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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회 중앙시조대상] 시조 입문 30년 만의 영예…마음의 결핍 삭이고 삭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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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중앙시조대상 김삼환 

올해 중앙시조대상을 받는 김삼환 시인은 ’시조의 리듬에는 민족성이 녹아 있다. 나도 그 리듬으로 표현할 때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올해 중앙시조대상을 받는 김삼환 시인은 ’시조의 리듬에는 민족성이 녹아 있다. 나도 그 리듬으로 표현할 때 가장 편하다“고 말했다. [오종택 기자]

국내 최고 권위의 시조문학상인 제37회 중앙시조대상 수상작으로 김삼환(60) 시인의 ‘첨부서류’가 선정됐다. 중앙시조신인상은 백점례(59)씨의 ‘아버지의 말’이 뽑혔다. 제29회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에서는 이현정씨가 ‘뿔, 뿔, 뿔’로 등단했다.

갑갑한 은행생활 시 쓰며 이겨내 #우리 유전자엔 3·4조 운율 흘러 #먼저 떠난 아내에 바치는 선물

중앙시조대상은 시집을 한 권 이상 펴냈고 등단 15년 이상인 시조시인, 중앙시조신인상은 시조를 10편 이상 발표한 등단 5년 이상 10년 미만의 시조시인에게 수상 자격이 있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은 올 1월부터 11월까지 매달 실시한 중앙시조백일장 입상자들로부터 새 작품을 받아 그 중 최고 작품을 가리는 연말장원 성격이다.

중앙시조대상·신인상 예심은 시조시인 임채성·이송희씨가, 본심은 시조시인 이정환·오승철, 문학평론가 박진임 평택대 교수가 맡았다. 중앙신인문학상 시조 부문은 박권숙·염창권·이종문·최영효씨가 심사했다. 시상식은 26일 월드컬처오픈 코리아(서울 중구 서소문로 89-31) 2층에서 열린다.

“꼭 30년 전이다. 1988년 2월3일 제가 쓴 시조 ‘한강 물오리’가 처음 신문 독자투고에 실렸다. 그게 중앙일보였다.”

당시 김삼환씨는 은행원이었다. 광주상고 졸업 후 곧장 외환은행에 입사했다. 초·중·고 시절에는 문예반에서 시를 썼다. 은행 생활은 달랐다. 촉촉한 시어 대신 건조한 숫자 속에서 버텨야 하는 날들이었다. “늘 결핍을 느꼈다. 직장 생활이 답답할수록 내게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그게 시였다.” 그는 사보에다 종종 시를 써냈다. 직원 대상 공모전에서 시 부문 장원도 했다. 얼마 후에는 사보 기자로도 발령이 났다.

그때 사보 총책임자가 이상범 시조시인이었다. 그 역시 외환은행 직원이었다. “이 선생님께서 제 시의 리듬을 보고서 시조를 써도 괜찮겠다며 한 번 써보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초장, 중장, 종장의 글자 수를 맞추며 형식의 틀 안에서 썼다. 그런데 쓰면 쓸수록 시조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시조에는 초장에서 시작되고, 중장으로 연결되고, 종장에서 뒤집어지는 흐름이 있다. 그걸 익히는 데 고생은 했다. 그런데 그걸 완전히 내면화하면 형식이 아닌 자연스러움이 우러난다. 다름 아닌 ‘3·4·3·4’하는 글자 수의 리듬이다. 그건 오랜 세월 익혀온 우리 민족 고유의 운율이다. 우리의 DNA(유전자)에도 그 운율이 흐른다. ‘아리랑’ 같은 민요나 노동요에도 그게 있다. 한민족에게 가장 편한 리듬이다.”

그는 1992년 『한국시조』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은행원 생활은 강남외환센터 총괄지점장까지 역임하고 2014년 정년퇴직했다. 그 와중에 네 권의 시조시집을 냈다.

"저는 내면을 성찰하는 작품을 주로 썼다. 시조는 어린 시절부터 제 안에 있던 열등감이나 결핍을 진단하고 극복하는 창구였다. 제 속을 들여다보며 결핍의 덩어리를 찾고, 그걸 삭이고, 삭이고, 삭여서 밖으로 표출하는 식이다. ‘내게 시조는 왜 필요한가’에 대한 개인적인 답이기도 하다.”

수상 소감을 묻자 그는 ‘책임’이란 단어를 꺼냈다. "영예로운 상을 받아서, 그 상에 걸맞은 좋은 작품을 쓰는 숙제를 안게 됐다. 기라성 같은 선배 뒤에 이름을 올린다는 게 큰 영예이지만, 또한 책임이기도 하다.” 그가 시조를 쓸 때마다 아내는 첫 독자였다. 늘 격려를 잊지 않는 후원자였다. 그는 "(중앙시조대상 수상이) 지난해 가을, 길고 먼 여행을 떠난 아내가 보내준 선물이 아닐까 싶다”며 자리를 떴다.

첨부 서류

중요한 말은 묶어 별지로 첨부하니
조용할 때 열어보고 답신을 보내줘요
가을날 맑은 하늘에 뭉게구름 모습으로

가슴이 떨릴 때만 연락하라 하셨으니
어제 오늘 한꺼번에 여러 장을 썼어요
물들어 붉은 노을에 낙엽 몇 잎 떨구며

때로는 의미 없이 주고받던 말을 모아
첨부한 옛날 얘긴 열지 말고 기다려요
환절기 옷을 꺼내듯 파일명을 바꿀 테니

◆김삼환

1958년 전남 강진 출생. 1992년 『한국시조』신인상으로 등단. 2005년 제15회 한국시조작품상 수상. 시조집 『적막을 줍는 새』 『비등점』 『왜가리 필법』 『묵언의 힘』 등.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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