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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활자, 프리미엄 서점…시니어 눈높이 맞춘 출판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정근의 시니어비즈(16)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클릭과 신용카드 번호만으로 쉽게 저렴하게 책을 사는 시대이다. 하지만 서점을 방문해 책 향기 속에서 직접 만지고 원하는 책을 고르는 과정을 경험한 시니어는 책 속에 담긴 지식과 정보 이상의 값진 습관과 경험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있다. 50~60대 뉴시니어 독자가 최근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계에 새로운 활력소가 될 수 있을까. 시니어 독자를 잡기 위해 변화하고 있는 출판업을 살펴보고자 한다.

어느 실버 케어 센터에서 돋보기를 쓰고도 얼굴 가까이 동화책을 가져와 읽는 노인의 모습. 노안, 당뇨, 백내장 등으로 시력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니어가 늘자 큰 활자 책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중앙포토]

어느 실버 케어 센터에서 돋보기를 쓰고도 얼굴 가까이 동화책을 가져와 읽는 노인의 모습. 노안, 당뇨, 백내장 등으로 시력에 어려움을 겪게 되는 시니어가 늘자 큰 활자 책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중앙포토]

먼저 고령층을 위한 큰 활자를 가진 서적이다. 이제는 ‘큰 활자 책을 읽으면 어린이, 작은 활자 책을 읽으면 어른’이라는 이분법적 생각이 없어져야 할 때가 도래한 것 같다. 과거에는 활자체가 큰 폰트인 출판물 시장은 장애인과 일부 노인층만을 위한 틈새시장에 불과하였다.

하지만 2000년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작은 글씨, 가까이 있는 것을 보는 데 어려움을 겪는 베이비부머를 위한 큰활자책(Large Print Book)이 인기를 끌고 있다.

출판계의 대세로 떠오른 큰 활자 책

미국의 경우 2009년 전체인구의 약 24.6%를 차지하는 1946~1964년생 가운데 가장 젊은 베이비부머 세대가 45세에 진입하면서 큰 활자 책 시장이 블루오션으로 떠올랐다. 노안 증상을 보이거나 당뇨나 백내장 등으로 시력에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시니어가 큰 활자 책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미 2018년 아마존에서는 7만 여권의 큰 활자 책이 판매되고 있으며 미국, 스웨덴, 덴마크 등의 공공도서관에는 큰 글자도서 서가가 따로 마련될 정도다.

그렇다고 해서 큰 활자 책에 대한 수요가 시니어만 있는 것은 아니다. 큰 활자 책은 요리할 때나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을 뛸 때 책을 읽는 사람과 컴퓨터 및 스마트기기를 장시간 사용하는 젊은 층에도 인기를 얻고 있다. 작은 전자 활자에 익숙한 젊은 세대도 책을 읽을 때만큼은 조금은 편안한 분위기에서 읽고 싶어 하는 것이다.

대활자본 도서(왼쪽)와 일반도서(오른쪽).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주도로 노인 대상 독서 프로그램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활자본 도서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1]

대활자본 도서(왼쪽)와 일반도서(오른쪽).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주도로 노인 대상 독서 프로그램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대활자본 도서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뉴스1]

우리나라의 경우 정부 주도로 노인 대상 독서 프로그램의 운영을 활성화하기 위해 2009년부터 대활자본 도서보급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매년 21~22종의 대활자본 도서를 제작하거나 구매해 전국 공공도서관에 보급하고 있다. 올해엔 시니어 선호도서 22종, 총 2만3000여 권을 전국 1058개 공공도서관에 배포했다.

고령화로 출판 관련 콘텐츠도 변화하고 있다. 콘텐트도 시니어의 이야기나 시니어가 관심을 가지는  내용이 많아지는 추세이다. 미국에서는 베이비부머를 위한 ‘부머 서적(Boomer Lit)’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생기기도 했다. 부머 서적은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것뿐 아니라 은퇴, 황혼이혼, 사별 등 삶의 새로운 변화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예를 들면 정년퇴직과 부인과의 사별을 다룬 루이스 비글리의 소설 ‘어바웃 슈미트(About Schmidt)’가 대표적인 부머서적이다. 이 책은 1997년 출판 이후 2002년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관련 서적으로 2015년 한국어로 번역된 다니엘 페나크의 『몸의 일기』를 들 수 있다. 이 작품은 한 남자가 10대에서 80대가 되기까지 몸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일을 일기 형식으로 작성한 소설이다. 몸속 증상을 상세하게 기록함으로써 한 사람의 일대기를 엿볼 수 있어 노화로 인해 몸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시니어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베스트 셀러 된 죽음에 관한 책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 또한 2014년 뉴욕타임스 31주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할 정도로 시니어의 큰 관심을 받은 책이다. 의사이자 철학자인 아툴 가완디가 쓴 이 책의 원제는『Be moral』로, ‘웰다잉(well-being)’의 관점에서 생을 바라보고 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살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며, 죽음을 삶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를 이 책은 잘 설명하고 있다. 이 외에도 최근에는 은퇴 전후 세대가 관심을 갖는 취미, 귀농, 재취업, 여행, 병간호 등과 고령화로 인한 사회문제도 출판계의 중요한 주제로 등장하고 있다.

도쿄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에 들어선 츠타야 서점 모습. 일본에서는 최근 독서와 문화를 즐기는 5~60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츠타야 서점은 서점, 음반 및 영상매장,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포토]

도쿄 다이칸야마 티사이트에 들어선 츠타야 서점 모습. 일본에서는 최근 독서와 문화를 즐기는 5~60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츠타야 서점은 서점, 음반 및 영상매장,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중앙포토]

세 번째는 프리미엄 서점의 등장이다. 일본에서는 최근 독서와 문화를 즐기는 50~60대를 대상으로 한 프리미엄 서점이 생겨나고 있다. 2012년 12월 5일 도쿄의 다이칸야마에 오픈한 츠타야 서점이 대표적이다. 널찍한 매장과 고급스러운 분위기, 독특한 콘셉트를 가진 50~60대 시니어 층 대상 서점이다. ‘숲속의 도서관’이라는 콘셉트를 내걸고 시니어 기호에 맞는 서점, 음반 및 영상매장, 카페 등 다양한 공간을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특이한 것은 일반서점에서 많이 판매하는 비즈니스나 처세술 등의 분야는 취급하지 않고 인문, 자동차·바이크, 손목시계, 잡지, 아트, 건축, 디자인, 요리, 여행 등 활동적인 시니어가 관심을 가질만한 아홉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성공을 위한 독서가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독서를 추구하는 시니어의 특성을 반영했다.

서점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또 북 소믈리에로 불리는 테마별 매니저가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맛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설명해주기도 한다. 츠타야 서점은 서적 이외에도 활동적인 시니어의 관심과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음악 감상, 영화 상영, 예술품 전시까지 하고 있어 복합문화공간의 기능도 하고 있다.

영상매장에는 다양한 장르의 영화 신작은 물론 국내외의 클래식한 작품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고, 음악 매장에서는 재즈·클래식·록 등 1960~80년대 음악도 구비돼 있다. 고령화와 함께 서점이 불황을 겪고 있는 가운데 츠타야 서점은 50~60대 프리미어 시니어의 지속적 사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의 독자층도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다. 20대 소비층이 갈수록 인터넷과 게임 및 영화에 더 집중하는 반면 출판업계는 고령화가 가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신규 고령층이 될 베이비부머 후반 세대, 즉 386세대는 청년기부터 독서에 많은 투자를 해왔다. 출판업계는 이들을 공략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할 때다.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성 변화는 출판산업 분야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정근 강남대학교 실버산업학과 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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