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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하루아침에 기업인을 범법자로 만들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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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동현
이동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동현 산업1팀 기자

이동현 산업1팀 기자

“기업은 벼랑 끝에 내몰려 있습니다. 2020년에 최저임금 결정체계를 개편한다고요? 큰 선물이라도 주는 것처럼 얘기하지만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거고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김용근(62) 한국경영자총협회 상근부회장의 목소리엔 근심이 가득했다. 전날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일말의 기대감이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고용부의 입장은 요지부동이었다고 했다.

최저임금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 연봉 5000만원이 넘는 대기업 직원도 최저임금에 미달하게 된다는 경고(중앙일보 12월 11일자 3면 참조)가 잇따랐다. 정부는 다음 주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의결할 예정이다. 개정 시행령은 최저임금 기준시간을 실제 일한 시간에 유급 근로시간(주휴시간)까지 더한 것으로 규정한다. 기준시간이 실제로 일한 시간(174시간)보다 최대 69시간까지 늘어나게 된다. 임금(분자)을 늘려도 기준시간(분모)가 크게 늘어나면 최저임금 시급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임서정(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18일 김용근 한국경총 부회장을 찾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임서정(왼쪽) 고용노동부 차관이 18일 김용근 한국경총 부회장을 찾아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부회장은 대표적인 경제·산업관료 출신이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장,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을 지내는 등 정책입안 과정은 물론 기업 경영까지 해박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절규에 가까운 쓴소리를 마다치 않는 건 그만큼 기업 상황이 어렵다는 의미다.

경총은 19일 고용부가 전날 내놓은 최저임금법 시행령 관련 보도참고자료를 조목조목 반박하는 입장문을 내놨다. 입장문에서 경총은 “대법원이 ‘실제 일한 시간’으로 최저임금을 계산한 건 입법 취지를 정확히 해석한 것이지, 고용부 주장대로 ‘문구대로만’ 해석한 게 아니다”며 “지난 30년간 주휴시간까지 포함해 행정지침을 내린 것이 대법원 판결에 어긋난 것이고, 잘못된 행정지침을 명문화한다고 합법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밤을 새워 반박자료를 만들었다”고 했다. 정부 방침에 반기를 드는 게 부담스럽지 않느냐고 묻자 그는 “나를 이 자리(경총 상근부회장)에 앉혔을 때는 기업과 정부의 가교 역할을 하라는 것 아니었느냐”며 “법(최저임금법)에 없는 내용을 넣고 싶으면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입법으로 해결해야지, 시행령을 고쳐 ‘꼼수’ 입법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재계가 시행령 개정에 반대하는 건 단순히 임금을 더 주기 싫어서가 아니다. 한계상황에 놓인 기업의 생존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하는 사항은 반드시 국회가 의결해야 한다는 ‘법률 유보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절차적 정의를 지키지 않은 채 하루아침에 기업인을 범법자로 만들 순 없다.

이동현 산업1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