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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 초기 서먹한 마을 사람들, 집들이로 풀어라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성주의 귀농귀촌이야기(36)

경남 하동군 농가에서 한 귀농인이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경남 하동군 농가에서 한 귀농인이 귀농·귀촌을 희망하는 도시민들을 상대로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귀농·귀촌의 첫 관문은 마을 사람과 어울리는 일일 것이다. 도시에서 농촌으로 이사하고 나면 주민들과도 잘 어울려야 적응하기가 쉽다. 이걸 소홀히 하면 공동체 문화가 더욱 중요한 농촌에서는 자칫 소외당할 수 있다. 혼자만 살 수 없는 곳이 시골이다. 도시와는 전혀 다르다. 무언가 노력이 필요하다.

우선 귀농·귀촌인은 겸손한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나 마을로 이사하게 되면 먼저 주민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것이 당연한데 안 하는 사람이 많다. 처음엔 바빠서 못했다 하더라도 인사할 타이밍을 놓쳐 한 달 두 달이 지나면 인사하기도 민망해진다.

야구에서도 초구가 중요하다고 하지 않은가. 초구가 스트라이크냐 볼이냐에 따라 경기 판세가 달라진다. 마찬가지로 귀농 초기에 주민들과 인사하는 게 중요하다. 제가 어디서 뭘 하다 온 사람으로 잘 부탁드린다고 가가호호 인사를 해야 한다. 지자체에선 귀농인에게 집들이하라고 비용도 지원해 준다. 초기에 서먹한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지자체들 귀농인에게 집들이 비용 지원

그런데 나이가 든 일부는 화려했던 과거 생각에 고개를 뻣뻣하게 세운다. 내가 대기업에서 임원을 했느니, 고위 공무원을 했느니, 사업해서 돈을 많이 벌었느니 하며 말이다. 머리를 숙이고 많이 가르쳐 달라고 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기 자랑이나 해대는 걸 누가 좋아하겠는가.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주민 입장에서는 흔히 ‘친절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막 이사 온 외부인에게 친절을 베풀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다. 친절이란 상대방의 말과 요청을 잘 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도 상냥하게 해 주는 것이다. 농촌에 사는 사람은 친절 서비스에 다소 무감각하다. 친절 서비스는 도시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도 해야 한다.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수리비 지원이나 집들이비용 지원, 창업자금지원 등의 많은 제도가 있다. 사진은 한 귀농인이 마을 사람들을 모시고 집들이 하는 모습이다. [사진 안전행정부]

귀농인의 안정적인 정착을 지원하기 위해 빈집수리비 지원이나 집들이비용 지원, 창업자금지원 등의 많은 제도가 있다. 사진은 한 귀농인이 마을 사람들을 모시고 집들이 하는 모습이다. [사진 안전행정부]

멀리서 찾지 말자. 시골 인심이 바로 서비스다. 예전 시골에선 서로서로 배려했다. 어르신들은 손님이 오면 버선발로 나기도 했다. 신발을 신을 시간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선발로 뛰어나갔다. 상대방에게 반가운 마음을 진심으로 표현한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서비스를 몸으로 표현했는데, 지금은 그보다 못한 것 같다. 새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 칭찬과 격려가 필요하다.

서비스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농촌관광은 농업에도 해당하고 관광업에 해당하므로 친절 서비스가 몸에 배어 있어야 한다. 아무리 정이 넘치는 농박이고, 농촌 마을이고, 농가 맛집이라도 불친절하다면 사업이 잘될 리 없다.

보통 서비스는 고객한테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농민은 대고객 서비스에 관한 개념이 별로 없다. 내 농산물을 사주는 사람이 고객이다. 최종 소비자뿐만 아니라 내 농산물을 받아주는 농협이나 유통센터 직원도 고객이고, 내 농산물을 안전하게 배달해 주는 택배회사 직원과 우체국 직원도 고객이다. 이들 모두에게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이들이 만족하는 것이 고객 만족이다.

주민들이 친절 서비스를 실천할 때 마을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갈등도 해결하기 쉽다. 마을이 개발되기 시작하고 사업이 잘되면 이상하게 갈등이 일어난다. 마을의 갈등 해결에 기본이 되어야 하는 것이 역시 서비스 마인드라고 본다.

서비스 마인드란 역지사지하는 태도라 할 수 있다. 마을 갈등은 돈 때문에 일어난다고 하는데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일을 추진하는 과정이 투명하지 않아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소통능력이 부족한 것이다. 서비스는 소통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민들은 새 이웃에 옛 시골인심 베풀어야

장성군귀농귀촌인협회 회원들이 홀몸노인에게 선물할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다. 장성에 정착한 귀농·귀촌인은 지역민이 보내준 도움에 보답하고자 김장김치 150포기를 담가 홀몸노인에게 전달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장성군귀농귀촌인협회 회원들이 홀몸노인에게 선물할 김장김치를 담그고 있다. 장성에 정착한 귀농·귀촌인은 지역민이 보내준 도움에 보답하고자 김장김치 150포기를 담가 홀몸노인에게 전달했다.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도시에서 농촌으로 가는 이유 중 하나가 넉넉한 인심 때문이 아닌가. 농민 하면 순박하고 인심 좋다는 인상이 떠올려진다. 전문가에게 물어보면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은 서비스를 받았을 때 가장 크게 감동한다고 한다. 그걸 우리 농민은 보이지 않게 실천하고 있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가 사는 시골에 놀러 가면 뭐라도 하나 더 주지 않았던가. 그렇지만 겸손한 나머지 친절 사례를 쉬쉬해 잘 알려지지 않는다.

어느 마을에 가면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나와 인사를 한다. 예전에 경상도 어느 마을에 학생들하고 놀러 가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마지막 날 서울로 돌아갈 때 부녀회에서 상추랑 깻잎을 비닐봉지에 싸줘 고맙게 받아간 적이 있다. 그리고 나중에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상추가 가장 기억에 남았다고 했다. 모든 서비스가 좋았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상추 봉지 선물에 더 감동한 것이다.

옛날 우리 어른들이 잔치를 벌이고 손님들에게 일일이 음식을 싸주는 좋은 문화가 있었다. 그걸 ‘봉송’이라고 했다. 봉송이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시골이다.

좋은 서비스를 위해 농민은 어떤 것을 준비해야 할까. 야외에서 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얼굴이 까맣고 인상을 써 원래 상냥한 사람도 불친절해 보인다. 웃는 연습을 해야 한다. 웃으면 다 예뻐 보인다. 그리고 새 이웃이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남 탓하지 말고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응대해야 한다.

요즈음 농촌이 예전보다 빡빡해졌다고 하는 것은 귀농·귀촌인들이 영향을 끼친 부분이 있다. 오히려 이기적인 도시 문화가 시골로 전파돼 인심이 야박해진 부분도 있다. 귀농·귀촌인들은 시골의 좋은 문화를 받아들이는 만큼 혹시나 도시의 나쁜 문화를 전염시킬 수 있으니 조심하자.

김성주 슬로우빌리지 대표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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