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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저어야 할 물은 한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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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

올해 10대 뉴스 중에 꼭 고르고 싶은 두 가지가 있다. 방탄소년단(BTS)이 지난 5월 ‘2018 빌보드 뮤직 어워드(BillBoard Music Awards)’에서 2년 연속 ‘톱 소셜 아티스트(Top Social Artist)’ 트로피를 받은 것이 하나이고, 박항서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 대표팀이 지난 15일  아세안축구연맹(AFF) 스즈키컵에서 우승컵을 들어올린 것이 하나다. BTS는 K팝의 새로운 영토를 정복(미국 음악잡지 ‘롤링스톤’의 평가)했고, 박항서 감독은 베트남 국민 1억 명에게 코리아를 깊게 각인시켰다.

K컬쳐, 유튜브, SNS란 말 타고 정복 중 #‘K 열풍’이 몰고 온 기회 놓치지 말아야

이런 두 뉴스를 새삼 꺼내면서 손발이 오글거리는 느낌이 다소 들긴 한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코리아가 단군 이래 지금껏 이렇게 널리 알려진 일이 있었나. 그것도 한국전쟁이나 북핵이 아닌 문화의 힘으로 말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는 백범 김구 선생의 말씀이 딱 맞아떨어지는 해가 2018년이다.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는 패가망신 같은 문제를 일으키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과소평가와 무지도 병인 양 싶다. 얼마 전 한국에서 고교 1학년을 다니는 미국 하와이 출신의 소몰스 일라나(17)를 만나 그의 한국 생활을 취재하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일라나는 ‘BTS의 나라’에 오고 싶어 K팝으로 한국어를 익혔고, 부모의 허락을 따내 한국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일라나가 한국에 오는 과정에서 다리 역할을 했던 교환학생 프로그램 운영단체 YFU 코리아도 찾아갔다. 인성연 부회장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하는 외국 학생들이 너무 많은데 이 학생을 받을 한국 가정이 없다”고 하는 말을 듣고 “정말?”하고 되물었다. 그때 내가 아는 코리아와 일라나가 경험한 코리아가 같은 나라인 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그러면서 한국에 온 외국 10대 기사 밑에 “헬(hell) 조선에 왜 와”라고 댓글 쓴 사람과 내가 거기서 거기, 오십보백보 아닌가 스스로를 돌아봤다.

K팝에서 시작한 K컬쳐가 유튜브나 SNS라는 이름의 말을 타고 새로운 땅을 정복하고 있다. 몽골제국이 조랑말로 세계를 요리하듯 한류는 새로운 땅을 찾아 물밀듯 밀려간다. 한국에 온 외국 10대들은 ‘유튜브로 K팝을 접한다’→‘자막으로 K드라마를 본다’→‘한국어 학습에 도전한다’→‘한국에 온다’는 경로를 밟았다. 중앙아시아 조지아에 사는 10대 여학생이 한국어능력시험(TOPIK) 5급(최고 등급은 6급)을 따고 한국으로 유학 오는 일도 있다. BTS 팬클럽 ‘아미’와 트위터의 K팝 번역 계정들이 K팝 스타들의 한국어 가사를 각국의 언어로 번역해 뿌려준 덕분에 우리말에 호기심을 갖게 된 외국 10대가 독학을 해 이 땅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10대 때 맺은 코리아와 인연, 코리아 이미지는 상당 기간 오래갈 것이다. 현재 한양대에서 유학 중인 핀란드 출신 율리아(25)도 고교 때 한국에 왔었고, 지난해 친구 두 명을 데리고 한국 대학으로 유학 왔다. 저출산으로 인해 학생 수가 쪼그라들고 있는 우리 대학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제조업의 실적 개선 사례를 꺼내며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가 야당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암울한 경제 사정으로 올 연말은 유난히 어두운데 지금이 물 들어오는 시기냐는 힐난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바꿔 말하고 싶다. 노 저어야 할 물은 한류이고, 물은 콸콸 흘러들어오고 있다고 말이다. 경기대 한류문화대학원 전진국 교수는 “한류는 갈수록 진화해 우리가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영역으로 진입했다”고 평가했다. 이렇게 뜨거운 ‘K열풍’이 어느 순간 차갑게 식어버리지 않게 민간과 정부가 힘을 모았으면 한다. 한쪽엔 외교부와 문화부, 전 세계 한국문화원과 교육원을 태우고, 다른 쪽엔 K컬쳐를 이끄는 산업계 그룹, 대학, 문화계 전문가 등을 태워 힘을 모아 노를 젓게 하자. 이런 천우신조의 기회를 날리지 말아야 한다.

강홍준 중앙SUNDAY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