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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심리 지표 모조리 내리막…"기업 투자·일자리 늘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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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경제 심리를 보여주는 각종 지표가 일제히 얼어붙고 있다. 내수 침체로 기업·소비자 등 경제 주체들의 심리가 위축되며 향후 경제 전망을 어둡게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경제 심리지수(ESI) 순환변동치는 문재인 정부 1기 초대 경제부총리인 김동연 전 부총리가 취임하기 직전인 2017년 5월 96.3에서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취임하기 직전인 2018년 11월 93.2로 내렸다.

다른 지표도 같은 흐름이다. 기업의 체감심리를 보여주는 기업경기 실사지수(BSI) 제조업 부문은 같은 기간 82에서 73으로, 비제조업 BSI는 79에서 73으로 떨어졌다. 소비자심리지수(CCSI) 역시 108에서 96까지 내렸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홍남기 부총리가 취임 일성으로 “경제 불안 심리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경제 심리 위축의 가장 큰 원인은 내수 부진이다. 한국은행과 통계청에 따르면 1인당 실질 민간소비지출액은 2000년 1091만원(전년 대비 10.5% 증가)에서 2017년 1572만원(1.8% 증가)을 기록했다. 한국인의 1인당 실질국민총소득이 같은 기간 1838만원에서 3065만원으로 늘었음에도 소비를 그만큼 늘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과소비를 줄이자’는 캠페인이 나오던 1990년대 소비지출액 증가율은 연 10%대에 달했지만 2010년 이후 이 수치는 1~2%대로 꺾였다.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이 하락하다 보니 민간 소비의 경제성장 기여율도 낮아졌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우리나라 가구의 연령대별 소비행태 분석’에 따르면 민간소비의 성장 기여율은 2000년 68.9%에서 2017년 41.9%로 낮아졌다. 민간소비증가율은 2006년부터 경제성장률을 밑돌고 있으며 2017년의 경우 경제성장률은 3.1%, 민간소비 증가율은 2.6%로 나타났다. “나라는 부자인데 국민은 가난하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다.

문제는 내수가 부진한데 지난달 말 금리 인상까지 단행하면서 소비 불황이 깊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투자증권은 “이번에 단행된 금리 인상으로 내년 가계는 연 2조∼3조원의 추가 부담을 안게 될 것이고 추가 이자 비용 부담으로 인해 가계 소비는 2∼3% 줄 것”이라 관측했다.

그나마 선방하는 건 무역이다. 한국은 2012년 3월부터 80개월 연속 경상수지 흑자 행진이 계속되고 있다. 외환위기 즈음인 1997년 경상수지(-103억 달러)와 무역수지(-85억 달러) 적자였지만 2017년 경상수지 785억 달러, 무역수지 952억 달러를 기록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걱정은 이마저 위태롭다는 점이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수출 증가율은 15.8%(2017년)→5.8%(2018년)→3%(2019년)로 줄고 수입 증가율은 17.8%→12.2%→3.7%로 급감할 전망이다. 무역수지는 같은 기간 952억 달러→700억 달러→680억 달러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간 수출이 잘 나갔던 것은 반도체와 유가 상승에 따른 것으로 착시 효과이며 국제가격 변동에 따라 고꾸라질 수 있다”라고 짚었다.

특히 D램 등 메모리반도체 단가 하락(10월 기준 -4.6%)으로 반도체 수출 증가율은 올해 30%대에서 내년 5%로 둔화할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내수가 부진한 가운데 수출 증가세도 완만해지면서 경기가 점진적으로 둔화하는 모습”이라 평가했다.

허 교수는 “미·중 무역 전쟁과 중국 경제 경착륙 가능성 등 대외환경 악화와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정책 부작용 등을 이미 반영해 기업은 설비투자를,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있다”며 “정부의 정책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 한, 경제 심리에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기업들은 현금을 쥔 채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원에 따르면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2000년 127조원에서 2016년 575조원으로 4.5배 늘었다. 이밖에 ▶가계 부채 증가▶소득 정체 ▶물가 상승 ▶인구 고령화 등이 겹치면 심리는 더 얼어붙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올해 3분기 가계부채(가계신용)총액은 1514조4000억원에 달했으며 부채 증가율(6.7%)은 국민총소득 증가율(3.3%)의 두 배 이상이다.

최근 한국 경제가 ‘일본형 불황’으로 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는 것도 이런 추세가 반영된 것이다. 1990년대 일본은 경기 침체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동시에 겪었다. 당시 일본은행(BOJ) 총재가 부동산 거품을 잡기 위해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그 뒤 일본은 막대한 재정 지출을 풀어 경기 살리기에 나섰지만 ‘잃어버린 20년’을 맞았다.

일본형 불황에 더해 우리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일자리 문제도 심각하다. 올해 10월 기준 한국의 청년 실업률은 8.4%에 달한다. 반면 1990년대 일본 청년 실업률은 5~6%였다.

한국 경제가 이미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우리나라 경제 성장률은 2.7%로 2012년(2.3%) 이래 가장 낮고 내년은 2.6%로 올해보다 0.1%포인트 낮아질 전망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수 부진, 세계 경제 하방 가능성 등을 볼 때 경기 저점은 내년 상반기~하반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타개책으로 지목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세계적 불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수가 위축된 것은 결국 내부 구조적 문제”라면서 “기업에 투자와 고용 여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호정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독일의 경우 법의 허용범위 내에서 기업에 70~80%씩 감가상각을 허용했고 이는 기업에 현금을 쏴준 것과 마찬가지였다”면서 “미국도 법인세를 차등화해서 제조업을 국내로 불러들이는데 한국도 친기업적 정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내 여행을 활성화해서 내수를 진작하는 한편 고액 자산가의 국내소비 활동 위축을 막을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세종=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국민소득 공식은 Y=C+I+G+NX

국민소득을 경제학 공식으로 풀면 Y(국민소득)=C(가계소비)+I(기업투자)+G(정부지출)+NX(순수출)로 구성된다.

현재 우리 경제에서 수출과 수입의 차이에 해당하는 NX는 늘고 있지만, C와 I는 위축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에 정부는 가라앉는 경기를 정부 지출로 끌어올리려고 씀씀이를 키우고 있다. 지난 8일 정부는 2019년 예산을 469조6000억원으로 승인하고 세출 예산 399조8000억원 가운데 70.4%인 281조4000억원을 내년 상반기에 중점적으로 배정했다.

심상렬 광운대 동북아 통상학과 교수는 “C와 I의 위축이 심각하다고 G를 크게 늘리면 결국 조세 증가로 이어져 현재·미래 세대에 부메랑이 돼 돌아온다”고 지적했다. 재정으로 경제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더 풀어 대응하는 재정 중독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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