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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끼어 숨졌는데…태안화력 “컨베이어 빨리 돌려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지난 11일 충남 태안군 원북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고 김용균(24)씨 사망사고 당시 발전소 측이 시신을 수습하자마자 컨베이어 벨트를 다시 돌릴 것을 요구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김씨가 컨베이어 벨트에 끼여 숨진 뒤 사고가 제대로 수습되기도 전에 재가동을 요구했다는 얘기다. 태안화력발전소는 석탄을 주원료로 가동하며 저장소에서 발전기까지 컨베이어벨트로 석탄을 운반한다.

동료 “2인1조 작업 요구도 묵살 #위험한 일 하청 주고 책임 안 져” #사측 “국가전력망이라 중단 못해”

김씨 소속회사인 한국발전기술㈜ 노조 신대원 지부장은 13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어찌됐던 사후처리를 해야 하는데,  발전소 측이 이익에 급한 나머지 빨리 연료(석탄)를 공급해달라. 다시 운전해달라고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신 지부장은 “진상규명도 안 됐고 고용노동부에서 작업중지를 지시했는데, 이게 발전소의 태도였다”며 “2인 1조로 개선해달라. 설비도 고쳐달라고 수없이 요구했는데 안 됐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발전소 측이 하청업체 근로자에게 안전작업허가서도 없이 업무를 재촉한 사실이 폭로되기도 했다. 신 지부장은 “하청업체에서 사고가 나도 원청인 발전소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고 (하청업체에)다 떠넘겼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태안화력발전소를 운영하는 한국서부발전㈜은 “발전소는 국가전력망이라 사고가 나더라도 바로 가동을 중단하지 못한다. 불가피하게 1시간 정도 가동한 후에 컨베이어벨트를 중단했다”며 “(협력업체의)개선요구도 대부분 수용했다”고 말했다.

전국공공운수노조에 따르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간 한국서부발전㈜ 등 5개 발전사에서 발생한 346건의 사고 가운데 97%(377건)가 하청업체 업무였다. 2008년부터 2016년까지 산재로 사망한 40명 가운데 하청업체 근로자가 92%(32명)를 차지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서부발전은 최근 5년간 산재 보험료 22억원 감면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근거로 직원들에게 포상금 47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김씨의 빈소가 마련된 충남 태안군 태안의료원 장례식장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날 오전 양승조 충남지사가 빈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을 위로했고 지난해 취업실습 도중 사망한 고 이민호군의 부모도 빈소를 방문했다. 양 지사는 “또 한 명의 젊은이가 안전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비용을 절감한다는 핑계로 위험한 작업이 방치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사고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는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후 7시 태안버스터미널 사거리에서 김씨를 추모하고 비정규직 실상을 알리는 촛불집회를 개최했다. 같은 시간 서울 광화문에서도 촛불집회가 열렸다. 한편 비정규직 근로자인 김씨는 지난 11일 오전 3시20분쯤 태안화력 9·10호기 석탄운송용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채 발견됐다.

태안=신진호 기자 shin.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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