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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빛낸 박항서, 함께 빛난 ‘박항서의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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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스즈키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박항서(가운데) 감독과 베트남 선수들. [AFP=연합뉴스]

스즈키컵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환호하는 박항서(가운데) 감독과 베트남 선수들. [AFP=연합뉴스]

베트남이 스즈키컵 축구대회에서 우승한 지 사흘이 지났는데도 박항서(59) 감독을 향한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베트남 국영 VTV1은 18일 ‘2018년 베트남을 빛낸 최고의 인물’로 박 감독을 선정했다. VTV1은 박 감독을 조만간 방송국으로 초청해 내년 1월1일 내보낼 신년 프로그램을 제작할 예정이다.

스즈키컵 베스트11에 베트남 5명 #MVP 꽝하이, 공격수 안둑 포함 #용기·자신감 불어 넣어 강팀 변모

폭스스포츠 아시아는 스즈키 컵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선수와 감독을 모아 ‘팀 오브 더 토너먼트’를 18일 발표했다. 3-4-3 포메이션으로 베스트11을 뽑으면서 지도자 부문에는 박항서 감독을 뽑았다.

이 매체는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를 맡은 지 1년 만에 대변혁을 일으켰다. 큰 무대인데도 두려워하지 않고 과감하게 젊은 선수들을 내보냈다. 박 감독의 믿음에 반하우, 판반둑, 두훙둥이 부응했다”고 밝혔다. 베스트11에는 베트남 선수가 5명이나 이름을 올렸다. 공격수 응우옌 안둑, 미드필더 응우옌 꽝하이, 중앙수비 쿠에은곡하이, 윙백 도안 반하우, 골키퍼 당반람이 뽑혔다.

폭스스포츠 아시아는 스즈키컵 팀 오브 더 토너먼트를 선정하면서 박항서 감독을 최고 감독으로 뽑았다. [폭스스포츠 아시아 캡처]

폭스스포츠 아시아는 스즈키컵 팀 오브 더 토너먼트를 선정하면서 박항서 감독을 최고 감독으로 뽑았다. [폭스스포츠 아시아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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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당시 한국에는 ‘히딩크의 아이들’로 불리던 선수들이 있었다. 박지성·이영표·안정환 등이다. 베트남에선 ‘박항서의 아이들’이 기적을 일으켰다.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선수를 지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박 감독이 지난해 10월 부임했을 때만 해도 베트남 대표팀의 전력은 오합지졸에 가까웠다. 선수들은 식사시간에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 휴대전화만 들여다봤다. 더운 날씨 탓에 선수들은 쉽게 지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베트남 선수들에게 박 감독은 용기와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박 감독은 ‘체격’이 작을 뿐 ‘체력’은 떨어지지 않는다며 선수들을 독려했다.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밤마다 30분씩 상체 강화 트레이닝을 했다. 오리고기, 우유 등 단백질이 풍부한 음식을 권장했다.

베트남 대표팀 선수들은 파이브 백(수비 5명)을 세운 뒤 역습하는 실리 축구를 몸에 익혔다. 꾸준한 훈련 덕분에 후반 15분 이후에도 지치지 않는 체력을 갖추게 됐다. 대신 박 감독은 낮잠을 즐기는 베트남의 문화를 인정했다. 오전 5시에 기상해 6시쯤 출근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생활 패턴에 맞춰 훈련 시작 시간도 앞당겼다.

‘박항서의 황태자’ 꽝하이는 스즈키 컵에서 3골·2도움을 올리면서 대회 최우수 선수에 선정됐다. 21세 중앙 미드필더 꽝하이(키 1m68㎝)는 박 감독의 속뜻을 가장 잘 파악하는 박 감독의 분신 같은 선수다. 베트남 언론은 꽝하이의 행동거지가 스승 박 감독과 똑같다는 내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꽝하이의 표정·행동은 물론 입꼬리 내리는 모습까지 박 감독을 빼닮았다면서 기자회견 영상을 비교 분석했다.

지난 15일 오후 베트남 대표팀의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우승 후 베트남 국영 TV인 VTV가 진행한 박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그런데도 박 감독은 아빠미소를 지었다. 다정한 부자지간 같았다. [VTV 영상 캡처]

지난 15일 오후 베트남 대표팀의 아세안축구연맹 스즈키컵 우승 후 베트남 국영 TV인 VTV가 진행한 박 감독의 공식 기자회견에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박 감독에게 물을 뿌리고 있다. 그런데도 박 감독은 아빠미소를 지었다. 다정한 부자지간 같았다. [VTV 영상 캡처]

박 감독은 결승 1차전에는 33세 노장 공격수 안둑의 체력 안배를 위해 후반에 기용했다가 2차전에는 선발로 기용하는 ‘신들린 용병술’을 선보였다. 안둑은 2차전에서 왼발 발리슛으로 결승 골을 터뜨리면서 감독의 믿음에 보답했다. 박 감독은 또 선수에게 다가가 발 마사지를 해주고 부상당한 선수에 비즈니스석을 양보하는 ‘파파 리더십’으로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DJ매니지먼트의 이동준 대표는 “베트남은 원래 감독들의 무덤으로 불렸다. 베트남 선수들은 처음엔 박 감독을 그다지 신뢰하지 않았다. 하지만 박 감독의 파파 리더십을 접하고는 그의 진심을 이해하고 감독을 믿게 됐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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