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인인사이트] 성형 견적 앱이 희귀병 정보 교환 서비스로 변신… "강한 사업 찾다보니 착해졌을 뿐"

중앙일보

입력 2018.12.19 06:16

업데이트 2018.12.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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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미래, 임기응변식 비즈니스로는 경쟁력을 갖출 수 없습니다. 중요한 순간 깊이에서 차이가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즈니스에 깊이를 더하려면 장기적 관점의 철학이 필요합니다. ‘일의 미래’을 이야기하는 지식 플랫폼 폴인(fol:in)에서는 확고한 철학으로 사회 문제 해결에 기여하며 수익을 창출하는 임팩트 비즈니스에 주목했습니다. 12월, 폴인에서 준비한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05 성장을 위한 변화, 착하고 강한 비즈니스를 만들다. 휴먼스케이프 장민후 대표 인터뷰

카카오 김범수 의장은 2006년 카카오의 전신인 ‘아이위랩’을 창업하고 2007년 부루(BURU), 2008년 위지아(WISIA)라는 소셜기반 웹서비스를 출시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폐업 위기에 놓인 상황, 김 의장은 미국에 등장한 아이폰을 보고 모바일 기반 서비스의 시대가 올 것을 내다봤다. 그는 즉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들어오기 시작할 무렵 ‘카카오톡’을 세상에 내놓았다. 이는 가장 성공한 피보팅 사례 중 하나로 회자된다.

피보팅(Pivoting)이란 기업의 핵심 사업을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주로 사업의 성과가 낮거나 시장 전망이 어두울 때 이런 시도가 이루어진다. 2014년 창업한 헬스케어 스타트업 휴먼스케이프는 지금까지 총 네 번의 피보팅을 시도했다. 성형 견적 앱부터 수술 후 환자관리 앱까지, 출시하는 서비스마다 시장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 가능성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과감하게 새로운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피보팅을 거듭할수록 비즈니스는 정교해졌다. 네 개의 서비스를 출시하고, 네 번의 피보팅을 경험한 뒤 다섯번째 서비스로 35억원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휴먼스케이프는 환자의 건강 정보를 블록체인에 기록하는 네트워크 플랫폼이다. 그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희귀ㆍ난치병 환자로부터 건강 정보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를 가공해 제약회사나 병원에 판매한다. 정보를 제공한 사람에게는 암호화폐를 발행해 대가를 지불한다. 희귀ㆍ난치병 치료 연구에 기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고, 환자들에게도 대가를 지불하는 ‘착하고 강한’ 비즈니스다. 휴먼스케이프는 환자 대상 베타 서비스를 진행 중이며, 내년 상반기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Klaytn)을 통해 정식으로 서비스를 론칭할 계획이다.

휴먼스케이프의 장민후 대표는 “처음부터 사회적 신념을 가지고 창업한 것은 아니지만, 비즈니스를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착한 비즈니스에 가까워졌다”라고 말했다. 또, “수익을 창출하는 과정에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게 되면 기업과 소비자를 넘어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지지를 받게된다”고도 말했다. 장 대표는 오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폴인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 연사로 나서 창업 이후 네 번이나 피보팅을 하게 된 이유와 그 결과 휴먼스케이프에 찾아온 변화에 대해 이야기한다. 다음은 장 대표와 나눈 일문일답.

네 차례의 피봇팅 끝에 &#39;착하고 강한&#39; 사업 모델을 찾게 됐다는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 [사진 휴먼스케이프]

네 차례의 피봇팅 끝에 &#39;착하고 강한&#39; 사업 모델을 찾게 됐다는 장민후 휴먼스케이프 대표. [사진 휴먼스케이프]

창업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군 전역 후 대학에서 창업 관련 수업을 들으며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후 학교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에 참가했다가 최우수상을 받아 실리콘밸리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먼저 창업한 선배들을 보며 나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동창이 소개해준 개발자와 기획자를 설득해 임신 개월수 및 육아 시기에 따라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는 달력 서비스 ‘허니비’를 만들었다.
첫 서비스의 반응은 어땠나
고객 반응도 좋았고, 사용자 수도 많았다. 그런데 수익 모델이 없어 금방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일단 사용자를 모은 뒤 수익 모델을 만들 생각이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그래서 피보팅을 한건가
그렇다. 수익화의 어려움을 깨달은 뒤로 소비자가 기꺼이 비용을 지불할만한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다. 의료 서비스 쪽에서는 미용 의료 쪽 환자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비용을 지불한다고 판단해 ‘거울아 거울아’라는 성형 견적 앱을 개발했다. ‘강남 언니’같은 앱이 나오기도 전의 일이다. 전혀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입소문이 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다른 성형 견적 앱처럼 사업을 키울 수도 있었을텐데 왜 포기한 건가
의료법을 위반할 우려가 있었다. 앱으로 견적을 받는 과정에서 원격 의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할 수도 있고, 의사가 아닌 비의료인이 견적을 내는(진료를 하는) 일도 생길 수 있다. 환자 유인, 알선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무엇보다 보건복지부와 로펌에 질의를 넣은 결과 위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딱히 운영의 묘가 떠오르지 않아 깔끔하게 사업을 접었다. 법에 대해 잘 몰랐던 내 탓이다.
두 번이나 사업이 엎어지면 포기할 법도 한데, 다시 피보팅을 한 건가.
두 서비스 모두 뚜렷한 성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수치로 나타나는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 수요자를 만족시켰으니, 다음에는 공급자까지 만족시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다음으로 개발한 서비스는 무엇인가
성형 견적 앱을 만든 뒤 여러 성형외과로부터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이후 성형외과를 돌아다니며 운영 시스템을 배우고, 환자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인지 조사했다. 그 과정에서 수술 후 환자와 병원 사이에 생기는 갈등을 발견했다. 자신의 상태가 걱정스러운 환자들은 수시로 병원에 전화를 걸어 증상을 이야기하고, 전화를 받은 간호사는 자신이 진료를 할 수 없으니 직접 내원하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었다. 우리는 수술 후 환자들의 증상을 데이터로 정리해 상황에 따른 조치를 알려주는 서비스를 개발했다.  
이후 피보팅한 모바일 의료비서 서비스 ‘헬렌’과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이 서비스는 각 병원이 사업의 주체였다. 성형외과의 이름을 걸고 애프터케어 앱을 출시한 셈이다. 모바일 의료비서 서비스인 ‘헬렌’은 휴먼스케이프가 사업의 주체였다. 진료과목도 확장했다. 성형외과뿐만 아니라 정형외과에서 물리치료를 받는 환자들도 헬렌을 설치하면 본인의 증상에 알맞은 처방을 받을 수 있게 만들었다. 환자들은 원하는 의료 정보를 얻어 좋고, 병원에서는 고객 문의가 줄어 좋은 서비스였다.
그런데 왜 또 피보팅을 한 건가
사실 헬렌 때문은 아니다. 환자들을 위한 사후 관리 앱을 개발하면서 동시에 병원을 상대로 고객의 차트 데이터를 전산화하는 고객 관리 솔루션 앱을 만들었다. 병원에서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고, 실제로도 좋아했다. 그런데 막상 운영을 시작하니 문제가 많았다. 병원마다 커스터마이징 요구가 빗발쳤고, 매출과 무관한 서비스라 그런지 비용을 아끼려 했다. 당시 우리 사업모델을 보고 투자한 투자사도 있었는데, 솔직하게 찾아가서 비즈니스 모델의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어떤 대안을 제시한건가  
다행히 어느정도 방향은 잡고 있었다. 우리는 병원이 아닌 환자 기반 서비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해외에서는 우리가 만든 것과 비슷한 종류의 환자 관리 앱으로 건강 정보를 수집해 제약회사나 병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환자들은 앱을 설치할 때 건강 정보 제공에 동의해야하기 때문에 자신의 정보가 팔려나가는데도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 우리는 환자의 건강 정보를 판매하는 비즈니스 모델에 집중하되,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정당한 보상을 지불하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지금의 사업 아이템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블록체인 엑스포에서 강연 중인 장민후 대표 [사진 휴먼스케이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린 블록체인 엑스포에서 강연 중인 장민후 대표 [사진 휴먼스케이프]

희귀ㆍ난치 질환 환자의 건강 정보를 거래할 생각은 어떻게 한 건가
루게릭병 환우들이 모인 환자 커뮤니티가 커져서 난치병 환자들의 커뮤니티에서 나온 정보를 판매하는 영리회사로 발전한 사례를 알게 됐다. 실낱같은 희망을 가지고 모인 환우들의 정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팔아치운다는 것이 매우 잘못됐다고 느꼈다. 우리는 같은 정보를 판매하더라도 환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고, 그들의 정보가 어떻게 쓰이는지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것들이 가능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자마자 사업 개발에 착수했다.
희귀ㆍ난치병 환자들의 건강 정보가 비싼 값에 팔리는 것을 알고 선택한 것은 아닌가
그 분들의 건강 정보에 높은 값이 책정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정보가 유의미하지는 않다. 예를 들어 한 명의 환우가 가진 건강 정보로는 신약을 개발할 수 없다. 희귀병은 환자 수가 적은만큼 최대한 많은 정보를 수집해 공통점을 찾아내고, 이를 연구에 도움이 될 수 있게 가공해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우리가 할 일은 수집한 정보를 가공해 필요한 이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환우들이 직접 제공하는 것보다 치료 연구에 기여하는 바가 크고, 환자들에게도 보상이 지급되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비즈니스다.  
착한 비즈니스를 해야겠다는 사명감 같은 게 있는 건가 
착한 비즈니스 자체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더 나은 비즈니스를 찾아 헤매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착하기만 한 기업은 지속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수익을 창출하지 못하는 기업은 구성원과 투자자, 소비자 모두에게 피해를 준다. 나는 수익모델을 탄탄하게 갖춘 상태에서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회사가 진짜 착한 회사라 생각한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도 그런 쪽이다.

장민후 대표는 19일 서울 종로 스페이시즈(SPACES) 그랑 서울에서 열리는 폴인(fol:in)의 콘퍼런스 <임팩트 : 진짜 강한 비즈니스에는 철학이 필요하다>에서 착하고 강한 비즈니스에 대한 더 많은 생각을 밝힐 계획이다. 입장권은 폴인 홈페이지에서 구매할 수 있다.

김대원 에디터 kim.daewo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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