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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황다건 성희롱' 뒤…"성상품화 없애라" "女아이돌도 없애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나이 19~25세, 키 167 이상의 여성.”

불거진 '치어리더 폐지론' #찬반 놓고 '젠더 갈등' 또 확산

최근 한 사이트에 올라온 치어리더 모집 공고다. 치어리더는 스포츠 선수들을 응원하고 관람객과 선수와의 연결고리를 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기에서 어리고, 키가 크고, 늘씬한 여성 치어리더가 성적매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면서 늘 논란의 중심에 있었다.

특히 지난 10일 미성년자 치어리더 황다건(사진)씨가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일베)’에서 성희롱을 당한 사실을 토로하면서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커뮤니티의 성희롱 문제가 아닌 미성년자의 치어리딩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치어리더를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청원으로까지 이어졌다. 더 나아가 치어리더를 비롯해 레이싱걸, 라운드걸 등 각종 ‘스포츠걸’의 퇴출 논의로 번지는 양상이다.

 “여성성 극대화해 성상품화, 폐지해야”

이번 황씨에 대한 일베의 성희롱 사건으로 시작된 논란으로 청와대 게시판은 치어리더 폐지 청원이 이어지고 있다. 황씨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성추행의 고통을 호소한 바로 다음날인 11일, ‘치어리더 성추행 관련 스포츠경기에서 치어리더를 없애주세요’라는 제목의 국민청원에 이어 14일 오후 기준 약 20건의 관련 청원이 쇄도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의 성적매력을 극대화시켜 상품화하는 것은 여성을 소비의 대상으로 보는 왜곡된 문화를 고착화한다”며 폐지를 주장한다.

치어리더 폐지론

치어리더 폐지론

실제 세계 최고의 자동차 경주대회인 포뮬러1(F1)에서는 올해 시즌부터 '그리드걸(F1의 레이싱걸)' 제도를 폐지한 바 있다. 올 시즌 첫 경기인 호주 멜버른 그랑프리에서부터 그리드걸을 경기장에 세우지 않았다. F1은 폐지 성명에서 “그리드걸 관행은 수십년 동안 F1의 필수요소라고 여겨졌지만, 우리는 이런 관습이 우리가 추구하는 F1의 가치와 맞지 않고, 현대 규범에도 맞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며 폐지 이유를 밝혔다.

‘스포츠걸’의 폐지가 사회학적으로 옳은 수순이라는 설명도 있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스포츠와 여성이라는 사회적 시각에서 봤을 때, 스포츠에서 주(主)는 남성 선수이고 여성은 남성선수를 치어(Cheer)하는 보조적 수단으로 존재해온 측면이 있다"며 "이번 성희롱 사건으로 치어리더가 폐지 되는 것이 옳은 수순이라고 보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폐지되는 것이 옳다”고 설명했다.

'2011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이 열린 전남 영암군 삼호읍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F1 그리드걸들이 포즈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1 포뮬러원 코리아 그랑프리' 결승전이 열린 전남 영암군 삼호읍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KIC)에서 F1 그리드걸들이 포즈를 하고 있다. [중앙포토]

“성희롱이 잘못인데 본질 왜곡“

치어리더 업계에서는 황씨 성희롱 사건이 성범죄 논의에서 벗어나 직업의 폐지 논의로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치어리더 대행사를 운영하는 A씨는 14일 ”성희롱은 범죄고 범죄를 일삼는 사람들을 질타해야지, 직업을 없앤다는 것은 본질에서 벗어난 논의"라며 "그렇다면 아이돌 가수를 비롯해 노출 배우 등이 성희롱을 당하면 그 직종을 없애야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B씨는 또 "이 업계 종사자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스포츠 현장에서 좋아하는 춤을추고 이를 생업으로 여기시는 분들"이라며 "이번 논란으로 인해 다건양이 되레 피해를 입고 많은 치어리더들이 상처를 입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치어리더 황다건씨가 10일 자신의 SNS에 토로한 일간베스트 성희롱 게시물. 황다건씨 SNS캡처

치어리더 황다건씨가 10일 자신의 SNS에 토로한 일간베스트 성희롱 게시물. 황다건씨 SNS캡처

치어리더 폐지론 자체가 '2차 피해'라는 지적도 있다. 배복주 전국성폭력상담협의회 대표는 "성희롱 사건과 치어리더 등 여성을 상품화시키는 직업군이 필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완벽하게 다른 문제"라며 "누구나 성희롱 발언을 하면 안 된다는 인식이 공유돼야 하는데, 그것(성희롱)을 이유로 직업을 없애자는 건 본질을 벗어난 논의"라고 지적했다. 이어 "여성성을 강조하는 직업이라는 이유로 성희롱을 당할 만하다는 것은 야하게 옷을 입은 성범죄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피해자 책임론’ ‘성희롱 유발론’과 다를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성을 강조하는 것이 성희롱이란 범죄를 당해도 된다는 용인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폐지보단 스포츠 산업의 구조적 개선 필요”

배 대표는 "특정 직업에 대한 좋다 나쁘다의 가치 평가보다는 스포츠 산업이 가진 구조적 문제점을 타파하는 것이 궁극적이 해결책“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여성이 스포츠에서 보조적 역할이나 지지하는 역할이 아니라, 주류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와 방식에 대한 고민이 선행돼야 한다"며 "그렇게 된다면 치어리더라는 직군이 있더라도 여성성을 극대화시키는 방식이 아니라 스포츠의 응원, 선수와 관람객의 연결고리를 하는 전문적 직업군으로 변모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직업군의 폐지보다는 ‘왜 이런 직업군이 만들어졌는지’ 목적에 부합하는 방향성에 대해 논의가 돼야 한다는 의미다.

이명준 한국성평화연대 대표도 “성상품화 논란은 이번 치어리더 사건에서만 있었던 게 아니라, 여아이돌이나 여성모델 등 사회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있었다"며 "단순히 성상품화 직업을 없애자는 것은 근본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성별간의 갈등유발을 조장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런 이슈의 가장 근간에는 '성상품화는 나쁜것이다' '그리고 그 섹슈얼리티상품을 소비하는건 남성이다' 라는 전제가 있는데, 이에 대해 근본적 의문을 가지고 논의를 한 뒤 치어리딩을 소비하는 자세에 대한 교육과 건전성 확보 등을 위해 노력해야지 무조건 폐지 주장은 성갈등 조장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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