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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패딩이 얼어붙었다…"날이 좋아서, 끝물이라서"

중앙일보

입력

롱패딩을 입은 청소년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뉴스1]

롱패딩을 입은 청소년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뉴스1]

회사원 김모(46)씨는 최근 롱패딩을 사려고 서너 차례 매장을 찾았다가 계산대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 지난해에는 두 자녀에게 롱패딩을 사 준 그였지만 올해는 각종 생필품값이 오르고 있는 데다 회사 사정도 여유가 없어서 수십만 원짜리 롱패딩을 사기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김씨는 "날씨도 그리 춥지 않아서 예전에 입던 롱코트나 패딩으로 (롱패딩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폭발적 인기를 끌던 롱패딩을 비롯한 다운재킷 소비 추세가 꺾였다. 23일 아웃도어 업계에 따르면 다운재킷 성수기인 최근 두 달(11월 1일~12월 16일) 동안 9개(노스페이스·네파·K2·블랙야크·아이더·디스커버리·코오롱스포츠·컬럼비아·라푸마) 브랜드의 총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감소했다. 특히 다운재킷 시즌에 돌입하는 11월 매출은 지난해보다 20% 떨어졌다. 또 9개 아웃도어 브랜드의 올해(1월 1일~12월 16일)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 감소해 최근 수년 동안 계속해서 하락세를 면치 못했다.

올 겨울 롱패딩 제목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끈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카이만'.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올 겨울 롱패딩 제목 중에서 가장 주목을 끈 내셔널 지오그래픽의 '카이만'. [사진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운재킷의 부진은 롱패딩 소비가 지난해만큼 폭발적으로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지난해 '롱패딩 열풍'이 지속할 것으로 예측하고 올해 생산량을 대거 늘린 것도 한몫했다. 아웃도어·스포츠 브랜드가 올해 생산한 롱패딩은  200만 장 이상으로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었다.

이종훈 디스커버리 전무는 "11월엔 날이 따뜻해 롱패딩을 팔기엔 어려운 날씨였다. 12월에 다소 회복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해엔 모든 제품이 완판을 기록할 정도였는데, 올핸 12월 말까지 판매율이 65%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디스커버리는 올해 70만장의 다운재킷을 생산했으며, 이 중 롱패딩은 60만장이다. 지난해(29만장)보다 두배 늘어난 것으로 전체 의류 브랜드 중에서 가장 많다.

생산량을 대거 늘린 점도 독이 됐다. 이 전무는 "올해 다운(다운재킷의 충전재) 공급량이 지난해보다 약 30% 늘었다"며 "공급 과잉으로 소비자가 '식상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브랜드는 '숏 패딩'에 올인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이 전무는 "올해 숏패딩에 크게 베팅한 브랜드 중 일부는 고전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의 주부 정미진(44) 씨는 "올겨울 '아이들 패딩으로 뭘 살까' 고민하는 학부모는 많지 않다"며 "일부 유행에 민감한 아이는 롱패딩 대신 숏패딩이나 '뽀글이(양털 재킷)'로 갈아타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불안한 미래가 소비자의 지갑을 닫게 했다는 분석도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난해 이맘때엔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잘 진행되면 주머니 사정도 나아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었다"며 또 "30년 만에 치르는 평창 올림픽과 맞물려 소비 상승 작용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올해 들어 젊은 층은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울 만큼 일자리가 줄어들고, 임호화폐 폭락 등 전반적인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다"고 말했다.

10만원대 저가 롱패딩의 수요가 늘어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밀레 관계자는 "40만원대 고가 롱패딩의 판매율은 올해 말까지 60%대를 기록할 것으로 보이지만, 10만원대 롱패딩의 판매율은 이보다 훨씬 높다"고 말했다. 이달 들어 위메프가 아디다스 롱패딩을 9만원 대에 내놓는 등 저가 롱패팅 추세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다운재킷 매출은 2000년대 이후 겨울 시즌 소비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지표로 자리 잡았다. 모든 의류 브랜드가 다운재킷을 내놓는 데다 두세달이라는 짧은 기간에 전격적으로 소비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운재킷의 비중은 전체의 40%를 차지한다. 아웃도어 시장 규모를 4조5000억원(삼성패션연구소 추정치)으로 치자면 다운재킷의 판매액은 1조8000억원이 되는 셈이다. 캐주얼·여성 의류 등 전체 의류까지 합치면 롱패딩 비중은 지난해 20~30%에서 올해 50%로 높아졌다.

업계는 고민에 빠졌다. 2019년 겨울 상품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네파 이선효 대표는 "작년 이맘때는 롱패딩 물량을 어느 정도로 늘려야 할지 고민했다면 지금은 내년에도 롱패딩을 주력으로 끌고 가야 할 지를 결정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롱패딩은 비싼 데다 필수재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다"며 "업체는 지난해 10~20대에 이어 올해 30~40대를 롱패딩 소비층으로 삼았지만, 경기 불황으로 이 계층의 쇼핑 욕심이 예전만 같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아주 고급스러운 프리미엄 제품군이나 가성비가 좋은 값싼 아이템으로 양분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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