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영표 “내가 선수에게 큰 실언, 축구 해설 그만둘 것”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15호 22면

[스포츠 오디세이] 청년 멘토 된 ‘표스트라다무스’

이영표(41·KBS 축구해설위원)는 별명이 많다. 선수 때는 ‘초롱이’ ‘매직 드리블’이었고, 해설가로서는 경기 결과를 잘 맞힌다고 해서 ‘문어’ ‘표스트라다무스’라는 별명을 얻었다.

축구 못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선수를 범죄자 취급하는 악플 그만 #불공정 세상, 그럴수록 더 노력해야 #정직은 손해 감수하는 진정한 용기 #기본에 충실한 벤투, 평범해서 강해 #K리그 살려면 유망주 키워 팔아야

지금 그의 역할 겸 별명은 ‘청년 멘토’다. 기독교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 땅의 청년들에게 건강하고 바른 가치관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이영표는 청년들이 가장 만나고 싶어하는 강연자다. 그가 올해 5월 펴낸 『생각이 내가 된다』(두란노)는 2만 권 넘게 팔렸다.

한국 축구가 유난히 심한 부침(浮沈)을 겪었던 2018년을 보내며 이영표 위원을 만났다. 그 자신도 방송에서 한 말과 책에 쓴 글로 인해 설화(舌禍)를 겪기도 했다. 덕분에 내면이 더 단단해졌다는 그는 “사랑하고 나누며 살기에도 짧은 생인데….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과 마음을 나누는 일을 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 18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영표 위원은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3개월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내겐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지난 18일 서울 압구정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이영표 위원은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3개월 전에 한국에 들어왔다. 사랑하는 아내와 세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내겐 세상 어떤 일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현동 기자]

독일전 승리 공로 신태용 감독에게 있어

축구 해설은 더 이상 안 할건가.
“해설을 하니까 사람들과 적이 되더라. 팬들이 축구 못한다고 말할 수는 있지만 축구 못하는 게 범죄는 아니지 않나. 그런데 우리는 마치 범죄자처럼 선수들을 대한다. 내가 해설에서 한 말도 그런 데 일조하게 되니까 이젠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본인도 러시아월드컵에서 특정 선수를 신랄하게 비판하지 않았나.
“장현수가 태클을 하고 페널티킥을 준 장면은 해설자로서 언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김민우에 대해서 한 말(소속팀 돌아가서 크로스 연습 더 해야 합니다)는 내가 해설 중 했던 많은 실수 중에서도 가장 큰 실수였다. 해설자가 경기에 몰입하더라도 할 수 있는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이 있는데 김민우에게 한 말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었다. 그 말을 하고 나서 난 해설을 하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러시아월드컵 신태용호는 실패한 건가.
“16강 못 갔으니 실패한 게 맞다. 그렇지만 신태용 감독의 지도자 인생이 실패한 건 아니다. 그분은 여전히 국내 다섯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뛰어난 감독이라고 생각한다.”
2패 후 세계 1위 독일을 이겼다. 그 경기의 의미는?
“약팀이 강팀을 만나 어떻게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집념과 열정이면 상대를 당황시키고 심지어 이길 수 있는지 보여준 경기다. 1,2차전 패배의 책임과 동시에 독일전 승리의 공로도 신 감독에게 있다.”
악성 댓글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이 많다.
“우리 사회가 압축 고도성장을 하면서 분노가 꽉 차버렸다. 다같이 못살 땐 괜찮았는데 부의 편중과 불평등이 생기면서 박탈감과 불만이 커졌고, 악플로 그 분노를 표출한다. 소유가 행복의 기준이 된다는 잘못된 생각이 사람들 속에 퍼져 있다.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분노를 통해 감정을 배설하는 건 자신을 위해서라도 해서는 안 된다.”
국가대표 시절 지네딘 지단을 제치고 드리블하는 이영표. [중앙포토]

국가대표 시절 지네딘 지단을 제치고 드리블하는 이영표. [중앙포토]

책에서는 노력·인내·정직을 말하고 있다. ‘노오력’만 강조한다고 보지는 않을까.
“물어보자. 전 세계에서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고 프로선수가 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는가. 노력 없이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내 의지와 상관없는 태생적인 요소나 환경이 날 좌절하게 할 수 있다. 그래서 내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걸 구분해야 한다. 누군가 불공정하게 내 몫을 차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부당함이 더욱 노력해야 할 이유가 돼야지 포기해야 할 빌미가 돼선 안 된다.”
토트넘에서 뛸 때 감독이 나이를 묻자 순간적으로 한 살 낮춰 말한 것 때문에 힘들었다고 했다. 사람이 정직하기 어려운 이유는 뭘까.
“인간의 죄성(罪性)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직해지고 싶은데 그렇지 않은 나를 보면서 많이 고민했다. ‘내가 정직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하자.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정직해지기 위해 싸우자’는 결론을 내렸다. 청년들이 자신은 정직하지 않으면서 정치인들이 정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인간은 원래 정직하기 힘든 존재이며 그렇기에 정직한 사람은 위대한 사람이다. 정직은 손해 볼 줄 알면서도 지키는, 진정한 용기다.”

황의조, 손흥민처럼 꾸준함 보여야

한국축구는 러시아월드컵 독일전을 기점으로 반등하기 시작했다. 9월 아시안게임에서 이란·일본 등 호적수를 누르고 우승했다. 8월 부임한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 감독은 우루과이·칠레 등 강호를 상대로 6경기 무패(3승3무)를 기록했다. 이 위원은 “내년 1월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서 한국이 59년 만에 우승컵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고 벤투호를 높이 평가했다.

벤투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이 왜 강한가.
“경기력에 일관성이 있다. 지난달 호주에서 열린 2연전(호주와 1-1, 우즈베키스탄에 4-0)은 손흥민·기성용 등 주전들이 빠진 원정이었다. 새 감독과의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팀이 한번쯤 무너질 만한 타이밍에서 무너지지 않았다. 벤투는 ‘다른 선수들로 같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 말을 지켰다.”
벤투 감독의 개인적인 스타일은?
“지극히 평범하다. 지도자가 경기를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을 차근차근 해나가는 것, 그런 평범함이 우리나라에선 특별한 게 됐다. 국내 지도자들도 헌신적이고 특별한 장점을 가진 분들이 많지만 철저하게 기본을 지킨다고 보기는 어렵다. 벤투는 기본을 제대로 지킨다.”
올해 가장 뜨거운 선수가 황의조인데.
“황의조는 슈팅 전 마지막 볼 터치가 아주 좋다. 그래서 좋은 슈팅 임팩트가 나온다. 공간을 파고드는 움직임도 훌륭하다. 하지만 일정 기간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선수들이 있다. 황의조가 아시안컵과 2019년 내내 지금의 경기력을 유지해서 반짝이 아니라 대한민국 최고의 스트라이커가 됐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서 손흥민은 이미 평가가 끝난 선수다. 4∼5년간 꾸준히 엄청난 능력을 보여줬고, 과거에 보였던 작은 약점들도 이제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K리그는 반등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본력을 앞세운 중국·일본·중동에서 좋은 선수들을 쓸어가고 있다. 그러면 리그 수준 하락→관중 감소→중계 외면→스폰서 이탈의 악순환에 빠진다. 그래도 희망적인 건 K리그에서 몇 년만 뛰고도 50억원 이상 몸값으로 팔려나가는 선수가 계속 나온다는 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도민구단 경남은 말컹(브라질)을 앞세워 2부에서 1부로 승격했고 1부리그에서도 2위를 차지했다. 말컹은 약 100억원을 구단에 남겨주고 떠날 것이다. 우리에게 현실적으로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게 이적료다. 국내 선수뿐만 아니라 아프리카·남미의 유망주를 키워 되파는 장사를 해야 한다. 그러려면 팀당 외국인 보유 한도를 3명에서 5명까지 늘려야 한다. 지금은 살아남는 것이 우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생존의 시대다.”

이 위원은 “앞으로 10년만 지나면 중국 축구가 아시아 최강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예측에도 ‘영표형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라는 댓글이 달릴지 모르겠다.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 / 중앙콘텐트랩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