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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 취소하고 호텔"···강릉 펜션들, 생계걱정에 한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강릉펜션참사 이틀 뒤인 20일 펜션촌 인근은 한산했다. 기자가 20곳의 펜션을 갔지만 12곳은 문이 닫혀있었다. 이태윤 기자

강릉펜션참사 이틀 뒤인 20일 펜션촌 인근은 한산했다. 기자가 20곳의 펜션을 갔지만 12곳은 문이 닫혀있었다. 이태윤 기자

“위약금 내고 호텔로 바꿨다.”

20일 경포대 근처에서 만난 김모(37)씨는 펜션 예약을 취소했다고 말했다. 그는 연차를 내고 아내와 4살, 2살 된 두 딸과 함께 강원도 강릉으로 여행을 온 참이었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기 위해 온수 스파(SPA)가 있는 펜션을 예약했던 그는 18일 사고 소식을 듣고 불안한 마음에 급하게 호텔로 숙소를 바꿨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 김모(20)씨 역시 호텔을 예약했다. 종강을 기념하며 친구 3명과 여행을 계획했지만 사고 소식을 들은 부모님이 여행을 반대했다. 결국 그는 호텔을 예약하는 조건으로 허락을 받았다. 펜션으로 놀러온 한 이모(22)씨도 한 때 취소를 고려했다고 말했다. 여자친구와 강릉에 놀러 온 그는 “군인인데 휴가를 나온 것이어서 펜션을 취소하진 못했다. 휴가가 아니었다면 여행을 미뤘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릉 펜션 사고가 있고 이틀 뒤인 20일 강원도 강릉 경포대에 위치한 펜션(농어촌민박) 촌은 한산했다. 이날 본지 기자들이 사고 현장 근처 20곳의 농어촌민박을 방문했다. 한창 예약이 많을 시기였지만 12곳은 아예 주인이 없었다. 펜션촌 바로 옆 경포대에도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강릉펜션사고 하루 뒤인 19일 강릉시청이 인근 펜션 주인에게 예약취소시 100%환불 협조 문자를 보냈다. 남궁민 수습기자

강릉펜션사고 하루 뒤인 19일 강릉시청이 인근 펜션 주인에게 예약취소시 100%환불 협조 문자를 보냈다. 남궁민 수습기자

어렵게 만난 펜션 주인들은 입을 모아 예약 취소에 대해 걱정했다. 강릉시청은 사고 발생 하루 뒤인 19일 펜션 주인에게 문자로 긴급요청을 보냈다. “강릉 펜션 사고 관련 고객들이 예약취소 요청 시100% 환불 협조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10년 넘게 펜션을 운영한 전모씨는“이제 곧 크리스마스고 연말이면 주말 예약이 보통 꽉 차는데 줄줄이 취소됐다”고 말했다. 이어 “근처 큰 호텔로 예약이 몰린다고 하더라. 우리는 숙박업소 체인도 아니고 생계형으로 하는데 너무 힘들다”고 덧붙였다. 인근 카페에서는 “예약전화는 오지 않고 경찰이나 보건소에서 안전 점검한다는 전화만 온다”고 푸념하는 소리도 들렸다.

펜션 주인들은 예약취소에는 대체로 협조하고 있었다. 하지만 농어촌민박 자체가 문제라는 주변 시선에 대해서는 우려가 컸다. 현재 농어촌민박은 물론 호텔과 모텔, 콘도를 비롯한 대부분의 숙박시설에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가 법으로 의무화되어 있지 않다.

강릉펜션사고 인근 펜션촌에 위치한 한 펜션의 보일러실 모습. 보일러실은 외부에 있고 전기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심석용 수습기자

강릉펜션사고 인근 펜션촌에 위치한 한 펜션의 보일러실 모습. 보일러실은 외부에 있고 전기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었다. 심석용 수습기자

몇몇 펜션 주인은 답답한 마음에 건물 외부에 위치한 보일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신순래(67)씨는 보일러실을 보여주며 “우리는 전기보일러 쓴다. 수년간 펜션을 운영하면서 그런 사고는 들어보지도 못했다”고 강조했다. 15년간 펜션을 운영한 김모씨(57) 역시 “15년 동안 문제 한번 없이 운영했다. 사고는 아까운 일이지만 여기 있는 펜션이 다 위험한 것처럼 얘기하면 억울하다”고 말했다.

부실한 정부의 규정과 감시에 대한 아쉬움도 이어졌다. 신씨는 “평창올림픽 전에도 점검 나와서 봤는데 보일러는 안 봤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올림픽 때도 시나 보건소에서 계속 나오고 전화 오고 점검도 했지만, 방이 깨끗한지 거미줄은 있는지 이런 거나 봤지 보일러 점검 같은 건 한 적 없다”고 말했다.

농어촌민박사업의 서비스·안전기준에 따르면 시설 안전과 관련해 ▶소화기 작동 여부를 수시 점검할 것 ▶단독경보형감지기(일종의 화재감지기)를 수시 점검할 것 ▶취사시설 주변에 소화기를 비치할 것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일산화탄소 등 가스 누출에 대한 점검 항목은 없다.

정부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국 2만8000개 농어촌 민박을 전수 조사할 예정이다. 대책본부장으로 임명된 김한근 강릉시장은 19일 브리핑에서 “12월 1일부터 2월 25일까지로 예정된 전국 농어촌민박 점검 기간을 한 달 앞당겨 완료할 예정"이라며 “지금까지는 주로 위생 부분만 검사했지만, 난방 관련 사항도 점검하는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강릉=이태윤 기자, 남궁민·심석용수습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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