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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불행의 징후들, 그리고 저주 받은 나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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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호 35면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오민석 문학평론가 단국대 교수·영문학

영국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는 산업혁명이 할퀴고 간 황폐한 현실을 고통스레 통과하였다. 그는 유아 노동에 동원된 어린 굴뚝 청소부들의 울음이 타락한 교회를 섬찟하게 만드는 것을 보았으며, 젊은 창녀의 저주가 결혼 마차를 영구차로 만드는 것을 보았다. “만나는 얼굴마다” “비탄의 흔적”을 보았던 그는 누구보다 ‘징후’를 잘 읽어내는 시인이었다. 사람들은 그것을 ‘예언’이라 불렀지만, 징후는 예언이 아니라 ‘전조’이다. 그는 ‘순수의 전조들’이라는 시에서 “주인집 대문에서 굶어 죽은 개가 그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고 했다. 최근 프랑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란 조끼들의 시위는 심각한 빈부 격차와 불평등이 어떻게 한 국가의 균열을 초래할 수 있는지 잘 보여주는 징후다. 남유럽과 북아프리카의 여러 국가들이 또 다른 ‘조끼’들의 출현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자신들의 내부에 이미 드러나고 있는 불행의 징조들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몸이 분리된 채 사망한 한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끔찍한 사태는 그 자체 우리 사회의 심각하고도 불안한 징후이다. 이 사건에는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모순들이 중층적으로 겹쳐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경제 대국의 허울 아래 감추어진 짐승 같은 노동 현장, 비용 절감을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수많은 탈법 행위들, 사람보다 이윤을 더 중시하는 천박한 자본, 오로지 생계를 위해 죽음의 공포에 자신의 몸을 노출시켜야 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현실이 이 사태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삶의 향기 12/22

삶의 향기 12/22

문제는, 징후가 곧 다가올 현실의 불길한 예고라는 자각의 부재이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2010년 이후 서부발전소에서 이미 12명이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번 사태는 ‘전조’나 ‘징후’를 넘어 이미 반복되고 있는 ‘현실’이고, 그간 우리 사회가 비극의 다양한 징후들을 깡그리 무시해왔음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니 이제 우리 앞에는 얼마나 더 끔찍한 현실이 펼쳐질까. “(용균이) 동료들한테 이야기했다. 빨리 나가라고. 너희들도 여기서 일하다가 죽는 것 보고 싶지 않다고.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정말 보고 싶지 않다. (죽음은) 우리 아들 하나면 된다. 아들 같은 그 애들의 죽음을 안 보고 싶다. 우리나라를 바꾸고 싶다. 저는 우리나라를 저주한다”는 사고 노동자 어머니의 절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죽음에 대한 가장 슬픈 조종(弔鐘) 소리다.

2018년 12월 13일자 ‘이데일리’는 다음과 같이 보도하고 있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정부로부터 ‘무재해 사업장’ 인증을 받았으며, 원청인 서부발전은 무재해 사업장이라며 정부로부터 5년간 산재보험료 22억여 원을 감면받았다. 직원들에게도 무재해 포상금이라며 4770만 원을 지급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징후들 속에서 다가올 비극을 읽고 미리 대비하는 국가가 아니라, 가짜 안전, 거짓 행복의 지우개로 끔찍하기 짝이 없는 징후들을 마구 지우며 불행을 양산하는 국가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주인집 대문에서 굶어 죽은 개가 그 나라의 멸망을 예고한다”는 블레이크의 선언은 시인의 허사가 아니다. 세계의 모든 부분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개체의 불행은 대부분 관계의 산물이다. 주인이 잘 보살폈는데 그 집 대문에서 개가 굶어 죽을 일이 없다. 동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주인의 태도가 무려 “나라의 멸망을 예고”하는 징후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관계가 존재에 선행한다. 영국 시인 존 던의 말대로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아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나’라는 존재의 ‘감소’를 의미한다. 타자의 죽음은 곧 나의 일부의 죽음인 것이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종은 바로 그대를 위하여 울린다.”

오민석 문학평론가·단국대 교수·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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