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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자영업자 100만명 폐업…최저임금 악몽 끝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엄마와 아빠가 자녀에게 하나의 일을 두고 다른 말을 하면 어떻게 될까. 자녀는 혼란스러운 메시지에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하게 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민간의 일이 이런데 나랏일은 두말해 무엇하랴. 일관성 있는 메시지를 기업과 국민, 시장에 내놓아야 경제가 굴러간다. 그렇지 않고 끝없이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기업은 혼선을 피하기 어렵다.

대통령 “최저임금 실태 조사”에 맞춰 #정부 노동정책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최근 최저임금을 둘러싼 엇박자가 대표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1일 고용노동부를 찾아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너무 빠르냐”면서 실태조사를 지시했다. 최저임금이 내년까지 불과 2년 만에 29% 인상률을 기록하게 되면서 경제 현장에 미칠 충격을 살펴보라는 취지였다. 그 충격은 사실 더 확인해 볼 필요도 없다. 690만 자영업자들이 급격한 인건비 증가에 비명을 질러대고, 일용직·임시직 단시간 근로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의 후폭풍으로 고용 참사를 겪고 있다. 이들의 비명은 올해 사상 처음으로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100만 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으로 귀결되고 있다. 개업 대비 폐업 수를 나타내는 자영업 폐업률은 90%에 육박할 전망이라고 한다.

이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것은 정부가 지난 20일 차관회의를 열어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을 확정했다는 소식이다. 개정안의 골자는 월급제 근로자의 최저임금 위반 여부를 다툴 때 시급 환산을 위한 기준시간에 모든 유급휴일을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임금에서 수당이 차지하는 부분이 큰 대기업도 충격을 피할 수 없다.

정부안이 강행되면 연봉 5000만원 근로자도 최저임금 위반에 걸리는 코미디가 벌어진다는 얘기다. 소상공인연합회·경영자총협회 등 17개 경제단체가 한목소리로 시행령 개정안에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한 이유다. 이런 현장의 목소리를 받아들이라는 것이 대통령의 속도 점검 지시였을 텐데 정부는 차관회의에서 다른 행동을 한 것이다.

정부 경제사령탑인 홍남기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장에서 문제 제기가 많아지자 오늘 오전 국무회의를 하루 앞두고서야 주요 경제장관회의를 소집해 이 문제를 점검했다. 비공개회의에서 어떻게 조율됐든 정부는 오늘 국무회의를 열어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안을 의결 안건에 올리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문 대통령 발언과 정책 결정의 일관성이다. 문 대통령은 최근 “정부가 산업계의 애로사항을 제대로 들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 발언을 헛말로 여기지 않는다면 정부는 경제 단체의 애로사항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무리한 정책을 멈춰야 한다. 나아가 근로시간 단축 계도기간을 내년 상반기로 연장한다는 정부 방침도 하루속히 공식화해야 한다.

노동계의 눈치나 살피면서 차일피일 미뤄서는 정부 내 엇박자 논란을 해소할 수 없다. 기업과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도 일관된 메시지와 실천이 필요한 때다. 그래야 최저임금 악몽을 끝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