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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의 신화-삼성 전자 렌지 |미 하버드 비지니스 리뷰지 특집서 소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미국에서 개발된 전자 렌지는 최근에 들어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팔리는 전자제품 중의 하나가 되었다. 미국 소비자가 전자 렌지를 산다면 한국산 제품을 살 확률은 3분의1이나 되고 삼성전자제품을 살 확률은 5분의1이나 된다.
미국이 수백만 대의 전자 렌지를 생산하던 1979년에 불과 보잘 것 없는 생산라인 1개에 1주일에 수십 대를 생산하던 삼성전자가 어떻게 오늘날에는 1주일에 무려 8만 대를 생산, 세계시장을 석권하게 되었을까? 1976년 삼성전자의 임원은 미국을 방문중 전기도 아니고 가스도 아닌 단지 전자파로 가열시키는 새로운 종류의 오븐을 발견한데서 삼성전자의 전자 렌지 개발역사는 시작된다. 전통적으로 저임금국가들의 예를 보면 그들은 선진국에 비해 10년 정도 뒤진 것에 대부분 만족한다. 자동차 시대에 자전거를 만든다든지 칼라TV 시대에 흑백TV를 만는다든지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다른 제3세계 기업들과는 달리 최신제품 첨단제품의 개발, 현재 잘 팔리는 제품보다 미래제품 개발에 더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전자렌지의 개발에 과감히 뛰어 들을 수 있었다.
개발 팀에는 퀸세트로 된 낡은 연구실의 한 귀퉁이가 주어졌다. 이런 데서 과연 미국이나 일본 같은 대 시장을 상대로 도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무모하다고도 할 수 있었다.
전자 렌지에 관한 노하우가 전무한 상태에서 GE의 전자 렌지를 모델로 분해와 결합을 반복하면서 시제품을 만들기 2년-. 1주일에 80시간씩 연구개발에 혼신의 힘을 쏟은 결과 최종적으로 성공한 것이 78년 6월. 비록 그 렌지가 세계시장에서 경쟁하기에는 아직까지는 너무 조잡했지만 어쨌든 개발에 성공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루에 한대씩 그리고 두 대, 곧이어 다섯 대씩 만들어 냈지만 79년 중반까지 5백만 대의 전자 렌지가 세계시장에서 판매되고 있을 때 삼성은 고작 1,460대 생산에 그쳤다. 그러나 그해 파나마에 340대를 처녀 수출하는 개가를 올리면서 자신을 얻은 삼성전자는 곧이어 U·L마크를 획득하게 되었다.
톱 경영자에서 연구진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연구실에서 살다시피 하고 기나긴 자기와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 미국이나 일본기업들도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강력한 경쟁자로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를 처음 방문한 이후 수년만에 우연치 않게 다시 방문했을 때 커다란 변화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된 「퀸세트」연구실은 새 빌딩으로 바뀌어 있었고 옛날의 그 고등학교 과학실과도 같았던 모습 대신 500여명의 고학력 엔지니어와 거대한 현대시설을 갖춘 연구실로 탈비꿈 해 있었다. 77년 처음 방문당시 「보다 나은 기술개발에만 전력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훌륭한 두뇌를 개발하는데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는 삼성의 장담이 실제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삼성전자 수원공장은 생산라인 종업원들의 반 이상이 여성이고 대부분 고졸자들로 4년 내지 5년 정도 일해온 사람들이다. 삼성의 인기도를 반영하듯 치열하기로 이름난 입사경쟁을 뚫고 들어와 수습기간을 거친 뒤, 오로지 장인의식을 갖고 근무하는 전형적인 종업원들이다. 이들은 의료진료는 물론 점심도 무료 제공되고 회사에서 직접 운영하는 바닷가 휴양지에서 하계휴가를 보낸다.
숙식은 회사에서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제공받기도 하고 아파트도 거의 무료이다시피 저렴한 가격에 임대할 수 있다. 종업원들이 일하는데 가장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제품의 질과 관련된 것으로 그들 모두 세계 어느 곳의 종업원들도 우리만큼 제품에 심혈을 기울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실히 장담하고 있다.『나의 혼과 정열을 제품에 쏟는다고 하면 가장 적절할 거예요』라면서 그들은 스스로 만든 제품에 대해 커다란 애착을 표시하고 있다.
수원공장에서 두 번 째로 큰 대군은 기술진이다. 수천 명의 엔지니어들에게는 항상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 사내에서의 교육은 물론 해외연수의 기회도 잦다.
삼성이 가장 중시하는 규율이라면 두 가지를 들 수 있는데 첫째는 목표관리 즉 일단목표가 설정되면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밤을 새워서라도 해내는 것이고, 두 번 째는 다음 10년을 이끌어갈 것이 무엇인지를 보며 이를 추구하는 것이다.
연구진들이라고 해서 선진국의 높은 임금과 적은 노동시간에 대해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돈으로 인생을 저울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살아가는 방식 즉 나의 일에 만족하면서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최상의 것은 없다고 본다. 우리세대가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우리 다음 세대들은 상당히 고생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전자렌지를 처음 개발해낸 삼성전자의 추윤수 씨의 연구실은 연구와 실험기구시설로 꽉 차있다. 그의 책상 뒤에는 다섯 개의 시계가 그들의 국제적인 활동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LA·시카고·런던·프랑크푸르트·뉴욕의 현재시각을 가리키고 있다. 작년부터 수출을 시작한 스웨덴 고객들에 대한 정보수집을 위한 해외출강을 계획하고 있는 그에게 무엇을 위해 일하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자손들에게 보다 나은 생활환경을 주기 위해서, 나아가 국가 발전에 하나의 초석이 되기 위해서라고.』그것은 바로 삼성이 추구하는 사업보국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도 그는 매일 그러하듯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조회를 한 후 작업에 들어갈 것이다. 미래의 초 현대화된 부엌을 꾸밀 새로운 전자 렌지의 설계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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