉽지 않아 보였다.

등산로만 겨우 남겨 놓은 택지개발 
용인 상하동 지역의 난개발 실태를 둘러보는 최병성 목사. 등산로 바로 옆까지 건물이 들어섰다. 강찬수 기자

용인 상하동 지역의 난개발 실태를 둘러보는 최병성 목사. 등산로 바로 옆까지 건물이 들어섰다. 강찬수 기자

주택가 옆에는 군데군데 산을 파헤친 뒤 공사를 중단한 곳도 눈에 띄었다.

상하 2통 마을회관 옆 공사장에서 만난 마을 주민은 “지난여름까지 공사하다 중단했는데 업체와 몇 달째 연락이 잘 안 된다”며 “여름에 폭우라도 쏟아지면 무너질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동행한 최병성(55) 목사는 “용인 지역은 그린벨트로 묶이지도 않고, 경사도 규제가 크게 완화된 바람에 난개발이 심하다”며 “건축업자들이 도로를 내지 않으려고 30세대 미만의 규모로 나눠서 짓는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드론(무인기)을 띄워 촬영한 사진을 보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알 수 있다”고 덧붙였다.

사진을 보니 정말 산등성이 일부만 마지못해 남겨두고 집을 지을 수 있는 곳에는 다 집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 목사는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일도 계속하고 있다.

용인 난개발 실태를 둘러보는 최병성 목사. 지난여름 파헤쳐놓고는 방치하고 있어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도 우려된다. 강찬수 기자

용인 난개발 실태를 둘러보는 최병성 목사. 지난여름 파헤쳐놓고는 방치하고 있어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도 우려된다. 강찬수 기자

용인 난개발특위 위원장으로 활약 
자신이 촬영에 사용하는 드론을 들고 있는 최병성 목사. 강찬수 기자

자신이 촬영에 사용하는 드론을 들고 있는 최병성 목사. 강찬수 기자

최 목사는 지난 8월부터 용인시 난개발조사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백군기 시장이 당선되면서 만든 이 위원회에는 11명의 위원이 참가하고 있다.
최 목사는 이곳에 상근하다시피 하지만 회의 참석 수당 외에는 별다른 지원이 없다.

용인에서 난개발이 심해진 것은 2015년 5월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이유로 도시계획조례를 개정하면서부터다.

기흥구에서는 경사도 17.5도 이하에서만 개발행위가 가능했는데, 21도까지 개발이 가능하게 됐다. 처인구는 20도 이하에서 25도 이하로 완화됐다.

경사도 규제가 완화되면서 3~15m가 넘는 축대 위에 세워진 집들도 등장했다. 지진·폭우 등 재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로 인해 용인시의 개발 행위 허가 면적은 2014년 224만㎡에서 2015년 383만㎡, 2016년 392만㎡, 2017년 409만㎡으로 급증했다.

최병성 용인시 난개발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용인시청 14층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찬수 기자

최병성 용인시 난개발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 용인시청 14층에 있는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강찬수 기자

최 목사는 1994년 강원도 영월에서 목회를 시작했는데, 영월 서강변에 쓰레기 매립지가 들어서는 것을 주민과 함께 막아냈다.

90년대 후반에는 영월 등지의 시멘트업체에서 소성로에 유해 폐기물을 넣고 태우는 것을 우연히 알게 돼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에 반대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환경운동가로 변신했다.

최 목사가 용인 난개발 문제 해결에 뛰어든 것은 4년 전 안양에서 용인 기흥구 지곡동으로 이사하면서부터다.

최 목사가 이사한 아파트와 지곡초등학교 바로 옆에 콘크리트 혼화제(콘크리트가 잘 굳지 않도록, 혹은 빨리 굳도록 하기 위해 첨가하는 화학물질) 연구소가 들어서게 되자 주민들은 유해물질이 든 폐수가 나온다며 반발했다.

학교 앞 연구소와 4년째 싸움
시멘트 혼화제를 개발하는 연구소 공사가 시작되기 전 용인 지곡초등학교 주변 모습. [사진 최병성]

시멘트 혼화제를 개발하는 연구소 공사가 시작되기 전 용인 지곡초등학교 주변 모습. [사진 최병성]

연구소 공사가 시작된 이후의 용인 지곡초등학교 주변. 학교 앞 울창했던 숲이 사라졌다. [사진 최병성]

연구소 공사가 시작된 이후의 용인 지곡초등학교 주변. 학교 앞 울창했던 숲이 사라졌다. [사진 최병성]

용인시는 2014년 10월 연구소 건축을 허가했다가 주민 반발이 심해지자 2016년 4월 폐수 배출을 이유로 건축 허가를 취소했다.

업체(실크로드시엔티) 측에서는 행정심판을 청구해 경기도 행정심판위원회로부터 용인시의 건축허가 취소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정을 받아냈다.

이에 주민들은 다시 경기도 행정심판위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 지난 10월 말 수원지법 행정2부로부터 승소 판결을 받아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연구소에서 발생하는 폐수는 하루 0.1㎥ 이상으로 ‘수질 및 수생태계 보전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폐수배출시설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보전녹지·자연녹지에는 들어설 수 없는 시설이라는 것이다.

설계를 변경해 실험실 규모를 줄였기 때문에 폐수 배출이 거의 없다는 업체 측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이다.

이 같은 판결을 얻어낸 배경에는 드론과 600㎜ 망원렌즈로 무장한 최 목사가 있었다.

최 목사는 “연구소 공사장 위로 드론을 띄워 당초 업체 측이 제시한 설계도대로 수중양생조·항온항습실 등의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최 목사는 또 “지난봄 내내 아파트 19층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망원카메라로 공사장 작업자가 들고 있는 설계도를 촬영했는데, 그 설계도 역시 당초 설계도와 동일했다”며 “드론과 망원카메라로 촬영한 사진을 법정에서 하나하나 보여주며 재판부를 설득했던 게 주효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19층 아파트 지붕 위에서 최병성 목사가 지곡초 옆(왼쪽)에 들어서고 있는 연구소 공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 목사는 지난 봄 이곳 아찔한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사장 작업자가 들고 있는 설계도를 망원렌즈 카메라로 촬영했다. 강찬수 기자

19층 아파트 지붕 위에서 최병성 목사가 지곡초 옆(왼쪽)에 들어서고 있는 연구소 공사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최 목사는 지난 봄 이곳 아찔한 지붕 위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공사장 작업자가 들고 있는 설계도를 망원렌즈 카메라로 촬영했다. 강찬수 기자

시멘트 혼화제 연구소 설계도와 최병성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연구소 공사 현장. 설계도대로 시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최병성]

시멘트 혼화제 연구소 설계도와 최병성 목사가 드론으로 촬영한 연구소 공사 현장. 설계도대로 시공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진 최병성]

시멘트 혼화제 공사장의 작업자가 들고 있는 도면을 최병성 목사가 망원렌즈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촬영한 사진(윗쪽)은 연구소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진 최병성]

시멘트 혼화제 공사장의 작업자가 들고 있는 도면을 최병성 목사가 망원렌즈 카메라로 촬영했는데, 촬영한 사진(윗쪽)은 연구소 설계 도면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진 최병성]

용인시는 수원지법의 판결에 따라 업체 측에 공사 중지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업체 측은 최근 항소했다.
업체 측 관계자는 “폐수가 거의 배출되지 않고 배출되는 것도 전량 다른 곳으로 옮겨 위탁 처리할 것이기 때문에 학교 어린이나 아파트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며 “(설계도대로 시공해 공간에 벽이 있지만) 벽을 없애야만 실험실을 도서관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 업체는 최 목사를 명예훼손과 업무 방해 혐의로 고발했고, 검찰은 그에게 5년 징역을 구형했으나,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이 났다.
하지만 검찰은 대법원에 상고했다.
최 목사는 "항소심에서 검찰이 아무런 추가 증거도 제시하지 않았고, 그래서 패소하고서는 다시 상고했다"고 말했다.

한편, 용인시 난개발특별위는 내년 2월까지 활동을 계속하면서 난개발 종류별로 원인과 문제점, 대책 등을 담은 ‘난개발 백서’를 작성할 계획이다.

최 목사는 “백서를 작성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례를 다시 개정하도록 하는 등 지속적인 시민 감시가 필요하다”며 “난개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중앙정부도 미비한 법을 보완하는 등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용인 수지구 광교산 난개발 현장. [사진 최병성]

용인 수지구 광교산 난개발 현장. [사진 최병성]

그는 지난달 환경재단으로부터 '2018 세상을 밝게 만든 사람들'에 선정돼 상을 받았다.

용인=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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