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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년전 고려 여인 글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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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박정호 기자 중앙일보 수석논설위원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

상차림으로 따지면 수라상이다. 전국 곳곳에서 올라온 진상품이 가득하다. 외국에서 건너온 귀한 요리도 수두룩하다. 지금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고려 : 그 찬란한 도전’ 특별전(내년 3월 3일까지) 얘기다. 고려 건국 1100년을 기념해 평소 보기 어려운 국내외 문화재 450여 점을 한데 모았다. “규모와 수준 측면에서 향후 100년 동안 보지 못할 세기의 전시”라는 배기동 중앙박물관장의 상찬이 허튼 소리로 들리지 않는다.

고려 1100년 특별전에 나온 고려 여인의 소망 #남혐·여혐으로 갈라진 우리 사회 비추는 거울

이번 전시는 올겨울 필답 코스로 꼽을 만하다. 활달하고도 섬세한 고려의 자신감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불화·대장경·사경(寫經)·청자·금속공예·금속활자 등등, 어느 하나 빠뜨릴 게 없다. 기대를 모은 북한 소재 명품이 오지 않았고, 프랑스에 있는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을 빌려오지 못한 아쉬움이 크지만 오늘날 코리아의 원류가 된 고려의 진면목을 살피기에 부족함이 없다. 상다리가 휘어질 성찬에 자칫 소화불량에 걸릴 수도 있다.

금빛·은빛·옥빛 반짝이는 국보·보물 가운데서도 소박한 묵서(墨書) 하나에 유독 눈길이 갔다. 1301년 창녕군 부인 장씨가 쓴 발원문(發願文)이다. 전시장에는 간략한 번역이 달려 있다. ‘인간의 생을 잃지 않고 중국의 바른 집안에서 태어나되 남자의 몸을 얻게 해주소서’라고 적혀 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마음이 저릿했다. 700년 한 여인의 절규처럼 들렸다. 대체 어떤 사연일까.

잘 알려진 대로 고려는 불교국가였다. 불교를 억누른 조선과 달리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숱한 불상과 불화를 만들며 이승에서 못다한 소망이 저승에서 이뤄지기를 빌었다. 장씨 부인도 그랬다. 뭇 중생을 구한다는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조성하면서 불상 안에 위와 같은 소원을 함께 넣었다. 군부인(郡夫人) 신분을 볼 때 사회적 지위가 꽤 높았을 것이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장씨 부인 문서는 충남 온양민속박물관 소장품이다. 옛 고려 여성의 처지를 알려주는 타임캡슐 같다. 남부러울 게 없는 귀족 가문이었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의 몸’을 얻게 해달라고 기원하고 있다. 남녀차별이 상존했던 고려시대의 얼굴이다. 그런데 왜 하필 중국에서 환생하고 싶었을까. 이를 설명하는 명확한 단서는 없다. 당대 중국(원나라)에 대한 고려의 동경이 표출된 게 아닐까 싶다. 요즘 말로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에서 벗어날 실마리를 ‘중국 남자’에서 찾았을지 모른다.

그런데 고려시대 여성은 제법 당당하게 살았다. 성리학적 세계관이 지배한 조선시대 남존여비(男尊女卑)와 거리가 멀었다. 울산대 이종서 교수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남성이 주로 처가살이를 했다. 남성 혈통을 더 중하게 여기는 풍속도 없었다. 재산 상속 또한 남녀 균분이 원칙이었다. 상류층 부인이 남편을 폭행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났다. 부부관계가 수평적이라 정조·순결 같은 의식이 약했고, 여성의 재혼 또한 자유로웠다. 일례로 고려 6대왕 성종 때 문덕왕후는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성종과 재혼해 왕비에 오른 경우다.

이런 문화의 밑바탕에는 고려 여성의 경제력이 깔려 있다. 부모 유산을 고루 물려받았기에 여성도 가내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한계도 뚜렷했다. 관직은 언감생심, 집안 대문을 넘어선 여성들의 사회진출은 허용되지 않았다. 종교의 문턱도 높았다.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게 부처의 근본 가르침이지만 여성은 현세에서 성불(成佛) 할 수 없다는 게 당대의 통념이었다. 내세에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거나 극락에 왕생한 후에야 여성도 부처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학술용어로 ‘변성남자설’(變成男子說)이다. 불사(佛事)에 매진한 700년 전 장씨 부인의 서원(誓願)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장씨 부인의 비탄은 현재진행형이다. 21세기 우리 사회에서도 여성의 고통스런 외침이 끊이지 않는다. 2018년 올해 유난히 크게 메아리쳤다. 젠더 대결이란 남녀 전쟁양상까지 벌어졌다. 이 또한 그 바탕에는 경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 장기침체·소득양극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이 ‘남혐’‘여혐’이란 극단적 충돌로 이어졌다. 극락 성불은커녕 무간지옥에서 질척거리는 꼴이다.

장씨 부인을 다시 본다. 그는 뜻이 컸다. 단지 남자가 되고픈 소망에 그치지 않았다. ‘굶주린 자는 양식을 얻을 것이고, 추위에 떠는 자는 좋은 옷을 얻을 것’이라고 맹세했다. 부모·형제, 노비·권속(眷屬) 모두 평등한 반야(般若·지혜)를 이루겠다고 다짐했다. 세상의 차별을 이겨내겠다는 포부다. 물론 그 출발은 평등한 남녀관계다. 뜬금 없지만 가왕 조용필도 노래했다. ‘너가 있음에 내가 있고 내가 있음에 너가 있다.’(‘여와 남’). 이성에 대한 부질없는 총검을 이제 걷었으면 한다. 듣기에도 고약한 ‘한남’ ‘김치녀’가 사라졌으면 한다. 그보다 먼저 고꾸라진 경제를 일으켜야겠지만 말이다.

박정호 문화·스포츠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