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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의 자유, 색의 언어를 만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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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송민의 탈출, 미술 왕초보(14)

세종 즉위 600주년이라 세종대왕 표준영정을 보는 일이 많아 흐뭇하다. 조선의 왕이 입은 홍룡포는 붉은색이 곱다. 신기하게도 루이 16세, 나폴레옹 초상화의 의복도 붉은색이다. 이는 우연의 일치일까. 미술에 나타난 색의 역사는 어떤 비밀을 품고 있을까.

세종대왕 표준영정(운보문화재단소장). 붉은색 홍룡포를 입었다. 신기하게도 나폴레옹 초상화의 의복도 붉은색이다.

세종대왕 표준영정(운보문화재단소장). 붉은색 홍룡포를 입었다. 신기하게도 나폴레옹 초상화의 의복도 붉은색이다.

옷을 염색하는 염료와 그림을 그리는 안료의 역사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붉은 천연염료 카민은 멕시코에서 7만 마리의 연지벌레로 고작 450g을 얻는 비싼 염료다. 광물염료인 진사도 금보다 비쌌다. 둘 다 중국을 통해 조선에 전해졌다.

중국의 진시황은 붉은 염료를 길한 색이라 여겨 독점했다. 붉은색 이름을 쓰는 사람은 사형시켜 공포에 떨게 했다. 로마 시대 네로 황제는 보라색을 독점해 ‘로열 퍼플’이라 불렸다. 보라색은 권력의 색이라 ‘Violet’은 폭력이란 단어와 비슷하다고, 『색의 유혹』을 쓴 사회학자 에바 헬러는 주장한다. 그 예가 영어 ‘Violence(폭력)’이며 이탈리아어, 프랑스어로도 흔적이 남아있다.

성모자(1577) 알프레드 뒤러. 16세기에는 푸른색 염료를 얻으려면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는 청금석을 갈아 만들어야 했다. [사진 송민]

성모자(1577) 알프레드 뒤러. 16세기에는 푸른색 염료를 얻으려면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는 청금석을 갈아 만들어야 했다. [사진 송민]

16세기에 푸른색 염료를 얻으려면 아프가니스탄에서만 나는 청금석을 갈아 울트라마린을 만들어야 했다. 에바는 울트라마린 30g을 얻기 위해 41g의 황금을 지불한 알프레드 뒤러의 예를 들었다. 뒤러는 ‘성모자’의 성모마리아의 옷을 푸른색으로 그렸다.

최후의 심판(1536),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성화에만 허락된 울트라마린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공개도메인 [출처 위키피디아]

최후의 심판(1536),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성화에만 허락된 울트라마린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공개도메인 [출처 위키피디아]

부오나로티 미켈란젤로는 성화에만 허락된 울트라마린으로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그 뒤 루이 14세는 울트라마린 색을 프랑스 왕실의 부와 권위를 상징하는 ‘로열 블루’로 정했으니 이 영향이 오늘날 영국 왕실에 남은 거다.

신분에 맞지 않는 옷을 입으면 당시의 경찰이 잡아가는 등 억압이 심했다. 오늘날 영어 ‘blue’는 ‘우울한’의 뜻이 있다. 이는 퍼플이 폭력의 단어와 가까운 것처럼 억압의 흔적으로 추측된다. 따라서 고대 중세에 쓰인 그림의 색은 왕이나 성모마리아처럼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동서양 왕의 붉은 의복의 비밀은 거의 풀렸다. 색에 대한 유명한 연구로 좀 더 알아보자. 막스 뤼셔는 1947년 빨강색이 상징하는 것은 자신감이라 말하며 모든 문화권에서 색과 감정의 관계는 거의 같다고 말한다. 이 논리대로 풀어보면 왕이 붉은색을 가장 좋아해서 입었다면 ‘자신감을 갖고 싶다’는 뜻이다. 이는 어딘가 이상하다.

앨린 매튜와 미미 쿠퍼는 2002년 『컬러 스마트』에서 빨강은 인간을 자극한다고 말했다. 또한 모든 문화권의 인간에겐 ‘색에 대해 공통적인 감정’이 존재한다고 뤼셔와 비슷하게 주장했다. 이 의견에 따르면 왕의 붉은 의복은 ‘자극하는 색이기 때문에 선택했다’고 풀이된다. 이것도 어딘가 어색하다.

이와 달리 에바 헬러는 ‘색에 대한 감정은 문화권마다 다르다’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이미 앞에서 여러 예를 든 것처럼 천연염료를 얻기 위한 고단한 역사 때문이라 주장했다.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황제 권좌에 앉은 나폴레옹(1806) 파리군사박물관 소장. 에바의 이론에 의하면 붉은 의복은 강력한 왕의 권력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개도메인 [사진 위키피디아]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 황제 권좌에 앉은 나폴레옹(1806) 파리군사박물관 소장. 에바의 이론에 의하면 붉은 의복은 강력한 왕의 권력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공개도메인 [사진 위키피디아]

에바의 이론에 따르면 붉은 의복은 강력한 왕의 권력을 상징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는 좀 이해될 듯하다. 이렇게 색에 대한 감정이 문화권마다 같다, 다르다는 의견으로 나뉘어 정신이 없고 복잡하다. 그 이유가 정확히 무얼까?

결론을 먼저 말하면 19세기 인공염료 개발 전에는 문화권마다 색에 대한 감정이 다르고, 인공염료 개발 후에는 색에 대한 감정은 문화권마다 같다고 보인다.

1834년 독일 바스프 화학회사는 인공 푸른색 염료로 떼돈을 벌었다. 금보다 비쌌던 ‘로열 블루’는 사라지고, 모두에게 푸른색을 쓸 자유를 안긴 것이다. 이를 시작으로 다양한 인공염료가 왕성하게 개발되었다. 이는 신분차별 없이 옷을 입게 했고 예술가에게도 색의 자유를 안겨 준 역사적 사건이다.

이 결과로 뤼셔와 매튜, 미미는 오늘날 푸른색은 만족감과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비슷하게 설명한다. 에바는 푸른색은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색으로 호감과 신뢰, 서늘함을 상징한다고 한다. 예술가의 그림에 나타난 이론가들의 말이 과연 맞을까?

자화상(1901), 파블로 피카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피카소는 '청색 시대'로 불린다. ⓒ공개도메인 [출처 위키아트]

자화상(1901), 파블로 피카소. 이 그림이 그려진 시기의 피카소는 '청색 시대'로 불린다. ⓒ공개도메인 [출처 위키아트]

이 이론을 마지막으로 20세기 대표적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자화상(1901)’에 적용해보자. 이 그림은 푸른색으로 화면이 가득하다. 이 그림은 20살 청년 피카소가 야망을 품고 스페인을 떠나와 파리에 와서 그렸다. 가난과 향수병을 담아 그린 이 시기는 피카소의 ‘청색 시대’로 불린다.

이를 뤼셔의 색채 진단으로 보면 피카소는 안정감을 원하는 심리상태라고 말할 수 있다. 매튜와 미미의 의견으로 보면 이 그림의 푸른색은 우리의 심장을 차분하고 조용하게 만든다. 에바의 의견으로 보면 이 그림의 푸른색은 서늘함의 감정을 전달해 피카소의 내면을 보게 한다.

결론으로 19세기 후반 인공염료 개발은 모든 문화권에서 공포 등 억압된 감정에 자유를 가져왔다. 그리고 21세기에는 뤼셔, 미미, 매튜가 말한 대로 문화권마다 ‘색에 대한 공통적인 반응’이 나타난 것이다. 화가들은 공통적인 감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감정을 색을 통해 전달하는 언어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색의 자유는 19세기 후반 시작된 인상주의 등의 미술 사조를 가능하게 했다.

송민 미술연구소 BRUNCH 대표 gallery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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