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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마시고 유럽을 삼키다…맛의 도시 마카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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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카지노 호텔과 오랜 상점가가 어우러진 마카오 풍경. 서울 종로구만 한 도시 마카오는 중장년층도 여행을 떠나기 좋은 여행지다. 특급호텔 레스토랑부터 골목 구석구석 노포까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해 식문화에 관심이 높은 여행객이라면 지루할 틈이 없다. [사진 마카오관광청]

카지노 호텔과 오랜 상점가가 어우러진 마카오 풍경. 서울 종로구만 한 도시 마카오는 중장년층도 여행을 떠나기 좋은 여행지다. 특급호텔 레스토랑부터 골목 구석구석 노포까지 맛있는 음식이 가득해 식문화에 관심이 높은 여행객이라면 지루할 틈이 없다. [사진 마카오관광청]

 마카오의 미식 문화는 카지노 사업과 함께 성장했다. 2001년 마카오가 카지노 사업권을 외국 자본에 개방한 이후, 70곳이 넘는 카지노 호텔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카지노 호텔마다 VIP 고객을 겨냥한 고급 레스토랑을 앞다퉈 개장했고, 카지노 머니를 좇아 스타 셰프와 최고급 식재료가 집결했다. 미식의 성서 『미쉐린 가이드 홍콩·마카오 2019』로부터 별을 획득한 마카오 레스토랑 19곳(3스타 3곳, 2스타 5곳, 1스타 11곳) 가운에 18곳이 카지노 호텔에 들어선 레스토랑이다.
 그렇다고 카지노 호텔만 돌아다니는 여행은 마카오를 절반만 맛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광둥(廣東)요리에 뿌리를 둔 토착 음식문화, 포르투갈 식민지 지배를 거치며 발달한 포르투갈식 중국 요리 매캐니즈(Macanese)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식당이 골목 구석구석에 숨어 있다. 특급호텔에서 파인 다이닝을 즐기다가도 허름한 노포에서 딤섬을 집어 먹는 ‘간극’을 경험해야 마카오의 맛을 제대로 만끽한다.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층도 자유롭게 맛 여행을 떠날 수 있다. 고급스럽게 혹은 저렴하게 즐기는 ‘맛’카오 여행법을 소개한다.

미식 도시 마카오 #5060이 주목하는 마카오 식도락 #장수 도시 비결된 음차 문화 체험 #카지노 호텔은 스타 셰프 경연장 #프랑스 문화 재현한 프렌치 식당 #포르투갈 문화 밴 길거리 음식도

마카오

마카오

 광중요리의 주인공, 차(茶)

마카오 현지인의 브런치 식당, 룽와 티하우스. 양보라 기자

마카오 현지인의 브런치 식당, 룽와 티하우스. 양보라 기자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더 월드 팩트북(The World Fact Book 2018)』에 따르면 마카오의 평균 수명은 84.6세로, 모나코·일본·싱가포르에 이어 세계 4위 장수 국가다. 천혜의 환경을 자랑하는 스위스(12위)나 캐나다(18위)보다 도시국가 마카오의 국민이 더 오래 산다는 사실이 의외다.
 중국 전문 저널리스트 나카지마 케이(中島恵)는 광둥요리에 뿌리를 둔 마카오의 음식문화를 주목한다. 특히 광둥요리의 철학이랄 수 있는 ‘의식동원(醫食同源·음식은 약과 같다)’에서 마카오의 장수 비결을 찾는다. 의식동원의 대표 사례로 꼽히는 것이 음식에 차를 곁들이는 음차(飮茶) 문화다. 음차는 건강한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이 높은 중장년층 여행자가 마카오에서 꼭 경험해봐야 할 체험으로 떠오르고 있다.
 마카오의 로컬 식당 어디서든 차를 마실 수 있지만, 음차 문화를 제대로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재래시장 레드마켓(Red Market) 근처에 있는 ‘룽와 티하우스(Longwa teahouse)’이었다. 마카오 현지인에게서 광둥식 ‘차찬텡(茶餐庭·차와 식사를 겸하는 식당)’의 원형을 지키는 곳이라고 추천받았다.

딤섬에 차를 곁들여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양보라 기자

딤섬에 차를 곁들여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다. 양보라 기자

 1962년 개업한 룽와 티하우스는 종업원에게 메뉴를 주문할 필요가 없다. 식당 한편에 쌓아 올린 딤섬 바구니를 원하는 만큼 가져다 먹으면 된다. 자리에 앉자마자 주전자가 기본으로 깔리는 것은 여느 차찬텡과 같았다. 주전자에는 중국 윈난(雲南)에서 생산했다는 보이차가 가득 담겨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신문 읽으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는 현지인 여러 명이 눈에 띄었다. 음차는 천천히 차를 마시며 여유로운 한때를 즐기는 마카오식 브런치인 셈이었다. 시간이 멈춘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니 마음도 속도 편해졌다. 차와 딤섬 바구니 2∼3개를 먹는데 우리 돈 1만원이면 충분했다.

모르페우스 호텔 중식당 '이'의 티 소믈리에. 양보라 기자

모르페우스 호텔 중식당 '이'의 티 소믈리에. 양보라 기자

 마카오에는 음차 파인 다이닝을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도 있다. 지난 6월 개장한 호텔 ‘모르페우스(Morpheus)’ 21층의 중식 레스토랑 ‘이(Yi)’다. 메뉴는 한 가지. 10가지 음식으로 구성된 코스 요리다. 1인 식사 비용이 1888파타카(26만6000원)에 달하지만, 마카오의 중장년 식도락가 사이에서 건강한 중식을 맛볼 수 있다고 입소문이 나면서 예약하기 쉽지 않은 레스토랑이 됐다.
 안젤로 웡(36) 총괄 셰프는 “부엌에 냉동고가 없는 레스토랑”이라고 소개했다. 생선과 고기는 매일 아침 장 봐온 것만 쓴단다. 그래서 매일 메뉴가 바뀌고, 오후 4시가 돼야 전체 코스 요리가 확정된다. 메뉴가 정해지면, 티 소믈리에가 그날그날 식재료나 조리법을 꼼꼼히 따져 3~4가지 차를 준비한다.

히말라야에서 나는 채소 암미 요리. 양보라 기자

히말라야에서 나는 채소 암미 요리. 양보라 기자

 제비집 스프에는 국화차가, 히말라야 바위 지대에서만 나는 채소 암미(巖米)찜에는 우롱차가 따라나왔다. 디저트에는 소화를 돕는다는 철관음(鐵觀音)차가 곁들여졌다. 향긋한 차와 고급 중국 요리의 궁합을 경험하는 호사를 누렸다. 요리 10그릇을 바닥까지 싹 비웠는데도, 차를 마신 덕분인지 더부룩하지 않았다.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같은  

프랑스에서 공수한 크리스탈로 꾸민 '알랭 뒤카스 앳 모르페우스' 레스토랑. [사진 모르페우스]

프랑스에서 공수한 크리스탈로 꾸민 '알랭 뒤카스 앳 모르페우스' 레스토랑. [사진 모르페우스]

 중국 요리 중심이었던 마카오의 호텔 레스토랑을 글로벌하게 바꾼 주인공이 카지노 부호 스탠리 호(96)다. 호는 미쉐린 스타 31개를 거느린 세계적인 스타 셰프 조엘 로부숑(Joel Robuchon)을 2008년 영입했다. 그 결과물이 ‘그랜드 리스보아(Grand Lisboa)’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로부숑 오 돔(Robuchon au Dome)’이다.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답다는 평가를 얻은 로부숑 오 돔은 2008년 이래 해마다 미쉐린 3스타 레스토랑에 이름을 올렸다.
 로부숑 오 돔의 아성에 도전하는 프렌치 레스토랑이 올해 나타났다. 모르페우스 호텔에 둥지를 튼 ‘알랭 뒤카스 앳 모르페우스(Alain Ducasse at Morpheus)’다. 모르페우스 호텔의 최대 주주 로렌스 호(42)는 스탠리 호의 아들로, 아버지와 같은 전략을 짰다. 호텔 3층을 미쉐린 스타 18개를 보유한 스타 셰프 알랭 뒤카스(61)에게 통째로 내줬다.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인 캐비아. 양보라 기자

알랭 뒤카스 레스토랑의 시그니처 메뉴인 캐비아. 양보라 기자

 레스토랑에 들어서는 순간, 레스토랑 전체가 프랑스로 순간 이동하도록 작정한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샹들리에와 그릇은 물론이고 식탁을 감싼 테이블보까지 프랑스에서 공수했다. 모나코에 있는 뒤카스의 3스타 레스토랑 ‘루이 15세(Le Louis XV)’의 인기 메뉴 캐비아를 떠먹으며 뒤카스가 생산한 샴페인 알랭 뒤카스 브뤼(Alain Ducasse Brut)를 마실 때는 유럽 부호의 식탁을 체험하는 듯했다. “마카오에 프랑스를 옮겨 놓았다”는 피에르 마티(33) 총괄 셰프의 자신감 넘치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달 11일 발표된 『미쉐린 가이드 홍콩·마카오 2019』는 “오리지널 프렌치가 등장했다”는 평가와 함께 이 레스토랑에 별 2개를 선사했다. 코스 요리 1인 1888파타카(26만6000원).

군것질 거리가 모여 있는 마카오 미식의 거리, 쿤하 거리. 양보라 기자

군것질 거리가 모여 있는 마카오 미식의 거리, 쿤하 거리. 양보라 기자

 마카오에서 타국의 미식을 체험하는 일은 레스토랑 밖에서도 이어진다. 물론 대표 미식 거리 타이파 빌리지(Taipa Village) 쿤하 거리(Rua de Cunha)를 걸으면서도 가능하다. 1999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기 전까지, 마카오는 약 400년간 포르투갈의 행정 지배를 받았다. 포르투갈의 음식문화가 마카오의 길거리 주전부리로 남아 있다. 달걀 커스터드가 바삭한 빵을 가득 채운 에그타르트, 부드러운 생크림에 쿠키 가루를 올린 세라두라(Serradura) 등 포르투갈식 디저트를 파는 점포가 쿤하 거리에 즐비하다. 에그타르트는 한 개 2000~3000원, 세라두라는 한 컵에 5000원이다.

마카오식 돼지갈비 햄버거 주빠빠오를 맛보는 여행객. 양보라 기자

마카오식 돼지갈비 햄버거 주빠빠오를 맛보는 여행객. 양보라 기자

포르투갈 수도원에서 탄생한 디저트 에그타르트. 양보라 기자

포르투갈 수도원에서 탄생한 디저트 에그타르트. 양보라 기자

 마카오에 녹아든 유럽 문화를 맛보고 싶다면 마카오식 햄버거 주빠빠오(豬扒包)도 놓쳐선 안 되는 메뉴다. 주빠빠오는 1900년대 중반 포르투갈 관료가 탄생시킨 메뉴다. 포르투갈의 주식인 빵에 마카오 현지인이 흔히 먹는 돼지갈비를 끼워 먹은 데에서 유래했다. 지금도 주빠빠오는 두툼한 빵 안에 별다른 재료 없이 돼지갈비만 들어 있다. 마카오 곳곳에 주빠빠오를 내는 가게가 흔하지만, 쿤하 거리 초입의 ‘세기카페(Seikee Cafe)’에 특히 현지인이 몰린다. 카레 소스로 양념해 돼지갈비의 느끼한 맛을 잡은 게 이 집의 비법이다. 주빠빠오(30파타카, 4200원)에 커피를 섞은 밀크티(19파타카, 2600원)까지 곁들이면 한끼 식사로 손색없다.

마카오=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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