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주한미군 철수 제동 건 매티스 퇴장…분담금에 영향 미칠 듯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15호 05면

미 국방장관 사퇴 후폭풍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 10월 말 백악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자리에 고개를 돌린 채 앉아 있다. 매티스 장관은 20일 사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왼쪽)이 지난 10월 말 백악관 브리핑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옆자리에 고개를 돌린 채 앉아 있다. 매티스 장관은 20일 사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올해 초 “주한미군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주둔하는 것”이라며 주한미군 철수를 막았던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이 지난 20일(현지시간) 사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철수를 결정하자 “마음에 맞는 국방장관과 일하라”며 사표를 던졌다. 이로써 지난 3월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과 이달 사임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에게 ‘바른말’을 했던 ‘어른들의 축’이 모두 트럼프의 곁을 떠나게 됐다.

“동맹 존중 않고 미국 국익 못 지켜” #트럼프의 시리아 철군에 반대 사임 #트럼프의 해외 미군 철수 도미노 #주한미군에 미칠 여파 관심 집중 #틸러슨 국무, 켈리 비서실장 이어 #‘어른의 축’사라져 불확실성 증대

뉴욕타임스·CNN 등에 따르면 매티스 국방장관은 이날 오후 백악관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리 작성한 2쪽 분량의 사퇴 서한을 들고 시리아 철수 번복을 설득했지만 퇴짜를 맞았다. 백악관에서 돌아온 그는 사퇴 서한 50부를 복사해 국방부 전체에 배포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직후 트윗에서 “매티스 장관이 내년 2월 말 퇴임한다”며 “새 국방장관을 곧 지명할 것”이라고 공개했다.

매티스 장관은 서한에서 “당신은 이 사안과 다른 주제에 견해가 더 잘 맞는 국방장관을 가질 권리가 있다”며 “나는 지금이 이 자리에서 물러날 적절한 시점이라고 믿는다”고 썼다. 또 “미국이 자유 세계에 필수불가결한 나라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강력한 동맹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며 “동맹을 존중하지 않고선 우리 이익을 수호하고 우리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퇴임 순간에도 그는 “동맹을 존중하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를 경고한 것이다.

올해 68세, 해병대 대장 출신인 매티스 장관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전장을 누벼 ‘수도사 전사’로 불린다. 2011~13년 중부사령관을 지낸 뒤 44년 군 생활을 마쳤다. 지난해 2월 2일 국방장관 취임 직후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매티스 장관은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2000여 명의 시리아 주둔 미군 철수를 발표하기 직전까지 전면 철수만은 막기 위해 애썼다. 그는 “이처럼 중요한 국가안보 정책을 갑자기 전환할 경우 시리아를 러시아와 이란의 영향력 아래 넘겨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공약으로 시리아 철군을 약속했고, 지난 4월에도 철군을 단행하려 했지만 “임무 완수를 위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국방부 주장에 마지못해 동의했다고 한다.

밥 우드워드의 『공포: 백악관의 트럼프』에 따르면 매티스 장관은 올해 초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 주둔에 35억 달러나 쓸 이유가 있느냐’며 철수를 주장하자 “미군 주둔은 3차 대전을 막기 위한 것”이라며 단호하게 막았다고 한다. 이런 매티스 장관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0월 CBS 방송에서 “나는 그가 일종의 민주당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 국방부는 미군의 시리아 철수가 2014년 이후 5년간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에서 동맹 관계를 이어온 쿠르드 민병대에 대한 배신이라고 반발했다. 쿠르드 민병대는 이미 IS로부터 탈환한 시리아 국토의 30%를 장악했고 북부에 쿠르드족 자치 지역을 보장받길 원했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쿠르드족은 분리주의 테러리스트”라며 이들에 대한 소탕 작전을 예고했다. 그러곤 지난 18일 미국이 터키에 35억 달러(약 4조원) 규모의 패트리엇-3 미사일 수출을 승인한 다음날 트럼프는 시리아 전면 철수를 발표했다.

트럼프의 도발적인 대북 언사나 즉흥적 정책을 막아오며 외교·안보 정책의 균형추 역할을 맡았던 어른들의 축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가 사라지면서 향후 대외 정책의 불확실성이 더욱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고립되고 불합리하고 불규칙적인 시점에 마지막으로 방 안에 있던 어른의 사임은 의원들과 동맹국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라며 “대통령 한 명만 남았는데 우리의 대통령은 적합한 인물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또 “매티스는 트럼프 행정부 정책의 안정성과 자제력을 높여온 영향력 있는 인사였다”며 “시리아 철군과 잠재적인 아프간 병력 감축 와중에 이뤄진 그의 사퇴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과 북한을 포함한 국제적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외교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주둔 미군 철수에 이어 한반도에서 평화 추진을 서두르고 유럽 부자 동맹국들에 막대한 방위비 분담금을 받아내려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트럼프의 해외 철수 도미노가 2만8500명이 주둔 중인 주한미군에도 여파가 미칠 것이란 전망이다.

한국 국방부 내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매티스 장관에 대해 “주한미군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에서 한국 같은 동맹국의 입장을 이해해 줬다”고 평가하며 “후임자로 그에 버금가는 인물이 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워싱턴=정효식 특파원, 서울=이근평 기자 jjpol@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