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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악마의 대변자 김광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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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악마의 대변자(devil’s advocate)는 모두 찬성할 때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이다. 가톨릭 성인 추대 심사에서 유래됐다. 추대 후보에게 혹시 문제가 없는지, 또 다른 대안이 있는지 모색하기 위해서다. 이런 의미에서 토론을 활성화시키는 사람을 악마의 대변자라고 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이 역할을 자처했던 김광두(71)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이 학교로 돌아간다. “서강대로 돌아가 후배 교수, 학생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더 늙기 전에 한 권의 책을 쓰고 싶다”고 귀거래사를 밝혔다. 이 시대 한국 경제가 양극화의 갈등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복지 향상과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사람의 능력을 키우는 ‘사람에 대한 투자’가 핵심 수단이라며 ‘현대자본주의와 인적자본’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그는 정부 내 야당이었다. 지난 4월부터 쓴소리를 쏟아냈다. “최저임금만 올려선 경제가 안 살아난다. 산업 구조조정과 노동개혁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또 “일자리를 지키려면 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신산업 전직을 위한 인프라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나아가 “대통령이 규제를 풀라고 해도 현장에선 외면하고 있다. 실무자를 적폐로 처벌하니 복지부동이 된다”고 꼬집었다. 서울 강남에 대해서는 “거기 좋은데 왜 안 가?”라고 반문했다. 재정 투입 남발에 대해서는 “마약 맛 붙이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세계는 미래를 향해 뛰는데 한국은 규제 완화가 부진하고 산업 구조조정이 늦어 역동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악마’의 목소리는 외면됐다. 연초만 해도 문 대통령의 지지율이 70%에 달했다. 그래서 거침이 없었다. 속출하는 부작용 속에서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한 J노믹스(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실험이 강행됐다. 김 전 부의장은 이렇게 경고했다.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경험을 보면 우리는 완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다.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우리끼리 펀더멘털이 강하니까 괜찮다고 하고 있다가 당했다.”

그는 J노믹스의 핵심 비전을 만들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최저임금을 올려주고 근로시간도 단축하자는 것이었다. 그 전제조건은 구조조정 병행이었다. 그래야 노동의 생산성이 올라가고 직무전환 능력이 생기면서 산업이 고부가가치화하고 노동자 임금도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가 외롭게 외쳤던 ‘악마의 목소리’다. 이제 ‘악마’까지 떠났으니 J노믹스의 폭주가 더 심해지는 건 아닌지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