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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제재 변함없다는 美 비건, 타미플루 지원은 허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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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착공식이 26일 예정대로 진행된다. 21일 외교부에서 진행된 한·미 워킹그룹 회의를 통해 착공식에 필요한 물자 중 대북 제재 대상인 품목 등에 대해 제재 예외 인정을 받는 절차가 마무리되면서다. 회의에선 또 독감 치료제인 타미플루의 북한 지원과 남북 유해 발굴 사업의 진행도 차질 없이 진행하도록 한·미 양측이 합의를 봤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로비에서 워킹그룹 2차 회의를 마친 뒤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워킹그룹 회의의 한국 측 수석대표인 외교부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21일 기자들에게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 철도 연결사업과 관련해서 착공식이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착공식 행사 자체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및 미국의 독자 대북 제재에 해당되지 않지만 행사를 위해 북한으로 반출해야 하는 유류 등의 물품이 문제가 됐었다.

이로써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9월 평양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대로 연내에 열리게 됐다. 김정은 위원장의 서울 답방 및 종전선언 등은 연내 진전을 보지 못한 상황에서, 26일 착공식은 연내에 현실화된 몇 안 되는 합의사항이 될 전망이다.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 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 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남북 철도 공동조사에 나섰던 우리측 열차가 18일 오전 경기도 파주 도라산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남북은 지난 30일부터 18일 간 경의선 개성-신의주 구간(약 400km)과 동해선 금강산-두만강 구간(약 800km)을 공동으로 조사했다. [사진공동취재단]

미국은 21일 한·미 워킹그룹에서 착공식 관련 제재 면제를 무리 없이 동의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 측 수석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는 회의를 위해 19일 한국에 도착하며 미국 국민의 북한여행 금지 조치를 인도적 지원을 위한 방문일 경우에 한해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미국의 대북 지원 단체들의 활동 제한을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대북 대화 촉구 메시지다.

비건 대표는 21일 워킹그룹 회의 후 이 본부장과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북한에 대한 유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비건 대표는 “북한의 협상 파트너들과 다음 단계의 협의로 넘어가기를 열망하며(eager) 그 과정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다가오는 (2차) 정상회담에 대해 얘기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라디오 방송과 전화 인터뷰에서 “새해가 시작되고 머지 않아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만날 것이라고 기대한다(hopeful)”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미국 정부가 다양한 층위에서 북한에 유화 제스처를 보내기로 조율했음을 보여준다.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서로 일면식도 없는 상태다. [연합뉴스]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 특별대표(왼쪽)와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서로 일면식도 없는 상태다. [연합뉴스]

비건 대표는 그러나 미국 정부가 대북 제재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자신이 직접 발표했던 대북 지원 단체들의 활동 제한 완화 등 인도적 조치는 기존의 유엔 및 단독 제재와는 무관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다. 이날 논의된 타미플루 대북 지원 및 유해발굴 사업도 인도주의적 분야에 해당하는 것으로, 본격적 제재 해제까지는 갈 길이 멀다.

비건 대표는 이번 조치가 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미국은 독자 및 유엔 제재를 해제할 의도가 전혀 없다(no intention)”고 답했다. 비건 대표는 그러나 “미국과 북한 사이의 신뢰를 쌓을 수 있는 다른 여러 문제들에 대해 살펴볼 준비는 되어 있다”며 여지를 남겼다.

비건 대표가 언급한 “다른 여러 문제들”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익명을 전제로 기자들에게 “북ㆍ미 간에 여러 논의는 진행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구체적 사항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이 고위 관계자는 “북ㆍ미 간엔 신뢰 쌓아나가기 위한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금년 들어서 냈던 북한과 관련한 메시지는 한 번도 부정적인 적이 없었고 미국이 한 번도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시한 적이 없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한·미 워킹그룹 회의에선 이산가족 화상상봉 문제 등도 논의됐다. 남북 정상이 합의한 사항이지만 광케이블 설치 및 화상상봉을 위한 전자기기 등, 대북 제재 물품이 해당되는 문제다. 이도훈 본부장은 “화상상봉과 여러 이슈에 대해서도 모두 얘기했고 잔잔한 이슈들이 남아있는 것은 다음에 얘기하기로 했다”며 “지금부터 내년 초까지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시기라는데 한ㆍ미가 의견을 같이 했다”고 말했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이후 북미 협상은 교착 국면이다. [연합뉴스]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가진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이후 북미 협상은 교착 국면이다. [연합뉴스]

비건 대표는 21일 앞서 조명균 통일부 장관을 면담했다. 비건 대표가 8월 임명된 후 네 번째 만남이다. 조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미국 고위관료를 가장 짧은 기간에 가장 많이 만난 것 같다”며 “한·미가 한반도 비핵화 문제, 남북관계 발전을 올바른 방향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북한에도 긍정적 메시지로 전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비건 대표는 오후엔 청와대에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면담했다. 청와대는 정 실장과 비건 대표가 “비핵화 문제 및 인도적 지원을 포함한 대북협력사업 추진 방안에 대해 폭넓게 협의했다”며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을 위한 한ㆍ미간 공조를 더욱 긴밀히 지속해 가기로 했다”는 김의겸 대변인 명의의 자료를 냈다.
비건 대표는 이날 이수혁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만났다. 이 의원은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북한과 협상을 진행할 다양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 같았다"며 "북한과 (6자회담 수석대표로서) 자주 협상했던 경험을 살려볼 때, 북한과도 합이 상당히 잘 맞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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