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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열차 탈선보다 더 무서운 ‘낙하산 공기업’의 조직 탈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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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강릉선 KTX 탈선 사고에 책임지고 어제 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책임을 덮을 수는 없다. 강릉역 사고를 계기로 드러난 코레일 내부에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도저히 맡길 수 없는 낙하산 인사의 후유증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장관에게 “누나”라던 오영식 사퇴 #관료들 ‘캠코더’ 눈치에 감독 소홀 #비전문가 내보내야 국민이 안심

문재인 정부의 낙하산 인사는 ‘캠코더’(대선 캠프, 현 정부와의 코드, 더불어민주당 출신)들이 주도하고 있다. 과거 정부에선 보지 못했던 새로운 형태다. 코레일의 경우 ‘실세 낙하산’으로 꼽혔던 오 사장을 필두로 조직 곳곳에 낙하산 인사가 투하되면서 신규 임원 3분의 1이 캠코더로 채워졌다. 대선 캠프 수석부본부장이었던 오 사장을 비롯해 대선 후보 노동특보와 부동산정책특별위원장이 비상임이사로 코레일 경영진을 꿰차면서다.

문제는 캠코더가 조직을 장악하면서 코레일이 감독 사각지대가 됐다는 점이다. 오 사장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의 친분을 스스럼 없이 과시했다. 사석에서는 김 장관을 “누나”라고 부르기도 했다니 어느 관료가 감히 코레일의 안전 감독에 나설 수 있겠는가. 더 큰 문제는 캠코더 인사가 코레일 본사에 그치지 않고 코레일네트웍스·코레일로직스·코레일테크·코레일관광 등 주요 계열사를 싹쓸이하다시피 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코레일유통에서는 대선후보 문화예술정책위원이었다는 이유로 고액의 연봉을 받는 임원 자리를 차지했다.

강릉선 KTX 탈선을 비롯해 최근 잇따랐던 코레일 사고는 이같이 캠코더 인사와 무관치 않다. 명분 없는 낙하산 인사가 늘어날수록 경영진은 친(親)노조 경영을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업무 관련성이나 정당성이 없는 만큼 노조가 반발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노조에 이끌려다니면서 조직이 느슨해져 결국 ‘탈선 경영’이 되고 마는 것이다. 공기업이 방만 경영으로 무너지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결국 이번 사고는 인재(人災)라는 지적을 피할 길이 없다.

안타까운 것은 이번 사고는 박근혜 정부에서 판쳤던 ‘관피아’의 교훈을 까맣게 잊고 있다는 점이다. 세월호 사태 당시 해양수산부 산하 기관에는 정부의 퇴직관료들이 무더기로 취업해 있었다. 이들이 선배라는 이유로 해수부 공무원들이 철저한 감독에 소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치명적인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안이다. 이를 막기 위해 4급 이상 공무원이 직무와 관련된 곳에 3년간 재취업을 금지하는 ‘관피아법’도 통과됐다.

하지만 관료의 낙하산을 막았더니 이 정부에선 캠코더가 휩쓸고 있다. 지난 9월까지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340개 공공기관 임원 1651명 중 365명이 캠코더였다. 하루에 한 명꼴로 공공기관에 낙하산 인사가 내려꽂힌 셈이다. 열차 탈선은 결국 조직 탈선의 결과라고 봐야 한다. 더 큰 사고를 막으려면 비전문가는 사퇴시키고 그 자리는 전문가로 다시 채워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 문 대통령의 안전 대한민국에 대한 약속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