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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의대에만 간다면…상류 0.1%의 대입 광시곡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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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드라마 ‘SKY 캐슬’에서 1년에 단 두 명의 학생만 담당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서형. [사진 JTBC]

드라마 ‘SKY 캐슬’에서 1년에 단 두 명의 학생만 담당하는 입시 코디네이터 역할을 맡은 배우 김서형. [사진 JTBC]

인간의 욕망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무엇일까. JTBC 금토드라마 ‘SKY 캐슬’(유현미 극본, 조현탁 연출)을 보면 성공, 그중에도 자식의 성공에 대한 부모의 욕망이 가장 큰 듯하다. 제아무리 잘나가는 대학병원 의사나 검사 출신 교수라도 자식만큼은 맘대로 하지 못하는 탓이다. 하여 극 중 명문대 교수들이 모여 사는 ‘SKY 캐슬’에선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자녀에게 물려주겠다는 일념하에 연일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지난달 1.7%(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시작한 시청률은 6회 만에 8.9%로 다섯배 넘게 뛰었다.

드라마 ‘SKY 캐슬’ 왜 인기인가 #사교육 열풍 풍자한 블랙코미디 #성적 앞에 무너지는 우리네 가정 #VVIP 대상 초고가 코디도 눈길 #방송 한달 만에 시청률 8.9% #강남맘 카페·커뮤니티 등서 화제 #“꼼꼼한 취재” “과장된 구성” 맞서

이곳에 사는 엄마들의 욕망은 다층적이다. 남편은 모두 대학교수로 같은 링 위에서 싸우는 반면, 이들은 각기 다른 출신 배경을 가진 탓에 목표는 같아도 지향점은 다르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선짓국 집 딸로 태어나 과거를 숨기고 있는 전업주부 한서진(염정아 분)에게 딸들의 성공은 곧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정받는 길이다. 서울대 의대 진학으로 3대째 의사 집안이라는 위업을 달성해야만 비로소 시어머니에게 제대로 된 며느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서진에게 고교동창 이수임(이태란 분)의 등장은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사교육 한번 시키지 않은 아들이 자신의 딸과 공동수석으로 이름을 올리고, ‘지잡대’ 출신 남편이 모든 걸 다 갖춘 자신의 남편과 척추센터장을 놓고 경쟁하니 어찌 흔들리지 않겠는가. 여기에 롤모델로 삼아온 이웃 이명주(김정난 분)가 아들 문제로 자살하면서 그녀의 ‘비법’이었던 입시 코디네이터(김서형 분)를 얻고도 이 길이 맞는지 진퇴양난에 빠진다.

사람들이 가장 열광하는 것은 이 드라마가 지닌 핍진성이다. 은행 VVIP 고객들을 대상으로 입시 코디를 중개해준다는 설정이 허무맹랑한 듯하면서도 대치동 어드메라면 얼마든 일어날 법한 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배경은 아파트 단지가 아닌 고급빌라촌. 경기 용인의 골프장 안에 있는 타운하우스에서 촬영해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자아냄으로써 이것이 블랙코미디임을 분명히 하는 동시에 몰래 훔쳐보는 관음증적 재미를 충족시킨다.

김지연 CP는 “재벌가라면 그들만의 리그로 보일 텐데 이 사람들은 부와 명예를 고루 갖춰 본인들이 재벌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계층”이라며 “서울대 의대가 문제라기보다는 의사는 실력만큼 적성도 중요한 직종이기에 다양한 갈등이 생겨날 수 있는 설정이라서 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그동안 교육 문제를 다룬 드라마는 엄마나 아이 등 어느 한쪽에 중점을 뒀다. 반면  ‘SKY 캐슬’은 모녀뿐 아니라 아빠, 코디 등 여러 축을 중심으로 갈등을 전개해 다양한 연령대의 시청자층을 흡수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의 간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학부모 역할의 염정아. [사진 JTBC]

치열한 경쟁을 뚫고 그의 간택을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학부모 역할의 염정아. [사진 JTBC]

‘각시탈’(2012) ‘골든 크로스’(2014) 등을 집필한 유현미 작가가 실제 아들 대학입시를 치러본 학부모라는 점도 신뢰도를 높였다. 유 작가는 2015년 강남 엄마와 강북 엄마의 이야기를 다룬 2부작 ‘고맙다, 아들아’를 선보이기도 했다. 제작진은 “작가가 오랜만에 선보이는 작품인 만큼 취재를 꼼꼼히 했다”며 “대부분 실제 사건을 베이스로 각색한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렇다 보니 방송이 시작하는 동시에 포털사이트 톡방과 강남맘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도 분주해진다. 학원 쉬는 시간 동안 편의점에서 습관적으로 과자를 훔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나오면 “우리 동네에도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이 있었다” 등 제보가 쏟아지는 식이다.

대입 중심축이 수능에서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옮겨 가며 생겨난 풍토도 반영됐다. 2000년대 중반 대치동에 살며 자녀를 소위 ‘스카이’로 불리는 명문대에 보낸 ‘돼지엄마’들이 스타강사를 섭외해 학원을 차리는 등 활약했다면, 이제는 개인별 맞춤 전략이 중요해졌단 것이다. 강남에 사는 한 학부모는 “연간 적게는 수백, 많게는 수천만원대 컨설팅이 이뤄지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반면 한 학원 관계자는 “보통 강사와 강의 설계자가 수익을 6 대 4로 분배한다. 코디가 억대 연봉을 받으려면 1년에 수십개 팀을 꾸려야 가능한데 다소 과장된 이야기”라고 말했다.

몰입감 높은 전개 덕에 굿데이터 코퍼레이션 화제성 조사 결과도 tvN ‘남자친구’에 이어 2위를 기록했다. 염정아(46)·김서형(45)·이태란(43)·오나라(41)·윤세아(40) 등 40대 여배우가 대거 포진된 드라마로는 이례적이다. “그간 방송을 통해 이분들을 보면서 꼭 한번 연기를 같이 해보고 싶었다”는 이태란의 말처럼 한 작품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조합에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이 되길 바란다는 응원도 쏟아진다.

이는 지난해 ‘품위있는 그녀’와 올 초 ‘미스티’ 등을 선보인 JTBC의 뚝심이 빚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김희선과 김선아를 투톱으로 내세운 치정 스릴러로 종편 최고 시청률 12.1%를 기록하고, 격정 멜로 추리물 로 김남주가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최우수상을 받는 등 작품성과 대중성 둘 다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충남대 국문과 윤석진 교수는 “‘뉴스룸’의 신뢰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드라마도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전달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나는 것 같다”며 “같은 로맨스물이라 하더라도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다룬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나 성형미인을 앞세운 ‘내 아이디는 강남미인’처럼 사회적으로 풀어낸 점이 공감대를 넓히는데 주효했다”고 말했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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